복음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35-4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7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38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39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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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교회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제 신앙의 처지를 점검하고 가꾸어 갔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초대 교회의 모습을 따라 사는 것이 참된 교회라고 천명하였습니다. 참된 교회의 모습을 상징하는 여러 표현 중에 ‘깨어 있음’은 독보적 가치를 지닙니다. 잠을 자지 않고 깨어 있는 것은 무엇보다 제 삶의 본분을 다하는 일입니다.
종이 주인을 기다리는 것이 당연하듯, 도둑이 언제 올지 모르는 위험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집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듯, 신앙은 특별한 목적을 가진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지금 삶에 대한 온전한 투신과 삶의 본디 모습을 추구하는 일상의 열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가끔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절망은 희망을 낳는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라는 말들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순탄하고 평온한 삶만을 꿈꾸기보다는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어쩌면 가장 신앙인다운 일일지 모릅니다. 초대 교회가 그러하였으니까요.
예수님께서 걸으신 수난의 길은 힘들고 아프지만 신앙인에게는 뜻깊고 보람 있게 여겨졌으니까요. 아픈 삶을 이겨 내고 나면 ‘장밋빛 미래’가 있다는 약속을 받아서도 아니고, 후손들에게 영웅적 삶을 자랑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힘겹게 사는 지금, 오늘이 마지막 시간이고 그 시간을 먼저 사신 ‘예수님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 하나로 초대 교회 신자들은 하루하루를 살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곁에는 함께 아파하고 울어 주는 형제, 자매들이 있었습니다.‘깨어 있음’은 지금, 여기에 온전히 자신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그 삶이 어떻든 서로 다독이며 ‘오늘’을 살자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오늘’이 바로 구원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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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 연중 제2주간 토요일 설 미사
< 죽을 때 기분을 알고 싶으면 잠자리에 들 때 기분을 봐라>
복음: 루카 12,35-4
지금까지 역사상 수영을 마이클 펠프스보다 잘 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는 당연하다는 듯 어느 대회나 금메달 두세 개는 기본으로 땄습니다. 베이징 올림픽 때였습니다. 스타트 총소리가 울리자 여느 때처럼 물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런데 눈앞이 조금씩 흐려졌습니다. 물안경에 물이 차기 시작한 것입니다. 세 번째 턴을 할 즈음에는 물안경 안에 물로 가득했습니다. 펠프스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수영장 바닥에 그려진 선도, 터치판에 검게 쓰인 T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느 선수였다면 경기를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펠프스는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펠프스의 코치 바우먼은 어떤 불의의 사고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해 펠프스에게 깜깜한 밤중에 일부러 불을 켜지 않은 채 훈련을 시킨 적이 있습니다. 펠프스는 몇 번의 팔을 휘저어야 50미터를 갈 수 있는지 그때 알았습니다. 열아홉에서 스물한 번 정도였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펠프스는 연습한 대로 숫자를 헤아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역시 스물한 번째 스트로크를 하고 손을 쭉 뻗었더니 터치판이 손끝에 닿았습니다. 그의 계산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서둘러 물안경을 벗고 전광판을 보았습니다. 그의 이름 옆에 ‘WR(세계 신기록)’이란 글자가 번쩍거렸습니다.
[참조: ‘습관의 힘; PART 2 기억의 습관’, 찰스 두히그, 갤리온]
오늘은 설날입니다. 설날은 새 해의 첫 시작이기도 하지만 또한 먼저 가신 분들을 기억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먼저 가신 분들을 기억하면 한 해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좋은 결심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 복음의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더 실감 나게 다가옵니다. 그때 예수님은 구원자가 아니라 심판자로 오실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주님께서 갑자기 오시는 날을 잘 준비할 수 있을까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연습해야 합니다. 매일 죽을 수는 없지만 매일 죽는 것처럼 살 수는 있습니다. 만약 연습을 잘 한 사람이라면 죽음이 크게 두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공부를 열심히 했다면 시험이 두렵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매일을 시험 준비하는 것처럼 살아야 합니다. 결국 우리 삶은 언제 오실지 모르는 그분을 만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그럼 어떻게 죽음을 준비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시험을 준비할 때 어떻게 공부할까요? 매일 시험을 치르듯 공부합니다. 이렇게 미리 실전처럼 준비하지 않으면 막상 죽음이 닥치면 그 공포를 견디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서 매일 잠자리에 들 때의 기분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죽음의 순간이 잠이 드는 순간과 같다고 말합니다. 묘비에도 “아무개가 열심히 살다 편히 잠들다.”라는 식으로 쓰여 있기도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매일 죽는 연습을 할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잠자리에 들 때의 기분은 매일 조금씩 다릅니다. 어떤 때는 무슨 불만족이라도 있는 듯 그냥 자면 억울해서 누워서 스마트폰을 보기도 합니다. 혹은 TV를 보다가 잠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가장 안 좋은 습관입니다. 시험을 망치는 지름길입니다. 잠은 죽음과 같기 때문에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도록 모든 전자기기는 침실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을수록 좋습니다. 감사 일기를 쓰고 바로 잠이 드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마이클 펠프스의 가장 큰 적은 두려움이었습니다. 경기 때만 되면 두려움 때문에 근육이 경직돼 본래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우먼 코치가 생각해 낸 것은 잠들 때, 깼을 때, 그리고 경기 전에 비디오테이프를 틀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진짜 비디오테이프가 아니라 자신이 경기해서 신기록을 세우는 상상을 끊임없이 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실제 경기를 그 여러 번 상상했던 것을 한 번 더 반복해보는 것에 불과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매 순간이 경기가 되고 매일 조금씩 긴장하는 연습을 하니 진짜 경기는 연습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우리도 매일을 진짜 죽는 날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마지막 때에 놀라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 죽음을 준비하는 것보다 가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오늘 돌아가신 분들을 기억하고 기리며 동시에 올 한 해도 언제 주님께서 부르시더라도 기쁘게 응답할 수 있도록 하루하루 열심히 연습하며 살아갑시다.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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