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예수님께서는 카파르나움으로 가셨다. 연중 제3주일 (202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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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샘

[묵상] 예수님께서는 카파르나움으로 가셨다. 연중 제3주일 (2020.1.26.)

by honephil 2020. 1. 25.

 

<예수님께서는 카파르나움으로 가셨다.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12-23
12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들으시고 갈릴래아로 물러가셨다.
13 그리고 나자렛을 떠나 즈불룬과 납탈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카파르나움으로 가시어 자리를 잡으셨다.
14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15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 바다로 가는 길,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16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17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
18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가 호수에 어망을 던지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20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21 거기에서 더 가시다가 예수님께서 다른 두 형제,
곧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배에서 아버지 제베대오와 함께 그물을 손질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셨다.
22 그들은 곧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그분을 따랐다.
23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에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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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시대에 갈릴래아는 게으른 사람들이 모여 불법을 저지르는 곳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가난한 노동자들이 대부분이어서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이 너무나 팍팍한 곳이었기에 남쪽 유다 사람들은 갈릴래아를 멸시하였습니다. 먹고살기 바쁘면, 품위 있고 고상한 시간을 즐기는 것은 사치에 가까운 것이지요.


요샛말로 ‘누구는 편안히, 즐겁게 살고 싶지 않겠냐?’는 푸념이 갈릴래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듯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를 선포하신 곳은 바로 갈릴래아였고, 공생활의 대부분도 갈릴래아에서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선택은 가난한 곳이었고, 예수님께서 만나신 이들은 대개가 아프고 소외된 사람이었습니다. 제자들도 그러하였습니다.


내세울 만한 능력도 기술도 명예도 없는 그들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인류 구원의 역사를 써 내려가시기 시작하셨지요.
개천에서 용 나듯 또 다른 성공 사례로 예수님의 공생활을 언급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예수님께서는 부유한 도시나 성공한 이들의 생활 방식에는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예루살렘이나 갈릴래아의 큰 도시, 예를 들어 세포 리스와 같은 큰 도시에서 벌어지는 삶의 구체적 언급은 복음서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읽고 접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과 사회적 약자들의 만남과 그 속에서 펼쳐지는 구원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세상의 부자와 성공한 사람을 무시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각자의 삶의 처지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를 선택하신 이유는 가진 자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가지지 못한 이들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고, 그 연민으로 모든 사람이 행복하고 사람답게 살기 바라시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삶의 처지를 살피는 것에 지치지 말아야겠습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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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일수록 믿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다>
 
복음: 마태오 4,12-23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이 실패했을 때, 역사는 새롭게 써지기 시작했습니다. 역사가들은 그 큰 패배의 원인이 바로 나폴레옹의 고집 때문이었다고 지적합니다. 1812년 그가 원정을 떠날 때 전문가들은 당년의 날씨가 예년에 비해 훨씬 더 추울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들은 철새가 다른 해보다 빨리 이동하고 있는 것을 포함하여 여러 증거를 들면서 러시아 원정을 늦출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자만에 가득 차 있던 나폴레옹은 전문가들의 충고를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당시 프랑스군의 네이 사령관은 그의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군대의 행렬은 무시무시한 눈발에 파묻혀버리고 말았소. 낙오병들은 코사크 군의 깃대 위로 쓰러지고 있소.”

  
사람 안에는 자신이 옳고 자신이 최고라고 속삭이는 존재가 있습니다. 자아입니다. 자아를 믿게 되면 그 사람은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자아의 정체가 뱀이기 때문입니다. 자신도 속고 이웃도 속이는 사람이 됩니다.

아돌프 히틀러가 연설하는 것을 들어보십시오. 확신에 가득 차 있습니다. 자기기만에 빠져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나 독일인들은 자신에 대한 확신에 가득 찬 사람이라면 자신들에게도 이득이 될 것이라 믿고 그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독일인들은 자신을 믿는 사람일수록 어둠 속에 있다는 것을 알았어야 합니다.

자신을 믿는 사람들을 멀리하는 편이 좋습니다. 진리를 아는 사람은 자신을 믿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덜 믿는 사람일수록 진리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자신을 어둠으로 보는 사람이 빛을 보는 사람입니다. 마태오는 이사야 예언서를 인용하며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라고 말하고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라고 합니다. 어둠은 곧 죽음의 그림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는 모든 것이 어둠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어둠이라고 고백하는 이들에게만 빛이 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선포하십니다. 회개하라시는 말씀은 지금까지 우리가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살아왔음을 깨닫고 빛이신 당신을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가 아니시면 모든 것이 죽음의 그림자일 뿐임을 아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래서 마태오복음사가는 베드로에게 “사탄아, 나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 16,23)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이 곧 사탄의 생각입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당신을 유혹하신 사탄에게도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마태 4,10)라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믿는 것이 자신을 섬기는 것이고 그런 사람은 사탄과 같아집니다.

 

가끔은 “죄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와 다른 모든 것이 죄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인간은 그 자체가 어둠이고 죄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처럼 완전하게 되라고 하셨는데 그렇지 못한 모든 것이 죄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죄가 아니십니다. 그런데 내 스스로 의로워질 수 있다고 한다면 그분은 나에게 필요가 없는 분이 됩니다.

내가 빛이면 예수님은 어둠이 됩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마태 5,37)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와가 자기 자신이 뱀과 대화하고 있었음을 볼 줄 알았다면 죄에 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 안에 뱀이 있음을 아는 사람은 자신을 믿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만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오직 주님만을 믿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훌륭한 안장과 말굴레를 쓰고 출정준비를 마친 군마가 우레 같은 말굽소리를 내면서 큰길로 뛰어오고 있었고, 불쌍한 나귀가 무거운 짐을 등에 싣고 같은 길을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길을 비켜! 그렇지 않으면 진흙에다 짓밟아 버릴 테다.”
군마는 교만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군마는 한쪽 눈을 총에 맞아 다쳤습니다. 그래서 군마는 군대에 적당치 않아서 어느 농부에게 팔려갔습니다. 농부는 그 말에 무거운 짐을 싣고 나섰습니다. 언젠가 나귀에게 큰소리치던 기개는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나귀는 짐을 싣고 오는 군마를 물끄러미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고, 당신이구려. 어느 날인가에 전락이 있을 줄 알았소.”
 
자신을 믿게 만들고 자기 판단에 대한 확신을 갖게 만드는 자신의 눈을 버려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처럼 눈에서 비늘이 벗겨져야 합니다. 자신을 빛으로 보는 눈을 잃어야 참 빛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을 존중하고 사람들을 믿어야 한다는 말에 속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사람은 그저 뱀의 소굴에 불과하게 됩니다.

사람을 믿지 마십시오. 그래야 실망하지 않습니다. 그래야 상처받지 않습니다. 자신은 절대 남을 상처 주지 않을 사람으로 믿고 있는 교만 때문에 상처 받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어둠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이 이기적입니다. 실상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다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자신에게 관심 가져주지 않는다고 상처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 나를 위해 주시는 분은 한 분 하느님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빛으로 고백하는 방법은 우리가 어둠임을 인정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내가 빛인 척 해서는 안 됩니다. 
특별히 자신이 옳다고 남을 판단 잘 하는 사람들은 절대 믿지 마십시오. 자신의 판단에 대한 확신이 강한 만큼 빛에서 멀리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가를 증명하려고 애쓰고 있다면 그는 그리스도로부터 그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입니다. 빛이시요 진리이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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