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안식일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 연중 제2주간 수요일 (202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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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샘

[묵상] 안식일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 연중 제2주간 수요일 (2020.1.22.)

by honephil 2020. 1. 22.

<안식일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2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3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하시고,
4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5 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셨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6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곧바로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수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하였고, 예수님의 질문에 입을 다문 채, 좀처럼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한가운데’로 초대한 이상, 우리는 대답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의지를 드러내야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우리 사회에 내쳐지고 소외받고 천대받는 이들이 우리 삶 한가운데 등장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우리는 여전히 입을 다문 채 다른 이들과 하느님께서 어떻게 하실지 쳐다만 보고 있을까요? 어쩌면 그런 수동적 침묵은 우리의 비겁함과 잇속 계산에 따른 이기심에서 말미암은 것은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노기를 띠십니다.


그리고 손이 오그라든 이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명령하십니다. 이 명령은 우리의 이기심을 깨부수는 명령과 같습니다.
“마음을 열어라. 이웃을 향하여라. 더 이상 너의 ‘밥그릇’만 채우지 말아라.” 하고 예수님께서 다그치십니다. 세상은 이러한 예수님을 없애려고 계획합니다. 세상은 제 ‘밥그릇’을 위하여 신념도, 사상도 내팽개칩니다. 바리사이들이 헤로데 당원들과 예수님을 없애려고 모의합니다.


우리 역사로 보면, 일제 시대에 민족주의자들과 친일파가 한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어울리지 않는 이 두 집단이 함께 모의를 한다는 것이 신기하지만, 제 밥그릇 앞에서는 민족도, 나라도, 옳음에 대한 열망도 내팽개칠 수 있는 것이 세상인가 봅니다. 이런 세상에 그리스도인들이 지켜 나가야 할 것은 단 하나, 정의를 향하여 ‘손을 뻗는 일’입니다. 꽉 막힌 세상의 이기심 그 한가운데서 세상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펼쳐 나가는 일입니다. 그 일을 하려고 우리는 오늘도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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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각자가 믿는 것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산다>
 
복음: 마르코 3,1-6

하루는 하늘에 떠 있는 해와 달이 서로 다투었습니다. 서로가 자기주장을 내세우면서 고집했습니다. 해는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나뭇잎은 초록빛이다. 바다는 푸른빛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언제나 바삐 움직인다. 그 결과 세상은 언제나 시끄럽다.” 반면 달은 상반되게 주장했습니다. “무슨 소리야? 나뭇잎은 은빛이야. 내가 매일 보는데 그걸 모르겠어? 바다는 검고 사람들은 집에서 나오질 않아서 세상은 언제나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단 말이야.”
 
그때 바람이 지나가다가 그들이 다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바람이 웃으면서 중재에 나섰습니다. “얘들아, 그만 싸워. 너희들은 괜히 싸우고 있는 거야! 해가 떠 있을 때는 나뭇잎이 초록색이고 세상이 떠들썩한 게 맞고 달이 떠 있을 때는 달이 말한 것도 맞아. 나는 구름이 끼었을 때 회색 바다도 보고 나뭇잎이 검게 보이는 것도 보았어.” 그러나 해와 달은 자신이 본 것이 맞는다는 의견을 절대로 굽히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렇게 해와 달은 서로 만날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그리고 믿는 대로 보이게 된다. 사랑에 조언이 필요치 않은 이유는 결국 자기 맘대로 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이 알고 믿고 있는 것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해석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 ‘확증편향’입니다. 결국 어떤 사람이 무언가를 바라보는 시선은 자신이 믿는 바를 확증하려는 편협한 시각인 것입니다. 각자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려는 시각으로 보기에 어떤 보이는 것에 대해 옳고 그름에 대한 논쟁은 무의미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나의 믿음이 올바르지 않으면 그 사람은 아무리 옳은 판단을 해도 오류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정당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저 정당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 좋아하는 이유를 그 정당들이 내는 정책이 옳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삼성을 좋아하는 사람은 갤럭시를 살 것이고 애플이 좋다고 믿는 사람은 끝까지 아이폰을 살 것입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논하기 이전에 나의 믿음이 옳은지, 그른지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라고 시작합니다. 의도가 불순한 자들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믿고 원하는 것은 자신들의 이익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남에게 불필요한 피해가 가는 것도 옳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타인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물으십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들은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무엇이 합당한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알기는 하지만 자신들의 의도와 상반되기 때문에 알아도 모르는 것입니다. 머리로 따지는 옳고 그름은 마음의 의도를 넘어설 수가 없습니다.
 
내가 옳고 그름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가져야 다른 모든 것도 옳고 그름을 올바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내가 믿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성찰해보면 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인간이 행복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니 안식일에 이웃의 병이 치유되어 행복해지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하느님의 뜻과 어긋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옳다고 믿고 사셨던 것을 옳다고 믿고 살겠다는 마음을 굳혀야 합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셨는데 나는 ‘부자가 되어야 행복할 거야!’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조금 미워하며 사는 게 더 편해!’라고 믿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믿으셨던 것을 나도 믿게 될 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올바로 판단하게 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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