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예수님께서는 권위를 가지고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ㄴ-28
카파르나움에서,
21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22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23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소리를 지르며 24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25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26 더러운 영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27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라,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 하며
서로 물어보았다.
28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곧바로
갈릴래아 주변 모든 지방에 두루 퍼져 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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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당과 더러운 영의 만남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의 율법을 읽고 해석하는 공간, 그리하여 하느님의 현존을 믿고 깨닫는 공간인 회당에 더러운 영에 짓눌린 이가 들어올 수는 없었습니다.
마르코 복음의 저자는 현실의 당위를 깨뜨리고 있습니다. 함께할 수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함께해서 즐거운 사람이 있습니다. 평소에 서로 ‘코드’가 맞는 사람들과만 어울리다 보면, 낯선 이들에 대한 근거 없는 적대감은 이유 없이 커져 갑니다.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은 그가 더러워서가 아니라, 더럽다고 여기는 세상 사람들의 이유 없는 적대감에 희생되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과 더러운 영을 분리하십니다. 더러운 영의 말은 이러하였습니다.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사람 사이를 갈라놓고 사람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이 더러운 영입니다. 서로를 향한 시선이 서로를 멸망시킬 듯 날카롭다면 우리는 더러운 영에 취하여 사람다움을 잃어 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것이 사람다움의 회복이었고, 사람다움은 이 세상에 함께하지 못할 사람이 없다는 무한한 자비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얽힌 실타래처럼 꼬인 이념의 논쟁들, 사상의 다툼들, 그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제 목소리 하나 내지도 못한 채 사람 꼴을 잃어 가는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사람입니다. 제 목소리를 내기 전에, 다른 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저만의 ‘코드’에 합당한 이들만 모인 공간(회당)을, 낯선 ‘코드’도 함께 나누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넓디넓은 공간으로 만들 줄 아는 이가 그리스도인입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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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14일 화요일
권위 있는 권력의 사용 (마르 1, 21-28)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마르 1, 27)
참된 권력에 대한 말들이 많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이어야 함에도 남에게 적용할 때와 자신에게 적용할 때 차이기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중심적인 권력의 사용입니다. 자기중심적으로 권력을 사용하기에 그 권력에는 권위가 없습니다. 권위가 없는 권력의 사용은 폭력이 되어 버립니다.
‘권위’란 ‘남을 지휘하거나 통솔하여 따르게 하는 힘’이라는 사전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좋은 리더가 가져야 하는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그 권위는 위에서부터 강제된 것이 아닌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아래로부터 주어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참된 권위에 대해서 묵상하게 하십니다. 권위란 신기하게도 소유하려고 쫓아다니는 사람에게는 오지 않습니다. 참된 권위는 스스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바로 권위란 위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강의를 듣습니다. 그 강의를 들을 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은 없고 유명한 사람들의 이론을 인용을 하거나 널리 알려진 예화를 사용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힘이 있는 것은 자신의 생각이나 이론을 갖고서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하고 말하는 것과 ‘누구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하더라’ 하는 말의 차이일 것입니다. 권위는 자신의 ‘삶’을 말할 때 생겨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성령의 힘을 지니고 있었습니다(14). 예수님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던 것은 하느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에 생겨나는 힘입니다. 삶과 말씀이 함께하는 말씀이기에 권위가 있었습니다. 사랑이 함께하기에 생겨나는 힘입니다.
반면에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사랑을 말하면서도 대상이 중심이 되는 사랑이 아니라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이기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주는 사랑이 아닌 받는 사랑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그 시간에 마침 회당에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마르 1, 24)하고 예수님께 큰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구절을 보면, 악령이 예수님을 더 잘 알아봅니다. 그가 예수님을 부를 때 그냥 예수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고 예수님의 출신지를 넣어서 부릅니다. 자기가 예수님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동시에 악령이 ‘저희’라고 하는 복수형을 사용하는 것은 바로 마귀의 수가 복수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들은 무리를 지어서 다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들의 우두머리가 사탄입니다.
이어서 마귀가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이 말은 자기들이 하는 일과 예수님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니까 간섭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라는 말은 비웃는 말입니다. 이 말은 자기들을 멸망시킬 수 없을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라고 말하고 이어서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하고 덧붙입니다. 마귀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마귀가 예수님을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굳이 덧붙인 이유는 앞에서 그가 예수님을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고 부를 때 나자렛 사람을 나지르인(거룩 한 사람)으로 해석하고 예수님을 그렇게 부른 것입니다. 자기가 예수님을 잘 알고 있다고 주장하기 위한 말입니다.
지금 마귀의 모습을 보면, 개들이 두려움을 느끼면 느낄수록 더 큰 소리로 짓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거룩함’ 앞에서 더욱 발작하는 마귀의 모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일을 하고자 하면 이렇게 마귀는 더욱 기승을 부립니다. 이러한 마귀의 방해함을 느낄 때마다 우리는 내가 하느님과 더욱 가까이 있다는 확신을 가지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 앞에서는 꼼짝을 하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의 명령에 저항한 번 하지 못하고 떠나는 마귀의 모습을 예수님께서 ‘조용히 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라고 명령하시자 떠나는 마귀의 모습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마귀는 그냥 떠나지는 않고 마귀에 들렸던 그 사람을 사람들 한가운데에 내동댕이칩니다. 이것은 일종의 분풀이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분풀이가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는 신앙인에게 마귀는 접근하지 못함을 압니다.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마귀를 쫓아낼 힘도 함께 갖고 있습니다. 내가 어둠의 세력의 공격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 에수님의 이름으로 이 어둠의 세력을 쫓아내면 됩니다. 내가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마귀는 접근하지 못합니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면서 우리와 우리 가족들 모두가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일상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거룩한 하루’를 지내시도록 기도합니다.
정건석 프란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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