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주간 수요일
복음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9-39
그 무렵 예수님께서 29 회당에서 나오시어,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셨다.
30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사람들이 곧바로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3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32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34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그러면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35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36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37 그분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39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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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의 장모가 누워 있던 집에서부터 온 갈릴래아까지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이들은 모두 아픈 이들이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십자가가 도시의 야경 속에 뒤엉켜 있는 오늘,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이들은 누굴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봅니다.
몸가짐이 단정하고, 생각이 올곧으며, 일상을 성실함으로 꾸며 가는 이들을 볼 때, 참 신앙인이라고 칭송합니다. 반면에 괜한 울분으로 세상을 비꼬듯 비판하며, 제 인생조차 남 탓하듯 허투루 대하는 이들의 ‘삐딱함’을 보면서 신앙인의 모범을 찾기는 거의 불가능하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예수님을 좇는 이들은 모두 아픈 사람이었습니다. 복음 선포는, 아픈 이들에게는 기쁜 소식이었지만, 아픈 것도 아쉬운 것도 슬픈 것도 고통스러운 것도 없는 이들의 몫은 아니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제일 위험한 순간이 ‘이만하면 되었다.’라고 되뇔 때가 아닐까 합니다. 영육으로 ‘결핍’을 느낄 때, 우리는 이웃에게, 하느님에게 손을 내밀 때가 있습니다. 사실 손을 내미는 것도 꽤 힘든 일이지요.
부끄럽기도 하고, 내가 이런 존재밖에 안 되나 싶어, 속상한 마음이 먼저라 손을 내밀기가 힘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다시 되뇝니다. 예수님을 좇는 이들은 모두 아픈 사람이었습니다. 잠시만 손을 내밀어 이웃을, 세상을 향하여 도와 달라 외쳐 보면 어떨까 합니다. 그리고 그 손을 맞잡을 사람이 바로 신앙인이라는 사실을 자주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서로 손을 잡으려고 성당에 모이는 것입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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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15일 수요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잊지 않게 하는 기도 (마르 1, 29-39)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마르 1, 35))
그리스도인으로 불림받는 것에 대해서 참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신원을 확인하게 하고 삶의 목적을 알게 하기 때문입니다.
목적 있는 삶과 목적이 없는 삶의 차이는 무엇이겠습니까? 목적이 있는 삶은 희망이 있는 삶입니다. 목적이 없는 삶은 좌절과 방황의 삶을 살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나의 삶의 자리에서 전해야 하는 그 사명을 갖고 살아갑니다. 따라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매 순간순간 우리의 삶의 목적에 대한 점검이 필요합니다. 이를 잘 실천하고 있는지 질문해 봐야 합니다. 가장 좋은 선교는 이 사명을 실천하는 것임을 깨우쳐 주십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변화’ 보다는 ‘안정’을 추구합니다. ‘떠남’ 보다는 ‘머묾’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항상 새롭게 태어나야 하는 삶입니다. 안정이 아닌 변화를, 머묾이 아닌 파견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깨어있지 않으면 힘든 삶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어떤 일을 하던 단기적인 효과에 연연하지 말고 기다림의 인내를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는 갈라티아 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낙심하지 말고 계속 좋은 일을 합시다. 포기하지 않으면 제때에 수확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갈라 6, 9) 하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그를 새로운 곳으로 파견하십니다. 아버지와 고향과 친척들을 떠나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자신도 모르는 미지의 땅으로 오로지 하느님에 대한 믿음 만을 갖고 생명을 걸고서 떠납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 떠남의 결과는 바로 그와 그의 후손들이 모든 사람들의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땅의 축복과 수많은 자손들의 축복도 있지만 가장 큰 축복은 바로 축복의 통로가 되는 축복인 것 같습니다.
축복의 통로가 되는 삶은 나 혼자 만이 하느님의 축복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축복이 전달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기쁜 소식을 나를 통해서 이웃들이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회당을 떠나서 야고버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의 집으로 가셨다고 합니다. 베드로가 아직 예수님의 제자로서 불림을 받기 전이기 때문에 시몬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마귀를 쫓아내시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은 심한 열에 시달리고 있는 시몬의 장모를 고쳐달라고 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인에게 가까이 가셔서 손을 잡고 일으키시니 그 열이 가셨다고 합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병이 마귀의 작용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손을 잡고 일으키신다는 말의 의미는 바로 마귀의 지배 하에 있던 사람을 이제 거룩함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열이 즉시 가시고 시몬의 장모는 즉시 예수님의 일행들의 시중을 들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치유가 완전함 것이었음을 알게 합니다. 동시에 예수님께서 하시는 치유의 사역은 아마도 즉각적인 주님의 도구 됨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몬의 장모는 치유됨과 동시에 즉각적으로 예수님의 일행을 위해서 시중을 듭니다. 아마도 예수님의 일행을 위해서 음식을 접대했음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많은 은총을 청하고 또한 받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청하는 열정은 강하지만 받고 난 뒤의 삶은 참으로 소극적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감사와 봉헌의 삶에는 참으로 소극적인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온갖 질병에 시달리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치유를 받습니다. 이들로부터 떠나가는 마귀들도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마귀들이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귀들을 야단을 치시며 마귀들이 당신이 그리스도이심을 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마귀들을 통해서 당신이 메시아이심을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보다는 사람들의 믿음을 통해서 고백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른 새벽에 예수님께서는 외딴곳으로 가셨다고 합니다. 루카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기도를 하러 가셨다고 보도를 하고 있지 않지만 마르코 복음 1 장 35절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기도를 하시기 위해서 외딴곳으로 가셨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권위와 능력을 체험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떠나지 않도록 청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루카 4, 43) 하고 말씀하시면서 그곳을 떠나서 유다의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인간은 소유를 원하지만 하느님은 나눔을 원하십니다. 인간은 머묾을 원하지만 하느님은 떠남을 원하십니다. 인간은 안정을 원하지만 하느님은 변화를 원하십니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면서 우리와 우리 가족들 모두가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 기도는 꼭 필요합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거룩한 하루를 지내시도록 기도합니다.
정건석 프란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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