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마르코 6,1-6) - 연중 제14주일 (202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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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샘

[묵상]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마르코 6,1-6) - 연중 제14주일 (2021.7.4.)

by honephil 2021. 7. 4.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2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3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6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행복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모든 순간이 행복으로 가득 차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의 삶은 하루에도 열두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갑니다. 그것은 아마도 대부분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다가도 다른 이들이 가진 것과 비교하기 시작하는 데에서 비롯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행복이 불행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행복하기를 바라면서도, 남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불행 속으로 밀어 넣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도 우리에게 행복의 조건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십니다. 악을 물리치시고 병자들을 고쳐 주시며 아픔을 없애 주시는 하느님의 나라는 모든 이에게 행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이내 비교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자신과 비교하고 자신의 아들과 비교합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그 삶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바라봅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 나라라는 행복을 체험하지만, 결코 행복해지지 못합니다.

 

우리는 행복을 추구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실제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존재입니다. 행복하려면 내 곁에 이미 시작된 하느님의 나라를 발견해야 합니다. 받은 것에 감사하고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신이 가지지 못할 것에 마음을 두는 순간, 하느님의 나라는 지옥으로 바뀌게 됩니다. 타인을 자신의 행복을 재는 도구로 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함께 기뻐해 줄 때 나에게도 행복이 찾아올 것입니다.

 

최종훈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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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마음을 가지기 위한 연습>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 고향인 나자렛에서 환영받지 못하십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닫혀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누군가의 마음이 닫혀있다면 그 사람과 친해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열린 마음과 닫힌 마음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

 

    매일 톱을 들고 산으로 가는 할머니가 계십니다. 그 할머니는 시집올 때는 사랑을 받고 예뻤지만 남편에게 심한 폭력을 당하고 살면서 마음의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편이 죽자 아이들을 무시당하지 않게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산에서 톱질을 해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제는 건강입니다. 환상을 보고 환청을 듣습니다. 눈에서 고름이 나는데도 병원에 가지 않습니다. 자녀들이 다 성장했는데도 여전히 산에 올라 보통 사람이 들기도 어려운 커다란 나무를 메고 내려옵니다. 식수와 가스가 단절되어 더러운 물과 오래된 식자재로 식사를 합니다.

 

    할머니의 건강을 위해 제작팀에서 의료진을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할머니는 톱을 휘두르며 그들을 위협합니다. 할머니는 그들이 자녀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무디게 만드는 방해꾼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동네 사람들까지 음식을 가져다주며 도와주려 하지만 언제나 할머니의 마음이 열릴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출처: ‘긴급 출동한 의료팀이 톱으로 위협당함’, 유튜브 채널, ‘우아한 비디오’]

 

    마음이 닫혔다는 말은 상대를 이미 내 방식대로 규정했다는 뜻입니다. 할머니는 자기 생각으로 모든 것을 규정합니다. 지나가는 자동차들이 자신을 납치할까 봐 두려워합니다. 이는 모두 이전에 받은 상처 때문에 생긴 두려움에서 기인합니다.

 

    두려우면 자신을 해칠 사람인지 아닌지 저절로 구분하게 되기 때문에 상대를 규정하고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누군가가 다가가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밥을 주고 쓰다듬어 주려 다가가는데 자신을 해칠까 싶어 무조건 이빨을 드러내고 위협하는 개와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고 마치 자신들이 그분에 대해 다 아는 듯이 말합니다. 그분의 부모와 형제들과 학교 성적까지도 다 아는데 자신들에게 무슨 복음을 전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라고 하시며 그들에게는 복음을 전하실 수 없으셨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려면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만약 제가 일반 대학 1학년 때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를 읽기 시작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제가 될 수 있었을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사적 계시는 무조건 좋지 않다는 편견 섞인 말을 듣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그것에 대해 조금은 열린 마음이 있었기에 10권의 책을 다 읽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열린 마음이란 ‘규정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사람들은 바오로 사도가 처음에 교회를 박해할 때 그를 적으로 여겼지만, 그는 가장 훌륭한 복음 전파자가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우주보다도 큰 신비입니다. 우주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면서 우리가 어떻게 사람을 규정할 수 있겠습니까? 나를 규정하는 사람들은 일단 떠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들에게 규정당하고 그렇게 자신이 믿어버리면 자신 안에서 일으키는 주님의 신비로움까지 잃게 됩니다.

 

    예수님은 열린 마음을 지닌 사람에게 들어오십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베들레헴 사람들은 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 마음이 닫혀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한 부부가 메시아의 부모가 될 것을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심판하는데 버릇이 들어있었기 때문입니다.

 

    10년 전 브루클린의 거리에서 구걸하던 한 노숙자 테드 윌리엄스.
그가 구걸하는 표지판에는 자신에게 신이 내린 목소리가 있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우연히 한 기자가 테드와 대화를 나누었고 그때 촬영한 그의 목소리가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자 여러 방송국에서 그를 성우로 섭외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지금은 억대 연봉을 받는 성우가 되었고 노숙자들을 위한 구호단체도 만들어 가난한 사람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출처: ‘구걸하는 노숙자에게 말을 걸자 튀어나온 천상의 목소리’, 유튜브 채널, ‘타임 스낵’]

 

    한 사람은 온 우주보다 큰 ‘신비’입니다. 사람이 신비가 되게 하시는 분은 신비 자체이신 하느님이십니다. 사람을 하느님이 만드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우주도, 혹은 우리 육체도 잘 모르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느님의 모습을 지닌 인간을 안다고 규정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을 규정할 때, 마치 성체를 눈에 보이는 밀떡이라고 믿어버릴 때 그 밀떡을 통해 오시는 그리스도를 막아버리게 됩니다.

 

    열린 마음을 가지기 위해 해야 할 유일한 일은 자신의 처지를 겸손되이 인정하고 누구도 판단하거나 규정하지 않는 연습입니다. 판단을 멈추십시오. 그것이 겸손이고 지혜입니다. 

 

https://youtu.be/e9fZlBzR7II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마르코 6,1-6) - 연중 제14주일 (2021.7.4.)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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