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요한 17,11ㄷ-19) - 부활 제7주간 수요일 (2021.5.19.)
본문 바로가기
영성의 샘

[묵상]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요한 17,11ㄷ-19) - 부활 제7주간 수요일 (2021.5.19.)

by honephil 2021. 5. 19.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11ㄷ-19
그때에 예수님께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기도하셨다.
11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12 저는 이들과 함께 있는 동안,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켰습니다.
제가 그렇게 이들을 보호하여,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멸망하도록 정해진 자 말고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13 이제 저는 아버지께 갑니다.
제가 세상에 있으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들이 속으로 저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14 저는 이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는데,
세상은 이들을 미워하였습니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5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 주십사고 빕니다.
16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17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18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저도 이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19 그리고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들이 속으로 저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려”고 성부께 가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기쁨을 충만히 누린 이들로 이 세상은 변화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속하지 않으신 것처럼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느님께 속한 사람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회칙 「복음의 기쁨」에서 ‘세상의 소비주의와 자기만족의 탐욕스러운 마음과 가벼운 쾌락에 대한 무절제한 추구, 무뎌진 양심은 우리에게 세상의 만족만을 찾게 하고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기쁨을 더 이상 느낄 수 없게 한다.’(2항 참조)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것만 찾으려는 마음을 지닌다면 더 이상 충만한 기쁨의 삶을 살지 못하고 성령 안에서 사는 삶도 살 수 없습니다. 충만한 주님의 기쁨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다가오고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언제나 새로운 기쁨을 누립니다. 이 기쁨은 주님께서 누구에게나 주시는 기쁨으로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때 얻어집니다.

 

주님과 인격적 만남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 모르겠다면, 기도의 깊은 기쁨 속에서 주님을 체험하기 어렵다면, 먼저 내 주변의 이웃이나 가까운 가족과 지인에게 나눔을 통하여 다가가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고 친히 이르신” 예수님의 말씀을 명심하라고 전합니다. 주님과 인격적으로 만나 누구도 빼앗아가지 못하는 충만한 기쁨으로 살아갑시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웃에게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신우식 토마스 신부


~~~~~~~~~~~~~~~

 

<물에 빠진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언제라도 물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사람뿐>

 

    오늘 복음도 역시 예수님께서 죽음을 앞두시고 아버지께 교회를 위해 기도하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가신다고 하면서도 제자들이 거룩해지기를 원하십니다.

 

​    무엇이든 ‘성령’으로만 거룩해집니다. 성령, 사랑, 생명, 신성, 영광 등과 오늘 복음의 ‘이름’은 다 같은 의미입니다.

 

​    우리도 성령을 받으면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거룩해집니다. 그런데 이런 기도를 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세상의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세상의 고통 속에서도 기쁠 수 있을까요? 성령으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면 그럴 수 있습니다.

 

​    요한복음에서의 ‘세상’은 마치 지옥과 같은 뜻입니다. 이 지옥으로 예수님께서 먼저 뛰어드셔서 우리를 구하러 오셨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감옥에 갇혀 있다면 동시에 기쁠 수 있을까요? 언젠가 나갈 수 있는 희망이 없다면 불가능할 것입니다. 감옥생활이 삶의 전부라면 그 속에서 기쁨을 찾으려고 노력할 것이지만 오히려 그것은 타인을 괴롭히고 자신을 파괴하는 삶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전에 ‘프리즌 브레이크’라는 미국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    누명을 쓰고 무기징역을 받아 갇혀 있는 형을 구하기 위해 동생이 죄를 짓고 감옥으로 들어간다는 내용입니다.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 동생은 온몸에 자신만이 해석할 수 있는 문신을 새깁니다. 그 문신 안에는 감옥의 지도와 탈출할 모든 방법이 들어있습니다.

 

    감옥 안에서는 권력의 다툼이 치열하고 이러나저러나 고통뿐입니다. 모두가 탈출하고 싶어 합니다. 이것이 고통입니다. 어디든 원하는 때에 빠져나올 수 없는 곳이라면 그곳이 지옥입니다.

 

​    만약 물에 빠졌다고 합시다. 그런데 언제든 나올 수 있다면 그것은 수영하는 것이고, 나올 수 없다면 익사 직전입니다. 세상도 그렇고 감옥도 마찬가지입니다.

 

​    언제든 나올 수 있다면 간수이고 그렇지 못하면 수인입니다. 수인인 상태에서는 아무리 행복을 찾으려 하더라도 자신도 고통이고 남도 고통스럽게 할 뿐입니다.

 

    여기서 ‘쇼생크 탈출’도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직 주인공만이 탈출할 구멍을 팠습니다. 그 주인공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지만, 주인공은 자신도 음악을 듣고 수인들도 음악을 듣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아프지만 한 번만 맞고 독방에 며칠 머무르면 그만입니다. 아무도 그런 고통을 감내하려 하지 않았지만, 주인공은 즐겁게 음악을 들으며 마당의 수인들에게 스피커로 음악을 들려줍니다.

 

    이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은 감옥과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뿐입니다.

 

​    그러나 이 감옥에서 나가는 법을 모른다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조금 더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찍어 누릅니다. 그리고 그것을 행복이라 여깁니다.

 

​    하지만 언제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수영선수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수영을 즐기다 물에 빠진 사람을 보면 조금 힘이 들지만, 그 사람을 도울 수 있습니다. 이것이 왜 예수님께서 그토록 ‘기쁨’을 강조하시는지 그 이유를 말해 줍니다.

 

    프리즌 브레이크의 주인공도 역시 감옥에서 생활하면서도 아무 두려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갈 방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도 목숨을 잃을 두려움으로 사는 사람이라면 자신도 행복하지 못하고 누구도 도울 수 없습니다. 우리는 구원의 길이 몸에 새겨져 있는 사람들처럼 세상의 모든 시련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기뻐야

    

    신학교에 들어가면 신학생들이 제일 걱정하는 것이 공부를 못 하거나 아니면 사고를 쳐서 신학교에서 쫓겨나는 일입니다. 규율이 매우 엄격합니다. 그런데 저는 1학년 때부터 몰래 술을 마셨고 불법을 저질렀습니다. 이것이 자랑은 아닙니다. 다만 쫓겨나도 성 프란치스코처럼 살면 된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와 함께 술을 마신 동기가 방에서 토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술도 마셨겠다 그 친구의 토한 것을 치워주었습니다. 그런데 그전에 제가 세면실에서 소리를 좀 크게 질러서 학생 지도 신부님까지 들이닥쳤습니다. 사실 그 신학생이 저 때문에도 많이 마신 이유가 있는데, 그리고 소리를 지른 것도 저인데, 그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신 소공동체는 1달간 외출 금지를 당했고 저는 친구가 토한 것을 치워주는 약간 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잘했다는 말이 아니라, 만약 제가 술을 마신 것 때문에 찍혀서 쫓겨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다면 그 토한 것을 치우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란 것입니다. 만약 신학교가 나갈 수도 없고 나가면 큰일 나는 감옥과 같은 곳이라고 여겼다면 남을 도울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은 세상에서 죽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을 탈출할 수 있는 구멍은 십자가입니다.

 

​    십자가를 통해 세상을 탈출해 그리스도처럼 아버지께 가는 길을 알고 있다면, 세상이 아무리 큰 시련을 주더라도 잘 견뎌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쁨으로 타인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세상의 시련 가운데서도 구원의 확신으로 항상 기쁘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    먼저 행복하지 않으면 누구에게도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평화입니다. 

     https://youtu.be/MN9vAAwXbb4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요한 17,11ㄷ-19) - 부활 제7주간 수요일 (2021.5.19.)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