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20-26
그때에 예수님께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기도하셨다.
“거룩하신 아버지, 20 저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21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
22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영광을 저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23 저는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는 제 안에 계십니다.
이는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시고, 또 저를 사랑하셨듯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24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들도
제가 있는 곳에 저와 함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 창조 이전부터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시어 저에게 주신 영광을
그들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25 의로우신 아버지, 세상은 아버지를 알지 못하였지만
저는 아버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도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6 저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려 주었고 앞으로도 알려 주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저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오늘 미사의 화답송에서 시편 저자는 “하느님, 저를 지켜 주소서. 당신께 피신하나이다.”라며 애절하게 기도합니다. 이는 우리가 언제나 어디서나 주님께 바치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갖은 핑계와 불만으로 투덜대며 주님을 외면하고,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흔들릴 때도 있지만 하느님의 인도 없이 우리의 인생은 무의미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어려움에 닥칠 때 피신할 곳은 결국 하느님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대단한 가문의 자손이며, 뛰어난 학식과 능력을 가진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힘들고 어려운 삶, 때로는 매 맞고 비난받는 삶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감옥에 갇히지만 그 누구보다 행복하고 기쁨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아갑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윤리적 선택이나 고결한 생각의 결과가 아니라, 삶에 새로운 시야와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한 사건, 한 사람을 만나는 것”(「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1항)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지금까지 자신이 살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삽니다.
때로는 우리의 삶이 의롭고 거대하다고 느끼지만 예수님 앞에 서면 한없이 이기적이고 세상적이며 불행한 삶임을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주님과 하나 되지 않으면 우리는 착각과 자기 합리화에 빠져 살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 당신 안에 하나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이 일치의 삶은 우리를 변화하게 하고, 기쁨으로 가득 찬 삶으로 이끕니다.
신우식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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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미워하면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없게 되는 이유>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드리는 장엄한 기도입니다. 먼저 당신 자신을 위해 기도드리시고 그다음은 당신 제자들, 그다음은 그 제자들에게 믿음을 이어받은 신자들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오늘 복음은 당신과 아버지, 또 당신과 제자들이 아버지 이름 안에서 하나인 것처럼 당신을 믿는 모든 이들도 당신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청하십니다. 하나가 되게 해 달라는 뜻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게 해 달라는 뜻입니다. 사람을 하나로 만드는 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먼저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그분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이는 큰 신비를 내포합니다. 주님 사랑 안에 머물지 않는다면 누구와도 하나가 될 수 없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방울토마토’(2008)는 가난의 참상을 보여주려 노력한 영화입니다. 아버지에게 버려진 6살 손녀딸과 철거 직전인 집에서 함께 사는 할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할아버지는 폐지를 주워 손녀를 먹여 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건설회사 사장은 폭력배들을 동원해 할아버지의 손수레를 망가뜨리고 집까지 허물어버립니다.
할아버지는 화가 나서 그 사장의 집에 몰래 들어갑니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들을 실컷 먹습니다. 그리고 몰래 나오려다 보니 개에게 준 갈비찜이 보입니다. 할아버지는 개밥인 갈비찜을 가져와 손녀에게 주며 먹는 모습을 행복하게 바라봅니다. 손녀는 갈비찜을 먹으며 너무 맛있어합니다. 그리고 또 그 갈비찜이 먹고 싶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또 몰래 그 못된 사장 집에 들어가 개에게 손을 물려가면서 개밥을 가져와 손녀에게 먹입니다.
그런데 손녀는 계속 몸이 아파져 옵니다. 병원에 갔더니 그냥 영양제만 맞으면 나을 것이라 합니다. 하지만 손녀는 더욱 약해지며 계속 갈비찜을 원합니다. 할아버지는 온몸이 물려가며 피를 흘리면서 갈비찜을 훔쳐 와 손녀에게 먹입니다.
그런데 손녀는 이유도 모른 채 갈비찜을 먹으며 죽어갑니다. 그리고 결국 죽음에 이릅니다. 실은 그 집의 집사가 사장을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개보다도 못하게 취급하는 사장이 미워서 개밥에다가 약을 조금씩 타서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그것도 모르고 그것을 훔쳐서 계속 손녀에게 준 것입니다.
만약 할아버지가 그 사장을 미워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그 집에 침입할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독이 든 음식을 손녀에게 먹일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으로 보자면 할아버지는 가난과 고통의 이유를 그 사장에게 돌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손녀를 사랑하려 하지만 그 사랑 안에는 미움의 독이 묻어 손녀와도 계속 관계가 멀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 사람을 미워하면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없게 되는 이유는 사랑은 하느님 사랑 안에 머물러야 하는데 그 사랑 밖에 머물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서로 하나가 될 수 있는 사랑의 방은 하느님 울타리 안입니다. 그리고 그 울타리는 사랑의 법을 지키는 사람만 머물 수 있습니다.
남편을 미워하면서 자녀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이미 사랑을 공급받을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포도나무 가지이지만 포도나무에서 떨어져 나와 어떤 사랑의 열매도 자녀에게 줄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러면 결국엔 자녀와의 관계도 좋지 않게 되어있습니다.
신부님을 미워하면서 성당 소공동체 사람들과는 좋은 관계가 유지될 수 있을까요? 점점 멀어지게 되어있습니다. 교회 밖에 머물며 교회 안의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항상 이런 식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먼저 미운 마음이 일어난다면 그것이 없어질 때까지 1시간이고 10시간이고 그리스도께 붙어있으며 사랑을 청해야 합니다. 그런 후 미운 마음이 사라졌을 때 누군가를 만나십시오. 그전에는 누구를 만나 아무리 좋은 것을 주려고 해도 그것이 그 사람과 멀어지게 만드는 원인이 될 것입니다.
폼페이의 수도관을 생각하면 좋을 것입니다. 폼페이는 수준 높은 상수도 시설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다 단명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 수도관이 납으로 되어있었기 때문입니다. 납중독에 걸려 모두 죽었던 것입니다.
행복은 사랑과 관계에서 옵니다.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관계가 잘 안 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면서 그 행복하지 않은 것을 다른 사람을 통해 채우려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과도 멀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나에게서 미움의 납이 내가 더 사랑하는 사람에게 흘러 들어가지 않도록 빨리 그 미움을 없애야 합니다. 그 유일한 방법은 기도 안에서 나를 봉헌하고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해 살게 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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