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1-11ㄴ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1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말씀하셨다.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도록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
2 아버지께서는 아들이 아버지께서 주신 모든 이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도록
아들에게 모든 사람에 대한 권한을 주셨습니다.
3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4 아버지께서 저에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완수하여,
저는 땅에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였습니다.
5 아버지, 세상이 생기기 전에 제가 아버지 앞에서 누리던 그 영광으로,
이제 다시 아버지 앞에서 저를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
6 아버지께서 세상에서 뽑으시어 저에게 주신 이 사람들에게
저는 아버지의 이름을 드러냈습니다.
이들은 아버지의 사람들이었는데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7 이제 이들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모든 것이
아버지에게서 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8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말씀을 제가 이들에게 주고,
이들은 또 그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제가 아버지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참으로 알고,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9 저는 이들을 위하여 빕니다.
세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들을 위하여 빕니다.
이들은 아버지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10 저의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고
아버지의 것은 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을 통하여 제가 영광스럽게 되었습니다.
11 저는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지만 이들은 세상에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갑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오늘 복음은 성자께서 자신의 전 존재를 성부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때가 왔음을 아시고 그 시각을 향하여 나아가십니다. 이 ‘때’는 사람의 아들이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순종과 겸손으로 이루어진, 영광스럽게 되는 때이며(마태 25,31 참조), 성자께서 성부를 영광스럽게 하시는 때입니다. 또한 성자를 보내신 성부께서 이끌어 주시어(요한 6,44 참조)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느님의 한없는 사랑을 거저 선물로 받는 때입니다.
“흠 없는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신”(히브 9,14)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날마다 성찬례를 통하여 당신의 생명에 동참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미사 안에서 믿음으로 주님을 알아봅니다. 미사 때 사제가 “신앙의 신비여!”라고 말하는 순간은 얼마나 오묘하고 신비스러운 시간입니까?
사제가 “신앙의 신비여!”라고 말할 때, 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신비하고 거룩하며 기쁨으로 가득 찬 부르심에 동참하기로 다짐하며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라고 응답합니다. 이 응답에는 십자가와 부활로 길이 영광 받으시는 주님을 찬미하며, 우리가 이 신비로운 ‘때’의 증인으로 살겠다는 다짐이 들어 있습니다. 단 한 번의 희생으로 우리의 죄를 씻으신(히브 7,27 참조) 주님을 따라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입니다.
우리는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으로 매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미사에 참례하기도, 성체를 모시기도 어려운 시기입니다. 그렇기에 죽기 전에 단 한 번이라도 성체를 모시는 것이 소원이었던 순교자들의 신앙심을 배우게 됩니다. 여러 어려움으로 성체를 모시기 어렵더라도 우리의 삶에서 사랑을 실천하기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체를 모실 수 있는 미사에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을 적극적으로 찾아, 신앙의 신비에 참여하도록 노력합시다.
신우식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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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에게도 남편에게도 사랑받는 엄마가 되려면?>
오늘 복음부터는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마지막 기도를 드리는 내용이 나옵니다. 오늘 기도 내용의 핵심은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영광’을 청하는 것입니다. 당신을 영광스럽게 했으니 이제 당신이 나를 영광스럽게 해 달라고 하십니다.
요한복음에서 ‘영광’은 ‘이름을 빛나게 하는 일’입니다. ‘이름’은 ‘본성’을 의미하기에 ‘사랑해 달라!’고 하시는 말씀과 같습니다. 사랑받는 것이 영광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로부터 사랑받으시는 근거는 자녀들에게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이 아버지를 사랑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교회에 주신 모든 것들이 아버지에게서 온 것임을 알려주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이 아버지에게서 와서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을 알려주었다고 하시며 그래서 제자들로부터 영광을 받으시기도 하지만 수고했다고 칭찬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마치 가족의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시는 듯 보입니다. 남편으로부터 받은 것들로 자녀들을 키우며 자녀들에게 아버지를 알려주어 아버지를 공경하게 한 것입니다.
아버지를 알려주지 않고 자신 혼자 자녀를 키우려는 어머니는 분명 자녀를 자기 행복을 위해 이용하게 됩니다. 그러면 언젠가는 자녀에게 원망을 듣는 날이 옵니다. 자녀가 찾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과 소명입니다.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알려줄 수 있는 대상은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입니다.
전국 1등을 하라고 골프채로 아들을 때려 아들이 결국엔 어머니에게 칼을 든 사건이 있었습니다. 엄마가 자녀에게 사랑받으려면 그렇게 하라고 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어야 합니다. 자녀가 엄마 혼자 탄생할 수 없는 것처럼 자녀의 정체성도 엄마 혼자 알려줄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삼위일체 신비의 일부입니다. 내 뜻으로 자녀를 키우려다가는 항상 양쪽으로부터 칼을 맞게 되어 있습니다.
얼어 죽어가면서도 아기를 살리려고 자신의 겉옷으로 아이를 감싸고 죽은 어머니에게 아이를 맡아 키운 미군이 다 성장한 아이를 데려왔습니다. 그때 아이는 어머니 무덤에 자신의 겉옷을 벗어 덮으며 “어머니 그때 얼마나 추우셨어요!”라고 말하게 하였습니다.
미군이 아이를 어머니에게 소개해주지 않고 어머니의 사랑을 일깨워주지 않았다면 아이는 정체성의 혼란으로 아무리 사랑하며 살라고 양아버지가 가르쳐도 그 말을 따르지 못합니다. 왜 자신을 미국까지 데려왔느냐며 원망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양아버지가 사랑받는 길은 아이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사랑의 소명을 일깨우기 위해 아이의 어머니께로 이끌어주는 중재자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양쪽으로부터 다 사랑받는 길입니다.
티베트 고원에 우뚝 솟은 카일라스산은 시바 신이 산다고 믿어온 만년설이 덮인 신비의 산입니다. 시바 신은 주로 명상과 고행으로 지내기 때문에 그의 아내 파르바티는 늘 춥고 무료했습니다.
하루는 무척 심심해진 파르바티가 시바 신에게 졸랐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만 해 줘요. 나만을 위한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줘요. 이 세상 누구도 들어보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여야만 해요.”
그러자 시바 신이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은 것은 파르바티만이 아니었습니다. 때마침 긴급 보고할 것이 있어서 문 앞에 있었던 신관도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너무 재미있어서 신관은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아내에게 잘 보이기 위해, 마치 자신이 지어낸 이야기인 양 들려주었습니다.
아내는 또한 파르바티의 시녀이기도 했습니다. 아내는 파르바티의 머리를 빗겨주며 자신이 남편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러자 파르바티는 폭풍을 일으키며 시바 신에게 달려가 화를 냈습니다.
“이 세상 누구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를 해준다고 약속했잖아요. 내 시녀까지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해 주셨더군요!”
시바 신은 시녀에게 그 이야기를 누가 들려주었느냐고 물었고 시녀는 겁에 질려 남편인 신관에게 들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신관이 호출되어 사정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네가 몰래 들은 이야기인 것을 솔직히 아내에게 말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신에게 받은 이야기를 인간의 것으로 여겨 전한 것은 큰 벌을 받아 마땅하다. 너는 온 세상을 다니며 네가 들은 이야기를 다 전하여라. 그리고 그 이야기가 나에게서 왔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기 전에는 나에게 돌아올 수 없다.”
[참조: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류시화, 더숲]
자녀가 찾는 이야기는 ‘나는 누구인가? 그래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해답을 줄 진리입니다.
그것을 아버지와 상관없이 어머니가 자신만이 아이의 원천인 듯이 말해준다면 아이는 혼동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고 결국 삶이 힘들어질 때는 그 탓을 어머니에게 할 것입니다.
어머니는 혼자 아이를 낳은 것이 아님을 고백하고 아버지의 존재와 아버지가 자녀에게 원하는 것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녀가 아버지를 향하게 하고 아버지를 닮게 해야 합니다. 인간적인 아버지가 닮아서는 안 되는 모습이라면 하느님 아버지께로 이끌면 됩니다.
자신이 하느님인 양 아이에게 정체성을 부여하고 소명을 부여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자녀에게 머리카락 하나도 만들어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창조자인 양 자녀에게 삶의 방향을 정해주겠다고 한다면 그것이 모두에게 원망을 사는 길이 됩니다.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거든 예수님처럼 자녀에게 아버지를 알려주고 영광스럽게 하는 길을 택해야 합니다. 그래야 남편에게도 자녀에게도 사랑받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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