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그는 나병이 가시고 깨끗하게 되었다. - 연중 제1주간 목요일 (20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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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샘

[묵상] 그는 나병이 가시고 깨끗하게 되었다. - 연중 제1주간 목요일 (2020.1.16.)

by honephil 2020. 1. 16.

복음
<그는 나병이 가시고 깨끗하게 되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0-45
그때에 40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41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42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
43 예수님께서는 그를 곧 돌려보내시며 단단히 이르셨다.
44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해진 것과 관련하여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45 그러나 그는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셨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방에서 그분께 모여들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병 환자와 예수님께서 주고받은 대화에는 하나 된 마음의 따뜻함이 느껴집니다. 예수님의 치유는 당신의 능력을 드러내는 영웅 이야기로 서술되지 않습니다. 상대의 처지에 공감하고 화답하는 방식으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에게 사제에게 가라고 하신 이유도 서로의 마음이 소통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레위 3,14; 신명 24,8 참조).


나병이라는 병도 문제지만, 그 병 때문에 대립과 반목으로 가득 찬 사람들의 완고함이 치유되기를 예수님께서는 바라십니다. 나병 환자의 병이 치유됨으로써 사람들의 완고함도 치유되기를 예수님께서는 바라고 계십니다. 나병 환자는 자신의 치유를 세상 사람에게 알립니다.


말을 하는 데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자세가 있습니다. 하나는 제 말만을 내뱉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한 말을 건네는 경우입니다. 전자는 사람들의 마음을 닫게 하고, 후자는 사람들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하도록 이끕니다. 복음 선포는 후자의 말입니다. 복음 선포는 서로가 서로의 말을 하는 가운데 널리 퍼져 나가야 합니다. 말은 타인을 향하는 따뜻한 마음을 담아내는 그릇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담아낸 말을 거침없이 쏟아 낸 수많은 순교자들 덕분에 오늘 우리의 신앙은 따뜻한 말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사랑, 희망, 용서, 화해 ……, 그 말들은 우리 교회가 세상에 보여 줄 수 있는 탁월한 선물입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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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신 말씀

 

그때에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곧 돌려보내시며 단단히 이르셨다.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해진 것과 관련하여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그러나 그는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셨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방에서 그분께 모여들었다. (마르 1,40-45)

의료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았던 시절, 성경에서는 온갖 피부병을 통칭해서 다 나병으로 간주하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병의 전염성과 치료의 곤란함은 아마도 당시로서는 온갖 두려움을 불러일으켰을 것이지요.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게다가 나병은 사회생활에서 완전히 배제되기까지 합니다. 레위기 13장은 나병환자들을 하느님 백성에서 배제하는 규정을 명확하게 두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이 악성 피부병에서 고쳐졌을 때, 사제에게 와서 검진받고 확인하는 규정도 두고 있습니다. 공동체에서 추방되어 찢어진 옷을 입고 머리에는 아무것도 쓰지 않은 채 입술까지 가리고 길을 갈 때도 ‘나는 불결한 사람이오’라고 외치며 다니도록 했습니다. 이처럼 정신적 고통과 좌절감이 심각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살아있지만 죽은 것으로 간주되는 이들이었습니다. 살아있으나 아무도 찾지 않는 상태, 나병은 그래서 하느님과 단절된 영적 죽음의 상태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앞에 나온 나병환자는 고침을 받고 돌아갑니다. 주님께서는 모른 척하지 않으십니다. 측은하게 여기어 그에게 손을 대십니다. 나병환자에게 갖다 대신 주님의 손에서는 기적을 일으키는 사랑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는 곧 깨끗하여졌습니다. 주님의 놀라운 능력의 발로입니다. 이 기적이 가르치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께서 나병을 물리치신 의사로 활동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 극한 천형마저도 주님께서 다스리신다는 확신입니다. 이 엄혹한 배제의 논리가 아니라 포용의 사랑이 주님의 일하심이라는 증거입니다.

나병은 당시에는 인간이 극복할 수 없었던 병이었지만, 그러나 주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곧 나병의 자리가 구원의 자리가 됩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죄와 악의 상황일지라도 주님 앞에 무릎 꿇는 이에게는 용서와 치유의 은혜가 나타납니다.


무릎 꿇는 이, 그는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내어 맡김이 상황을 역전시켰습니다.    

남상근 라파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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