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 주님 공현 대축일 (2020.1.5.)
본문 바로가기
영성의 샘

[묵상] 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 주님 공현 대축일 (2020.1.5.)

by honephil 2020. 1. 4.

복음
<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2
1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2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
4 헤로데는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5 그들이 헤로데에게 말하였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사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6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
7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는,
8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9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10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11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12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밝히 드러나심을 경축하는 날입니다.
신앙인에게 예수님의 등장은 반가운 일일 테지만, 믿지 않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존재는 그다지 흥미로운 일이 아닐 테지요. 동방 박사의 등장은 하느님을 믿는 이들 안에서, 또 믿지 않는 이들 안에서 상당한 혼란을 일으킵니다. 하느님을 모르고, 유다 문화를 모르는 이방인인 동방 박사들이 한 말은 종교적인 차원으로만 이해될 성질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다인들의 임금”, 이 말은 당시 정치적 권력을 잡고 있던 헤로데에게는 큰 도전이었습니다.
‘하늘에 태양이 두 개’일 수 없듯이, 유다인들의 임금은 헤로데여야 하였지요.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던 유다의 종교 지도자들은 헤로데에게 그들이 예로부터 기다린 메시아 신앙을 짚어 줍니다. “유다 땅 베들레헴”, 그곳에서 참된 통치자가 나와야 한다는 신앙 고백은 헤로데를 더욱 당황하게 만들었지요. 예수님의 등장은 마냥 좋은 것만도, 마냥 나쁜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등장은 당시 사회에 혼란을 가중시켰습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을 보아도 그렇지요. 돈이 많고 힘이 세고 명예를 중시하는 계층일수록 세상을 바꾸는 데 소극적입니다.
지금 이대로가 편하니까요. 반면에 돈이 없고 힘이 없어 내세울 자랑거리 하나 없는 계층은 늘 새로운 세상을 꿈꿉니다.우리는 이렇게 다양한 세상,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 속에 서로의 ‘다름’을 운명처럼 지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 것에 눈이 멀어 다른 이의 처지를 읽어 내지 못하는 사람은 이런 ‘다양한 세상’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자기 생각에만 갇혀 다른 이의 생각을 존중하지 않는 이들은 참그리스도인이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현은 결국 ‘내’가 ‘우리’ 안에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하는 또 다른 묵상으로 초대합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


성탄에서 우리는 한 어린 생명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기념하였습니다. 그 어린 생명은 자라서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또 우리의 구원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오늘 주님의 공현 축일은 바로 그 생명이 당신을 우리에게 공식적으로 드러내셨슴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마태오복음서의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을 보도하는 기사가 아닙니다. 동방에서 박사들이 베들레헴에 왔다는 오늘의 이야기는,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예수님이었지만, 이스라엘은 그분을 거부하였고, 이교도들이 먼 이역에서 찾아와 예수님을 영접하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해 활동하셨지만, 이스라엘은 그분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 후 그분의 가르침은 이방인들에게 더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 동방박사들이 왔다고 기록한 복음서는 마태오 복음서가 유일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동방박사의 예수님 경배이야기는 마태오 복음사가 만이 갖고 있었던 고유한 자료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반면에 루까 복음서는 목자들이 예수님을 경배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루까 복음사가 만이 갖고 있었던 고유한 자료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일반적으로 복음서에는 중복된 내용들이 많습니다.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된 내용들도 있고, 두 세군 데만 기록된 이야기가 있는데, 예수님을 경배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한 번씩만 나옵니다. 그 이유는 마태오가 목자들이 예수님을 경배한 이야기를 몰랐기 때문이 아닙니다. 또한 루까가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경배한 것을 몰랐기 때문이 아닙니다. 각 복음서를 기록한 목적과 대상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예수님을 대하는 상반된 두 부류의 사람을 보게 됩니다.  열려진 마음과 닫혀진 마음의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이방인의 땅에서 온갖 고통과 어려움을 겪으면서 예수님을 경배하러 온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그 지역에 있으면서도 자신들의 기득권 만을 생각하며 예수님을 죽일려고 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당시의 유다 인들은 그들 만이 선택된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는 오직 자신들 만을 위한 메시아라고 믿었기 때문에 메시아는 자신들로부터 태어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러한 고정관념에 젖어 있던 사람들에게 있어서 저 멀리 이방인의 땅에서 온 동방박사들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 오는 모습은 선택된 민족으로 생각했던 그들에게는 참으로 큰 충격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동방박사들에게는 예수님의 탄생은 말 그대로 예언된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신 기쁜 날이었지만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헤로데와 유대 지도자들에게는 예수님의 탄생이 자신들의 몰락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오신 것이 그들의 기득권을 빼앗기 위해서 오신 분으로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참된 의미를 깨닫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닫혀진 마음으로는, 내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으로는, 자신의 기득권을 소유할려고 하는 그런 마음으로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닫혀진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께서 오신 이유가 자신들이 갖고 있는 기득권을 빼앗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시간과 물질을 빼앗긴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빼앗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주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분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생명 마저도 우리를 위하여 주셨습니다.

이런 성탄의 의미가 우리의 삶의 중심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빼앗고 소유하기 위해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누고 함께하며 생명을 주는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성탄의 참 의미이며 주님의 공생활의 참의미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 공현축일을 지내면서 우리와 우리 가족들 모두가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우리의 이웃들이 우리의 삶을 통해서 주님의 공현을 체험하는 거룩한 하루 지내시도록 기도합니다.

 

정건석 프란체스코 신부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