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산 ] 오색 딱따구리를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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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야기

[ 북한산 ] 오색 딱따구리를 보셨나요?

by honephil 2019. 12. 28.

혹시 북한산에서 오색 딱따구리를 보셨나요?

 

오늘은 오후에 일정이 있어서 조금은 서둘러 오전에 북한산 형제봉을 다녀왔습니다. 코스는 지난번과 같이 정릉에서 시작해서 명상길을 이용했습니다. 그런데 지난번에는 오늘 산행을 기록으로 남기려는 계획을 세우고 중요한 포인트마다 사진을 찍으면서 갔는데, 오늘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산행을 한 탓일까요, 이상하게 지난번보다 더 힘겹게 느껴졌습니다. 오늘 출발할 때 몸 컨디션도 크게 나쁘지 않고, 아침에 밥도 잘 먹고, 커피도 한 잔 마시고 집을 나섰는데, 웬일일까요? 아무튼 그렇게 조금은 힘겨운 산행이 이어지고, 어느 정도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하고 나니 좀 힘든 느낌은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리만큼 산행하시는 분이 없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혼자 만의 명상의 시간을 가지며 터벅터벅 한 걸음 한 걸은 내딧었습니다. 그렇게 조금은 일상화되고 정형화된 산행을 이어가며 무사히 형제봉을 찍고 나서, 올라오면서 봤던, 건너편 봉우리로 가보려 그쪽으로 내려가 봤습니다. 이 곳이 형제봉이라고 했으니 분명히 형과 아우가 있을 텐데, 상대적으로 높은 이곳이 형, 그리고 저 아래쪽에 조금은 작고 산세가 험해 보이는 곳이 아우인가? 그런 생각을 해 가며 그쪽으로 갔는데, 좀 길이 험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내려가다가, 오늘 일정도 있고 해서, 다음번에 다시 와 보기로 하고 일단 발길을 다시 돌려 형제봉 쪽으로 올라왔고, 그 이후로는 하산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 내려오다가,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면 정릉 쪽 개울가로 내려가는 길로 내려가려다가, 갑자기 생각이 바뀌어 그냥 죽 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가다가 한 분과 스쳐 지났고, 잠시 후 또다시 홀로 산행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평소에는 잘 들어보지 못하던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별로 신경을 안 쓰려고 했고 주변에 산새들이 보여서 저 녀석들이 내는 소리니하고 그냥 지나치려 했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뭔가 평소와는 다른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유심히 소리가 나는 곳을 집중해가며 탐색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나, 그동안 제가 북한산에 오면 꼭 다시 보고 싶어 했던 그 딱따구리, 그것도 그냥 딱따구리가 아닌 오색 딱다구리가 제 눈 앞에서 나무를 찍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빠르게, 그렇지만 녀석이 눈치채지 못하게 은밀하게 핸드폰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제가 보았던 그쪽에 대고 녹화를 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방금 전까지 제 눈앞에 보이던 녀석이 화면에 잡히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뭐지 하고 다시 소리 나는 쪽을 응시해보니 아직 녀석은 계속해서 나무를 찍었습니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화면에는 잘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그렇게 애타는 시간이 흐른 뒤에 드디어 녀석의 모습이 카메라 앵글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녹화 버튼을 누르고는 이어서 줌 기능을 이용해 녀석을 확대해서 찍기 시작했습니다. 녀석은 그렇게 한동안 나무를 찍어댔습니다.

 

딱따구리가 나무를 찍는 이유는 나무껍질을 찍어서 벗겨내고 그 속에 들어있는 벌레를 잡아먹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녀석이 좋은 나무를 골랐는지 한동안 계속해서 움직이지 않고 나무를 찍어댔습니다. 그리고는 잠시 후 이제는 더 이상 먹을 게 없어서인지 녀석은 휙 하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촬영을 마치고, 한동안 그곳에서 혹시나 녀석이 다시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고 기다렸습니다. 그렇지만 녀석은 저의 이 바람을 무참히 저버리고는 다시 그곳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녀석의 모습을 보고 또 카메라 앵글 속에 담을 수 있었으니 무척 기분이 좋았습니다. 

 

자연에서 나와는 무관하게 살아가던 어떤 누구를 만난다는 이 느낌은 뭘까요. 왜 저는 이런 만남에 흥분하는 것일까요? 그건 아마도 이들이 이 자연의 진정한 주인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실제 우리 인간은 자연 속에 있기는 하지만 이들처럼 자연이 주 활동 무대는 아니어서 일종의 구경꾼 내지는 방문객이 아닐까요. 그렇기에 이 주인장을 만나 실제로 살아가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는 대사는 없고 단지 내 청각을 자극하는 단순한 듯 단순하지 않은 한 편의  드라마가 아닌 가 싶습니다.

 

오늘 이렇게 저는 자연의 스토리를 한편 잘 보고 갑니다. 직접 녀석에게 말을 전할 수는 없었지만, 내 산행에 한편의 드라마를 선사해준 녀석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한편 녀석의 삶은 혹시라도 방해한 것은 아닌지 살짝 걱정되기도 하고, 아무튼, 오늘 이런 행운으로 더욱 행복한 날이 될 거 같습니다.

 

https://youtu.be/G6 FJDOOww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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