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묵상 ]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시리라. - 대림 제3주일 수요일 (2019.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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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샘

[ 오늘의 묵상 ]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시리라. - 대림 제3주일 수요일 (2019.12.18.)

by honephil 2019. 12. 18.

[ 오늘의 묵상 ]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태 1,20 - 대림 제3주일 수요일 (2019.12.18.)

 

알려주시는 하느님과 받아들이는 우리(마태 1,18 - 24)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마태 1, 23)

성경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말씀을 통해서 계시되는 하느님의 뜻을 잘 알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안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알려 주시는 것이지 나의 노력으로 알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어리석음은  자신의 지식의 틀 안에서 하느님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무한하신 하느님을 유한의 틀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느님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계시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열어 보여주시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말씀과 뜻과 사랑이 담긴 성경은 우리의 지적인 능력과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기도와 묵상과 이에 응답해 주시는 하느님의 계시에 의해서 이해되고 해석될 것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마태오 복음 사가가 요셉에게 초점을 맞추고 루카 복음사가가 성모님께 초점을 맞추어서 예수님의 탄생 사건을 보도하고 있는 것은 이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더 잘 이해하고 더 깊이 체험하게 해 줄 것이라는 학신을 갖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요셉이 마리아를 배려하는 마음’을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탄생하셨는가를 알려 줍니다.  마리아가 요셉이라고 하는 사람과 약혼을 하였는데 그들이 함께 살기도 전에 성령으로 아이를 가졌다고 전합니다. 이 사실을 요셉이 알게 됩니다. 요셉은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남 모르게 마리아와 파혼을 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이러한 요셉의 모습을 보면서 노아의 세 아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가 술에 취하여 옷을 벗고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형들에게 전합니다. 하지만 형들은 아버지의 그 벗은 모습을 보지 않고 아버지 취한 모습을 덮어주려고 합니다.  남의 약점을 공개하는 사람보다 그 약점을 감추어주고 덮어주는 마음을 축복해 주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봅니다. 

요셉이 마리아와 조용히 파혼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서  마리아의 아이는 성령으로 잉태된 아이이니 그녀를 아내로 받아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이름까지 ‘예수’라 하라고 알려 줍니다. 이일들은 하느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하여 알려주신 ‘동정녀가 잉태를 하여 아이를 낳을 것이니 그 이름을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이라는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구원자의 탄생의 배경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요셉에게서 몇가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는, 자신의 약혼녀가 자기와 전혀 상관없이 아이들 가졌다는 사실에 당황하지 않을 남자는 없을 것입니다. 화도 날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자신의 감정보다는 자신의 약혼녀를 생각합니다. 당시의 법대로라면 자신의 말 한마디에 마리아는 돌에 맞아 죽을 상황이었지만 요셉은 자신의 감정대로 일을 처리하지 않고  자신의 약혼녀를 배려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참 사랑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생각합니다. 이 아름다운 요셉의 마음이 참으로 우리의 모습이었으면 합니다. 나보다는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아름답습니다. 

그는 ‘의로운 사람’이었다고 전합니다. ‘의로움’이란 당시의 율법에 충실한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요셉은 율법에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이었슴을 복음서는 강조합니다. 이제는 그 법적인 ‘의로움’이 ‘하느님의 관점에서의 의로움’으로 바뀌어갑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행함에 있어서 의인으로의 변화입니다. ‘젊은이는 규칙을 알고 노인은 예외를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요셉에게 있어서의 의로움이 바로 판단의 의로움이었으면 이제는 사랑의 의로움으로 예외를 알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순간임을 보게 됩니다. 

요셉은 천사를 통해서 전달되는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이의 이름마저도 자신이 짓지 못하고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예수’라는 이름 즉 하느님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라는 의미가 담긴 이름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권리마저도 행사하지 못하지만 요셉은 그것마저도 받아들입니다.


이러한 요셉의 모습이 바로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는데 있어 성모님의 위대한 신앙의 선택과 더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바로 요셉을 통해서 이 세상이 큰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내가 받으려고 하는 축복이 아니라 축복의 통로가 되는 축복을 받은 분이라는 생각을 가집니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면서 우리와 우리 가족들 모두가 하느님의 은총가 사랑 안에서 젊은이들이 추구하는 규칙에 덧붙여서 노인의 예외를 아는 지혜를 실천함과 동시에 축복의 통로가 되는 거룩한 하루되시도록 기도합니다.

 

정건석 프란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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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는 양들을 흩어 버리고 당신도 저버린 목자들을 엄하게 질책하신 다음 당신께서 직접 내려오시어 양들을 다시 모아들이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전에 살던 곳으로 데려오겠다고 약속하십니다(예레 23,1-4 참조). 그리고 이러한 주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날이 온다! …….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주님께서는 성탄에 땅을 진정으로 다스리고 정의와 공정을 이룰 “싹”을 세상에 주십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한 아이로, 참으로 외부의 힘이나 인간의 현세적 특성에 좌우되지 않는 “싹”으로 나타납니다. 이 싹은 무한한 사랑에 힘을 두고 있습니다. 그 사랑은 주님을 하늘에서 내려오시게 하고, 당시의 거리와 광장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도록 인도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레미야가 행한 예언의 완성을 봅니다. 오래전부터 예언된 탄생 사건은 요셉의 개인적이고 매우 고통스러운 인생과 함께합니다. 하느님의 큰 선물은 일반적으로 큰 시련이 따릅니다. 요셉은 희생을 감수하며 자신과 모든 이를 위한 특별한 은총, 곧 세상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의 아버지가 되는 은총을 받습니다. 동시에 내적 기쁨과 완전한 정절을 통하여 마리아와 영적으로 결합하는 삶을 준비합니다. 

 

요셉의 강한 마음과 부드러움에 탄복합니다. 의로운 사람인 요셉은 마리아를 고발하면 그녀가 수치를 겪게 될 것이므로, 남몰래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합니다.남모르게 희생을 받아들이는 것은 요셉의 강한 마음의 표지이지만 이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그의 부드러움입니다. 요셉은 천사가 전하는 소식에 갇혀 있지 않고 희생할 준비를 하며, 하느님 말씀에 열려 있습니다. 주님의 천사는 요셉이 열려 있는 사람임을 알고 그에게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을 전하면서 하느님의 큰 약속을 드러냅니다.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태 1,20 It is through the holy Spirit that this child has been conceived in her. Mt 1,20 바오로딸콘텐츠 (2019.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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