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첫눈 내린 형제봉을 다녀오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북한산 산행이야기입니다.
어제 일기예보에서 눈 소식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아침부터 눈이 내렸습니다. 그렇다고 눈이 왔다고 얘기하기에는 좀 많이 부족하고, 그렇다고 안 왔다고 하기도 그런, 좀 어정쩡한 눈이었습니다. 게다가 날씨도 흐리고 시계도 좋지 않아서 산행에는 그다지 좋은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래도 토요일 아침이면 별다른 일정이 없으면 별다른 준비 없이 집을 나섭니다. 다행히 저희 집에서 북한산은 무척 가깝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에서 나와 약 100여 미터를 걸어가면 "삼각산 가는 길"이라는 계단이 나오고 이 계단을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면 바로 북한산 둘레길과 연결됩니다.
오늘 제가 생각한 산행 경로는 정릉 입구에서부터 시작해 형제봉으로 잡았습니다. 정릉 입구에서부터 약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걸음이 늦은 편이고, 가는 도중에 사진도 찍고 해서 시간이 더 걸린 것 같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이 길을 따라 문수봉까지 갔던 적이 있었는데, 오늘 다시 왔는데, 전혀 그때 기억이 나지는 않는 게 좀 신기합니다. 아무튼, 북한산 정릉 주차장에 들어서서 왼쪽으로 보면 형제봉으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이 길을 이용하지 않고, 곧바로 공원 안내소 쪽으로 가서 가는 길도 있습니다만, 오늘은 왼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집을 나설 때 싸릿 눈 비슷한 게 내렸는데, 정말 많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정릉 입구에서 보니 저 멀리 산 언저리에는 꽤 눈이 쌓인 듯 보였습니다. 눈 쌓인 겨울 산의 모습이 한 폭의 무채색 풍경화를 보는 듯 색다른 느낌입니다.
그렇게 산 입구에서 시작해 약 5분 정도 좀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서니 이정표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오늘 새롭게 발견한 건데 이 이정표 아래 부분에 "명상길 구간"이라는 문구가 보입니다. 산이란 정말 생각하기에 좋은 곳입니다. 그리고 북한산은 서울에서 유일한 국립공원입니다. 그만큼 좋다는 얘기겠지요. 이 "명상"이라는 말만으로 마음이 깨끗해지는 느낌입니다.
오늘은 날씨도 흐리고, 눈발도 날리고, 기온도 낮은 탓인지 주차장도 한산했는데, 막상 이 곳에 당도하니 정말 평소에는 많았던 등산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늘따라 새들도 다들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다만 멀리서 아련히 들려오는 서 오가는 차들의 소음만이 들려옵니다. "아 좋구나!"
차가운 겨울바람이 얼굴을 할퀴고, 나름 두툼하게 껴입은 옷 들 사이로 한기는 파고듭니다. 그렇지만 산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니 온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하고 숨을 가빠집니다. 그래서 끼고 있던 방한용 장갑을 벗고, 목까지 쭉 올렸던 패딩 재킷의 지퍼도 좀 내려 열기를 식힙니다. 그래 이 맛이야. 겨울 산행이 주는 즐거움 중의 하나는 일단 산에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조용한 산행을 할 수 있다는 점과 산 길을 오르며 뜨거워진 몸을 빠르게 식힐 수 있다는 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몸은 금세 식고, 손은 시려오기 시작합니다. 다시 옷을 추스르고, 장갑을 끼고는 길을 재촉합니다. 언덕길이 계속됩니다. 하지만 길은 험하지 않고, 곳곳에 계단이 만들어져 있어 걷는 것이 어렵지는 않습니다. 얼마쯤 갔을까 왼쪽 켠에 오늘의 목적지 형제봉이 나뭇가지들 사이로 조금은 멀리 있는 듯 보입니다.
산행의 묘미 중의 하나는 아무리 높아 보이던 봉우리도 한걸음 한걸음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내 눈앞에 와 있고, 그 봉우리에 오르면 와 내가 이렇게나 높이 올라왔나 하고 새삼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듯 멀리 서는 어려워 보이던 산행길도 터벅터벅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면 정말 생각지도 않은 때에 그곳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또한 아무리 높은 산도 계속해서 오르기만 하는 길은 많지 않다는 겁니다. 경사도가 높은 언덕길을 정말 숨이 턱에 차도록 힘겹게 오르고 나면 그곳에는 어김없이 평지와 같은 구간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우리는 한숨을 돌릴 수 있는 거죠.
그렇게 좀 더 산길을 오르다 보니 길이 살짝 평평해지면서 이정표가 나옵니다. 제가 가던 길을 계속 가면 대성문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정릉탐방지원센터"라고 합니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길을 잡으면 다시 정릉 쪽으로 갈 수 있는 길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쪽으로 아직은 그쪽으로 갈 때가 아닙니다. 그냥 직진을 합니다.
그렇게 좀 더 오르면 또 하나의 이정표가 나옵니다. 대성문까지 2.3Km라는 글씨가 보이며, 앞쪽 저 멀리 형제봉이 우뚝 솟아있는 게 눈에 들어옵니다. 그렇습니다 계속해서 대성 문쪽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이제부터는 계단이 나타나는 빈도가 줄고, 길도 좀 더 험해지는 듯합니다. 그렇지만 걷기에는 무리가 없습니다.
그렇게 쭉 걷다가 보면 왼쪽으로 형제봉의 옆모습이 보이고, 그렇게 더 가다 보면 경사가 거의 없는 길이 나오며 형제봉에 한결 더 가깝게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좀 더 가다 보면 이정표는 없지만, 왼쪽으로 가면 형제봉으로 다다를 수 있는 느낌이 드는 언덕길이 나옵니다.
이때부터는 이전과 달리 조금 긴장이됩니다. 길 곳곳에 낙엽도 제법 쌓여있고, 눈도 있어 조심하지 않으면 미끄러질 것 같습니다. 그렇게 조금은 조심하면서 오르면 정상이 가까운 듯합니다. 왜냐하면 바위가 많아지기 시작했거든요. 그렇게 조심조심 바위를 밟으면 걸음을 옮깁니다. 그리고 잠시 후, 오늘의 목적지 형제봉이 나옵니다.
누군가 친절하게 이곳이 형제봉이라고 알려주는 표지를 해 놨습니다. 북한산 웬만한 봉우리에는 표지판이 있는데, 이곳에는 어찌 된 일인지 없습니다. 아마 준비 중이거나, 아니면 그럴 필요가 없어서 없는 것일 수 있으리라고 혼자 추측해봅니다.
제가 생각보다 형제봉에서의 시계는 좋아 않아 좀 실망입니다. 게다가 오늘은 날씨도 제 편이 아닌 듯합니다. 날씨가 좋을 때 한 번 더 와 보면 좋을 듯싶습니다. 형제봉으로 오는 쪽 길로 접어들어 올라올 때도 사람들을 보지 못했고, 또 막상 이곳에 왔는데도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조용히 '주님의 기도'를 드립니다. 산행을 할 때 봉우리에 도착하면 늘 하는 행동 중의 하나입니다. 오늘도 무사히 산행을 할 수 있음을 감사드리고, 또 나름대로의 기원을 하며 짧은 기도를 마칩니다. 그리고 잠시 머물다 이제는 올라왔으니 내려가야 하겠지요. 그렇게 저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재촉할 것이고, 조금은 때가 늦었지만 점심을 먹을 것입니다. 아 그리고, 샤워하기에 앞서 지난번에 딴 와인을 글라스에 따라서 한 두 모금 정도를 음미하며 천천히 마실 것입니다. 그러면 산행으로 조금은 무거워졌던 몸이 조금은 가벼워진 듯한 느낌일 것입니다. 그리고 혼자 이렇게 되뇔지도 모릅니다. "What a wonderful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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