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마태오19,3-12) -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202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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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샘

[묵상]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마태오19,3-12) -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2021.8.13.)

by honephil 2021. 8. 13.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3-12
그때에 3 바리사이들이 다가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하고 물었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읽어 보지 않았느냐?
창조주께서 처음부터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나서,
5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하고 이르셨다.
6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7 그들이 다시 예수님께, “그렇다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려라.’ 하고 명령하였습니까?” 하자,
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는 자는 간음하는 것이다.”
10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아내에 대한 남편의 처지가 그러하다면
혼인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모든 사람이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허락된 이들만 받아들일 수 있다.
12 사실 모태에서부터 고자로 태어난 이들도 있고,
사람들 손에 고자가 된 이들도 있으며,
하늘 나라 때문에 스스로 고자가 된 이들도 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받아들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질문을 던집니다.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당시 유다인들은 모세 율법을 근거로 하여 이혼을 쉽게 생각하였습니다. 율법에는 ‘아내에게서 추한 것이 드러나거나 눈에 들지 않는 경우, 남편은 이혼 증서를 써 주고 아내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수 있다.’(신명 24,1-4 참조)라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철저히 남성 중심의 법이었습니다.

 

당시 어떤 이들은 이를 간음죄를 저질렀을 때에만 이혼할 수 있다고 엄격하게 해석하기도 하였으나, 또 다른 이들은 사소한 이유라도 이혼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논란 가운데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당신의 뜻을 밝히라고 강요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답변에 따라 방종주의자 또는 엄격주의자로 비난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의 의도를 아시고 더욱 근본적인 혼인 문제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창조주 하느님께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창세 1,27 참조) 남자는 부모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게”(창세 2,24) 하셨습니다. 창조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삼위일체 하느님의 모습으로, 곧 사랑의 구조로 만드셨습니다. 사랑의 구조란 ‘주는 이는 받는 이를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만들어졌기에 사랑을 주고자 할 때 받는 이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내어 주고 받아들여 한 몸을 이루고, 죽기까지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세상에 하느님의 사랑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혼인이 부부간의 사랑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증언하는 것이라면, 사제나 수도자들처럼 독신으로 사는 이들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헌신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증언하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서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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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만을 위한 그런 사랑은 없다>

 

     오늘 복음은 결혼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혼의 가장 많은 이유가 ‘성격 차이’라고 합니다. 성격의 차이로 이혼이 가능한 것일까요? 성격이 똑같으면 더 못 살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라는 질문에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라는 성경 말씀을 인용하시며,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혼이 많은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배우자를 위해 결혼했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배우자만을 위한 사랑이 가능할까요?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아름다운 사랑의 비극이 있습니다.

둘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을 하려다가 로미오도 죽고 줄리엣도 따라서 죽습니다. 이들의 사랑은 상대를 위한 것이었을까요?

 

    약을 먹고 죽은 것처럼 쓰러져 있는 줄리엣을 발견한 로미오는 자신도 자살합니다. 줄리엣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깨어나서 자기 때문에 로미오가 죽은 것을 보고 줄리엣도 자살합니다.

 

    이것이 정말 아름다운 사랑일까요? 상대가 없으면 죽어야만 하는 사랑은 그것 자체로 ‘상대를 위한 사랑’이 아닌 ‘나를 위한 사랑’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상대가 없어져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죽겠다는 말은 상대를 이용해 나의 행복을 채우겠다는 이기적인 마음입니다.

 

사실 그런 마음으로 결혼을 했어도 그 결혼에 실패합니다. 사랑은 결코 이기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을 방해하는 것은 가족들이었습니다. 부모가 자녀의 사랑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결혼이라는 것이 제 부모를 떠나 새로운 사람과 결합하는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사실 로미오와 줄리엣도 부모를 떠나 사랑을 완성하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부모를 떠나서는 절대 이기적인 사랑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상대가 자신에게 더는 행복을 주지 못하면 그런 사랑은 곧 비극으로 끝나고 맙니다.

 

    상대를 사랑한다는 거짓으로 나의 행복을 채우려는 이기적인 사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아를 버리는 순종적인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자아를 통제할 줄 알도록 나를 교육해 준 분들은 부모님입니다. 따라서 부모에게 순종하여 결혼하는 것이 혼자 결정하여 결혼하기 위해 집을 뛰쳐나가는 결혼보다 훨씬 오래갑니다.

 

    부모를 위한 결혼처럼 보일 수 있어도 누군가를 위한 결혼을 하며 자기를 위한 이기적인 결혼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부모 앞에서만은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애라도 씁니다. 그렇게 부모를 위해 사랑하려고 합니다.

 

이 정도만 해도 부모와 상관없이 혼자 사랑하겠다는 이기심에서 많이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결혼도 한계가 있습니다. 부모를 위한 결혼을 해도 자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기 자식이 이 세상에서 잘 되기를 바라기에 부모의 마음을 따르다가는 자신도 그런 이기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자칫 ‘정략결혼’처럼 됩니다.

 

    부모를 위한 결혼을 하는 사람이라면 부모의 마음에 안 들면 자신도 배우자를 마음에 안 들어 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부모가 반대하면 결혼도 못 하고 이혼도 못 하고 때에 따라서는 이혼을 해야만 합니다.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부모의 반대로 배우자에 대한 사랑이 흔들리는 수많은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기적인 사랑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까요?

부모도 피조물입니다. 피조물은 자기 생존을 위해 이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완전히 이타적인 분은 창조자 하느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을 위한 사랑은 그분의 뜻에 따라 이타적인 사랑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에게 결혼을 허락받을 줄은 알면서도 왜 하느님께 허락받는 것은 생각하지 못할까요?

 

    팔다리가 없었던 닉 부이치치는 8살 때 이미 자살 시도를 했고 아내의 손을 잡고 걸을 수도 없는 자신과 누가 결혼해 주겠느냐는 걱정을 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닉 부이치치’는 일본계 미국인 ‘카나에 미야하라’와 결혼하였습니다.

그는 미야하라에게 첫눈에 반하여 사랑을 고백했지만, 미야하라는 평생을 그 사람과 함께 살 자신이 없었습니다.

 

    이때 닉 부이치치는 자신들의 사랑을 하느님께 맡겨보자고 합니다. 1년 동안 만나지 말고 1년 뒤에 다시 만났을 때 서로의 사랑이 더 증가하였다면 그것을 하느님께서 사랑을 허락해 주신 표징으로 믿자고 하였습니다.

 

    어쩌면 미야하라는 단 몇 번 본 그 팔다리 없는 사람을 1년 뒤 더 사랑하게 될 것이란 것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1년 뒤 그녀는 하루하루 닉에 대한 사랑이 더 증가한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하느님을 위한 사랑은 하느님을 위하는 마음 때문에 자아의 이기심이 죽으며 하느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사랑을 하게 됩니다.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하느님 사랑을 닮은 사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온전히 부모로부터 떠나게 됩니다. 부모가 주는 이기적인 뜻으로부터 떠나게 되어 더는 부부의 사랑이 자신들의 부모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우리 사랑은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사랑이라는 확신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사랑은 영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맺어주시지 않는 사랑은 항상 이기적이고 그래서 한계를 경험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https://youtu.be/CNp4IekMioA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마태오19,3-12) -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2021.8.13.)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받아들여라.

마태 19.12

 

Whoever can accept this

ought to accept it.

Mt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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