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요한 12,24-26) -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202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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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샘

[묵상]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요한 12,24-26) -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2021.8.10.)

by honephil 2021. 8. 10.

라우렌시오 성인은 스페인의 우에스카에서 태어났다. 로마 교회의 일곱 부제 중 수석 부제였던 라우렌시오의 임무는 교회의 재산을 관리하고 빈민들을 구호하는 일이었다. 로마의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박해자들이 교회의 보물을 바치라고 하자 라우렌시오 부제는 교회의 재산을 남몰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뒤 그들을 박해자들 앞에 데려갔다. “이들이 교회의 재산입니다.” 이에 분노한 박해자들은 라우렌시오 부제를 불살라 처형하였다. 258년 무렵이었다. 라우렌시오 부제는 가난한 이들이 바로 교회의 보물임을 일깨워 준 성인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24-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25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26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수도였던 ‘라벤나’에 ‘갈라 플라치디아의 영묘’라는 건물이 있습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십자가형 건물의 벽과 천장은 모두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는데, 그곳에 낯선 그림이 하나 있었습니다. 창문을 중심으로 한쪽에는 네 복음서가 놓인 열린 서가가 있고, 반대편에는 성인으로 보이는 사람 앞에 장작불이 피워져 있으며, 그 위에 큰 석쇠 같은 것이 놓여 있었습니다.

 

궁금증은 점점 커져 이를 계기로 성화에 대하여 공부하게 되었고, 어떤 성인을 그릴 때 그와 관련된 대표적 일화나 그의 순교 장면을 묘사하여 그 성인을 나타내고 교육에 이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바오로 사도는 복음을 전파하고 칼에 목이 잘려 순교하였기에 손에 성경과 칼을 쥐고 있습니다.

 

라우렌시오 부제는 식스토 2세 교황을 도와 일하였던 부제들 가운데 수석 부제로, 교회 재산을 관리하고 구호품을 나누어 주는 일을 하였습니다. 로마 황제는 교황을 체포하여 참수한 뒤, 교회 재산을 관리하는 라우렌시오 부제에게 재산을 모두 내놓으라고 협박합니다. 그는 3일 뒤에 주겠다고 한 뒤, 교회의 모든 보물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그리고 3일 뒤 많은 가난한 이들을 데리고 황제에게 가서 “보시오, 이들이 교회의 보물입니다.” 하고 말합니다. 이에 격분한 황제는 라우렌시오 부제를 석쇠에 구워 죽이는 형벌을 내립니다. 순교의 순간, 그가 “이쪽은 다 구워졌으니 다른 쪽도 마저 구워라.” 하였다는 말이 전설로 내려옵니다. 그래서 그의 상징물은 석쇠입니다.

 

오늘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을 지내면서, 우리도 질문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성당의 보물은 무엇인가? 나의 가장 큰 보물은 무엇인가?’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이들이 우리를 구원합니다”(제3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담화 중에서).

 

서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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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소멸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법: 창조의 도구로 쓰이는 것>

 

    오늘은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성 라우렌시오 부제는 당시 교황청 재산을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었고, 황제가 재산을 모두 가져오라고 하자 그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다 나누어주고 자신은 뜨거운 석쇠에 순교하는 영광을 받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 많은 열매를 맺으면 영원히 살 것이라 하십니다. 그러려면 먼저 자기 목숨을 미워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열매를 맺으려면 밀알은 필연적으로 썩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생명을 소비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생명을 내어주는 사람이 되라는 뜻입니다. 그래야만 영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피조물에서 창조자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요르단강 계곡에 두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곧고 훌륭히 자랐고 다른 하나는 볼품없었습니다. 두 나무는 예루살렘 성전의 일부분이 되고 싶어 했고 그것이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라 여겼습니다.

 

    드디어 다 자란 두 나무는 잘려 각자 필요한 곳으로 갔습니다. 곧고 잘 자란 나무는 정말 예루살렘 성전을 짓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매일 사람들에게 경배를 받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볼품없었던 나무는 말 먹이통으로 쓰였습니다. 매일 더러운 음식을 받아내야만 하는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추운 겨울밤에 한 아이가 구유 위에 놓였습니다. 아기가 놓였고 가난한 사람들이 와서 경배하였습니다. 성전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기뻤습니다. 그 아기가 성인이 되었고 성전에서 이 성전이 완전히 허물어질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영광을 받던 나무는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리고 자기 소원대로 사람들이 그 사람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는 것을 멀리서 지켜보았습니다.

 

    몇 년이 흐른 후 로마 군사들이 쳐들어와 성전을 완전히 허물어버렸습니다. 그 나무는 불에 타서 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구유를 들고 로마로 가져갔습니다. 산타 마리아 마죠레 성당이 지어졌고 그 볼품없는 구유는 성당 제단 밑에 모셔졌습니다. 2천 년이 흘렀지만, 그 볼품없었던 나무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공경을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다인들이 지은 성전엔 하느님 법이 없었습니다. 공경을 받는 것을 즐기며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내어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나무는 여전히 피조물로 남은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은 소멸합니다. 열역학 제2 법칙에 의해서입니다. 모든 존재는 쓰레기가 되어가고 사라져 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지구도 소멸할 것이고 태양도 소멸할 것입니다. 태양의 수명은 100억 년이고 지금 50억 년을 살았으니 이제 50억 년 남은 것입니다. 모든 별이 그렇듯 지구도 소멸해 가고 있습니다. 지구 내부의 열이 조금씩 빠져나가고 있는데 그것이 다 빠져나가면 부스러기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 인간 때문에 먼저 사라질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에너지’를 조금씩 잃어갑니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건물은 허물어지고 기계는 낡고 사람은 땅이 됩니다. 그리고 그 땅도 언젠가는 사라집니다. 따라서 피조물의 위치에 있다면 누구든 소멸합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를 모셨던 나무는 자신을 소멸하여 누군가에게 포근함을 선사하였습니다. 이처럼 나를 죽여 타인에게 생명과 행복을 주는 일을 ‘사랑’이라고 합니다. 사랑은 창조자의 속성입니다. 사랑하면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은 모기처럼 살려고만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자녀를 위해 목숨을 바칩니다. 창조자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창조자의 것입니다. 사랑이 곧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를 생각해봅시다. 자동차는 가만히 놓아두면 흙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인간이 기름을 넣고 고치며 잘 사용하면 그 차는 아주 오래 사용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협력하는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삽이 있어야 농사를 지을 수 있다면 농부는 그 삽을 소멸하도록 내버려 둘까요, 아니면 잘 보존할까요? 당연히 하나의 피조물이지만 자신의 창조 활동에 협조하기 때문에 자신이 창조 활동을 하는 한 그 삽은 보존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엔 딱 두 종류의 인간밖에 없습니다. 피조물과 창조자입니다. 모기와 예수입니다. 생존하려는 자와 죽으려는 자입니다. 사랑이 없는 자와 있는 자입니다.

 

    사랑하면 그 본성상 창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은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는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존재하는 한 창조는 영원히 지속하고 그 창조가 지속하는 한 그 창조를 위해 쓰이는 도구들도 영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창조’는 나의 에너지를 내어주는 것이기에 곧 ‘나의 죽음’을 수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 생명을 미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창조의 협력자가 됩시다. 어차피 다 죽습니다. 그러나 사랑에 투자해 보는 것은 가치 있는 일입니다. 영원히 살 수도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https://youtu.be/W_uvrD8YsRw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요한 12,24-26) -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2021.8.10.)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 12.24

 

If a grain of wheat

falls to the ground and dies,

it produces much fruit.

Jn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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