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육신을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마태오 10,24-33) -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202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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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샘

[묵상] 육신을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마태오 10,24-33) -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2021.7.10.)

by honephil 2021. 7. 10.

<육신을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24-3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24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
25 제자가 스승처럼 되고 종이 주인처럼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사람들이 집주인을 베엘제불이라고 불렀다면,
그 집 식구들에게야 얼마나 더 심하게 하겠느냐?
26 그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
28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30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31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32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33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강의를 끝마치고 나면 스스로 강의에 대한 평가를 합니다. 내용은 어떠하였는지, 강의에 참여한 이들의 반응은 좋았는지 반성하는데, 그 평가는 언제나 박합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제가 채우지 못한 것은 하느님께서 채워 주셨다고 믿으며 주님의 은총을 청합니다. 또한 사소한 내용을 말하더라도 대단하게 받아들여 주는 신자분들이 있기에 감사합니다. 이러한 반성 가운데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열정입니다. 얼마나 진심으로 강의를 준비하였는지,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삶의 이야기로 다가갔는지, 그리고 최선을 다하였는지 되돌아봅니다.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한없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정의를 부르짖으며 옳은 일에 나서고,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고 행하려는 노력들이 부끄럽고 어색할 때가 많습니다. 다른 이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판단할지 의심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가르치시는 예수님께 배워야 합니다. 그분처럼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겨 드리고 의지하는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때로는 사람들 앞에서 선포하고 외치는 것이 오지랖이 넓은 것 같고 어색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외면하고 숨고 피하며 살아갑니다.

 

주님께 맡기는 삶은 우리의 두려움을, 어색함과 창피함을, 그리고 나약함과 죄스러움을 봉헌하는 것입니다. 그 봉헌으로 더 많이 채워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오로지 사랑과 열정만 있으면 됩니다. 그분 안에서, 그분과 함께 살아가고 싶은 바람과 희망만 있다면, 우리의 삶을 통하여,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하여 그분께서는 세상 속에서 당신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여러분 자신이 귀한 존재임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최종훈 토마스 신부


~~~~~~~~~~~~~~~

 

<사랑은 지금 속한 세상을 찢을 용기를 준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이 세상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이들을 두려워한다면 영혼까지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은 그 사람을 부끄럽게 여기실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사람이 죽음을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느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저도 죽음이 두렵습니다. 그러나 이전보다는 덜 두렵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주님을 조금 더 알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알아갈수록 당연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줄어들게 되어있습니다.    

 

    주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아기를 사랑하면 큰 차에 뛰어들기도 합니다. 사랑이 이렇게 죽음의 두려움도 이기게 만드는 이유는 사랑이 영원한 생명의 보장이기 때문입니다.

 

    아기는 어머니 뱃속에서 어머니 사랑만 받으며 삽니다. 그러나 더 넓은 가정이라는 세상으로 나아오면 가족을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그것을 넘어서면 이제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할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지금 있는 세상에 갇히게 되고 제 삶을 살 수 없게 됩니다. 지금 세상을 극복하여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힘은 지금 함께 사는 사람들이 나를 죽이더라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여기 피로와 무기력감, 자살에 대한 유혹을 느끼는 막 40대에 접어든 미혼 여성의 삶을 보고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이 여성은 공무원이라는 안정된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연봉은 많지 않았지만, 그녀가 만족스럽게 살아가기에는 충분했습니다. 1남 1녀 중 첫째로 태어난 그녀는 소위 한국의 전형적인 장녀였습니다.

 

    아버지를 일찍이 사고로 잃은 그녀는 고등학생 때부터 집안의 기둥 역할을 맡아왔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도 사춘기도, 질풍노도의 시기도 그녀에게는 사치에 가까웠습니다. “네가 빨리 자리를 잡아 어린 남동생을 경제적으로 도와줘야 한다.”라는 어머니의 말에 따라 청춘도 연예도 뒤로하고 오직 안정된 직장을 잡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남동생이 재수, 삼수를 하는 동안 학원비는 언제나 그녀의 몫이었습니다. 대학에 합격하자 남동생은 그녀가 평생 엄두도 내보지 못한 해외 어학연수를 다녀오기를 원했고 그다음은 사업을 하기를 원했습니다. 사업비용은 어머니의 대출로 이루어졌고 어머니의 대출금은 당연하게도 그녀가 갚아나갔습니다.

 

    동생의 결혼을 여러 날 앞둔 어느 날 어머니의 다음 말은 그녀를 폭발하게 하였습니다.

 

    “너희 아버지가 남겨준 아파트 있지? 그거 네 동생 신혼집으로 주기로 했다. 그래도 명색이 남잔데 집 한 칸은 해줘야 사돈 보기에도 체면이 서지.”

 

기가 막힌 그녀가 “그러면 엄마는 어디로 이사할 건데?”라고 묻자 어머니는 당연한 듯 말했습니다.

 

    “너희 집으로 가면 되지. 이제 같이 나이 먹어 가는 모녀끼리 친구처럼 한 번 살아보자!”

그녀도 이번만큼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생애 처음 반대의견을 내본 뒤 돌아오는 것은 어머니의 순식간에 일그러진 얼굴과 폭언,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빨대 꽂아 다 빨아먹은 동생의 적반하장 반응이었습니다.

 

    “불효녀”, “욕심 많은 년”,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누나 왜 그렇게 엄마 힘들게 해!”와 같은 비난이었습니다.

 

    몇 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가 남겨준 아파트는 동생이 신혼집으로 쓰고 있고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의 집에 함께 살고 있습니다. 만나던 남자 친구는 어머니의 반대로 헤어졌습니다.

     

[출처: 『이제 독성관계는 정리합시다』, 권순재, 생각의 길]

    

    위 여성의 문제는 이전 세상을 찢을 용기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자궁이 좋아서 자궁을 찢을 용기가 없다면 아기는 자궁보다 더 넓은 세상을 맛볼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가정에서도 어머니, 아버지를 버릴 용기가 없다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자신의 세상에 머무르도록 딸과 아들을 자기가 꼭 필요한 사람으로 만들려는 어머니가 나쁜 사람입니다. 나뿐인 사람인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도록 자신을 버리게 할 의무가 있습니다. 만약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도 우리를 자신들에게 충성하도록 붙잡아놓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여러 방법으로 위협을 합니다. 돈을 덜 준다던가 빼앗는다던가, 사랑하는 가족을 잃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만약 이 여러 위협을 견뎌낼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사람은 어쨌건 하느님 나라로 나아갈 준비가 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느님은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집착하여 두려움 속에 당신을 증언하지 못하고 당신을 믿는 것을 부끄러워한 것을 이해하실 수 있으실까요?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세상의 많은 회유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안다고 증언하셔서 순교하셨습니다. 이 모습이 천국으로 나아갈 준비가 된 분의 모습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이용하려고 두려움이란 무기로 우리를 잡아두려 합니다. 그러나 사랑엔 두려움이 없습니다.

 

    제가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를 읽고 또 성체조배도 하며 결국엔 사제의 길로 부르심에 응답하기로 했을 때 적지 않은 반대가 있었습니다.

 

    먼저 아버지의 반대가 있었고 여자들의 반대도 있었으며 다니던 학교도 지금까지 공부 잘해놓고 왜 그러느냐고 전화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두려움을 극복할 힘은 더 큰 사랑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세상 사람들을 더 구원하고 싶은 사랑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 사랑이 이 세상에서 저를 붙잡는 힘을 이겨내게 하였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모든 성소자들이 그러할 것입니다.

 

    위 40대 노처녀는 어머니와 동생이 자신을 미워하고 원망해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웠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유롭게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랑은 영원하신 하느님의 본성이기 때문에 영원하지 않은 것들을 끊을 힘도 줍니다. 따라서 사랑을 많이 성장시킨 사람은 이 세상에서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꾸준하게 해 나가야 하는 일은 ‘사랑을 성장시켜’ 언제라도 이 세상을 찢고 영원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지니는 것입니다.

https://youtu.be/mOoJSz3KaaI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 육신을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마태오 10,24-33) -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2021.7.10.)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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