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태오 10,7-15) -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202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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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샘

[묵상]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태오 10,7-15) -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2021.7.8.)

by honephil 2021. 7. 8.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9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10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11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12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13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14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이스라엘 성지 순례는 복음서의 평면적이고 문자에 머무는 이야기를 입체적인 그림으로 만들어 줍니다. 감사하게도 저는 여러 차례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성지 순례를 떠나기 전에 순례가 그저 단순한 여행이 되지 않도록 많은 것을 준비하게 됩니다. 순례의 주제를 정하고 공부도 하면서 묵상과 성경 통독으로 순례를 기다립니다. 순례를 할 때에도 주제를 깊이 생각하며 집중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같은 장소와 건물을 보더라도 늘 새롭게 다가오며, 예수님의 말씀과 삶을 아주 가깝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일상도 이런 순례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 파견되어, 그분과 함께 떠나는 순례의 여정입니다. 그 여정은 늘 같은 일상의 반복일지 모릅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을 만나며 같은 일을 하는 일상 말입니다. 때로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고 이유를 찾지도 못하며 그저 흘러가는 시간을 지켜보며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순례의 여정에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주제를 정해 주십니다. 순례의 주제이기도 하지만 순례의 기준이며 가치, 그리고 방식입니다.


첫째는 ‘소유에서부터 자유로움’입니다. 소유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지만,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탐욕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미리 채우려는 마음보다는 감사하고 나누려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머무름’입니다. 이것은 함께 있는 것이며 동감하는 것이고 같이 나누는 것입니다. 기쁨도, 슬픔도, 아픔도, 고통도 그리고 우리가 가진 것도 서로 나누며 평화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집착과 미련에서부터 자유로움’입니다. 집착과 미련은 성공과 좋은 결과만을 가지려는 욕심입니다. 자기만족과 성공을 위해서 더 큰 아픔과 고통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지 말아야 합니다. 놓고 떠날 수 있어야 새로움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일상이라는 순례에서 길을 잃고 헤매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디에서부터,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먼저 예수님께서 알려 주신 주제들에 집중해 보십시오. 그분께서 함께 걸어 주실 것입니다.

 

최종훈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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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것만이 사랑이라고 믿을 때 생기는 위험성>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복음선포로 파견하십니다. 그때 우선 주는 것에 대해 아끼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받은 것을 그대로 내어주는 모범은 그리스도께서 먼저 보이셨습니다. 따라서 주는 것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입니다. 그리스도를 계시하는 삶입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주되 받아내는 것도 무시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주면 반드시 받게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어느 동네에 들어가던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그 집에만 머물라고 하십니다.

 

    다른 집들도 분명 무언가 내놓고 싶을 텐데 한 집만 거덜 내라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한 집에서 받을 수 있을 만큼 최대한 많이 받으라는 뜻입니다.

 

    그래야 주님의 일꾼에게 아끼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부러움을 사게 될 것이고, 그가 주님의 일꾼에게 대하는 신자의 모범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면서도 받아내야 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겠는데, 하나는 ‘자신이 당연히 받기만 하면 되는 줄 알게 된다.’라는 이유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이와는 반대로 ‘받기만 하다가는 부담이 되어 상대를 멀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느님도 선악과를 받으려 하셨습니다. 그런 이유는 내어놓지 않는 상태에서 주기만 하는 것은 좋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첫 조상들은 당연히 받기만 해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누군가를 자신에게서 떠나게 하고 싶다면 주기만 해서 부담스럽게 만들라고 말합니다. 이렇듯 주기만 하고 받으려 하지 않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주는 것의 목적은 그 사람도 내어놓을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드는 데 있습니다.

    

    며칠 전 저의 신학교 입학 동기였던 한 사제가 평화방송에 나와서 7 성사에 대해 설명하며 자신의 성소(하느님의 부르심)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유재선 안드레아 신부는 어려서부터 홀어머니와 함께 살았고 커서는 어머니를 모셔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3학년 때 한 신학생과 한 방에 자게 되었는데 유재선 어린이는 신학생으로 사는 게 좋냐고 물었고 그 신학생은 정말 행복하다고 말하며 한번 신학생이 되어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그는 아무 생각 없이 신학교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자신을 다 내어놓을 수는 없었는지 거의 사제가 될 즈음 8년 만에 신학교를 나오게 됩니다.

 

    그러자 이번엔 그에게 신학교 입학 추천서를 써 주었던 아버지 신부님이 “내가 기도를 해 봤는데, 넌 어떤 식으로든 사제가 될 거라는 답을 받았어.”라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물론 그 말을 믿지는 않았는데, 어찌어찌하다가 프란치스코 전교 봉사회에 입회하게 됩니다.

   

    그런데 삶이 신학교 때보다 더 힘들어서 한 1000번은 짐을 쌌다가 풀었다가 했다고 합니다. 결국, 종신서원을 얼마 남기지 않고 떠나려는 찰나에 십자가에서 어떤 음성을 듣고는 언제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주님께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서원을 하게 됩니다.

    

    이렇듯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일은 우리가 더 많이 가지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내어놓게 하시는 일입니다. 더 많이 가지려고 주님께 가다가는 잘못된 주님을 섬기게 될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예수님께 당신 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쏟아내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모르고 신앙생활을 하면 안 됩니다. 우리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게 만드는 것, 이것이 하느님 사랑의 최종목표입니다.

    

    신원조회도 안 되는 산속에서 40년 동안 홀로 살아온 할머니가 있습니다. 남이 버린 음식을 주워와 먹으며 살았는데 조현병 증세까지 보였습니다.

 

     제작진들이 완강한 할머니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추운 겨울에도 텐트에서 버티며 열흘을 함께 지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졌는지 자신이 한 밥을 나누어주기 시작하였습니다. 역시 그 밥도 보통 사람이 먹기는 역겨울 수 있으나 제작진은 맛있게 먹어줍니다. 할머니께서 조금씩 내어놓을 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자신의 음식을 먹어준 제작진의 소원대로 병원을 가기 위해 산을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참사랑은 이렇게 자신의 것을 내어놓을 수 있을 때까지 끈질기게 계속됩니다. 내어놓을 수 있으면 순종도 할 수 있습니다.

 

    사도들도 이처럼 누군가와 함께 머물며 내어놓을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 자신들에게 순종할 수 있고 그리스도께 순종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도록 파견된 것입니다.

    

    대화할 때 혼자만 이야기하면 그것이 대화일까요? 상대도 말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며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방적인 관계는 없습니다. 사랑은 주는 것을 넘어서서 내어놓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감사의 마음을 일으켜 내어놓게 하시지만, 우리 또한 주님의 기도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무언가 내어놓게 청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주어도 내어놓지 않는다면 그 사람을 떠나는 것이 옳습니다. 내어놓는 빈 곳에 주는 이의 것이 채워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서로 내어놓는 공간에 상대의 것을 채우는 것이 관계입니다. 그래야 상대 안에 내가 살고 내 안에 상대가 살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을 전하는 방법입니다.

 

    주고받음이 없이는 어떤 관계도 형성되지 않고 그래서 복음도 전해지지 않습니다. 기쁘게 내어놓게 만드는 사람이 진짜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받는 것도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https://youtu.be/xD4uKf8lVPs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태오 10,7-15) -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2021.7.8.)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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