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 (마태오 18,19ㄴ-22) -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202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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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샘

[묵상]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 (마태오 18,19ㄴ-22) -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2021.6.25.)

by honephil 2021. 6. 25.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19ㄴ-2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9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오늘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입니다.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 민족이 하루빨리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 기도해 봅니다. 민족의 분단이라는 쓰라린 역사의 상흔이 한 세기가 다 되어 가도록 우리의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칠십 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우리는 기도해 왔습니다. 그런데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여전히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듯 보입니다. “왜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을까?”라는 의문도 가져 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기도에 관련된 말씀과 용서에 관한 말씀이 함께 등장합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께 청하는 것으로 그분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반면에 용서는 인간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역할과 인간의 역할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움직여 오신 전형적인 방법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뜻대로 세상을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언제나 인간과 공동 작업을 하고자 하십니다. 이것은 기도로 청원을 드리는 것만으로 하느님을 움직일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노력이 함께 필요한 것입니다.

 

다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을 바라봅니다. 우리 민족은 지난 칠십 년 동안 하나 됨을 위해서 긴 시간 기도해 왔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 되고자 하느님과 함께하는 노력이 부족하였음을 의미합니다.

 

분단의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우리에게 통일의 필요성과 간절함은 점점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남북이 평화로이 교류하고 소통하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하나 되기를 희망합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며 노래도 불러왔습니다. 희망과 노래만이 아닌 진정한 화해와 용서를 위한 우리의 노력이 필요함을 기억하면서 다시 한번 기도해야겠습니다.

 

박형순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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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에도 100°C가 있다>

 

   오늘은 71년 전 우리나라에 전쟁이라는 무서운 재앙이 시작되었던 때를 기억하며 다시는 그런 비극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일이 없도록 화해와 용서, 그리고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날입니다.


    현재 한국 가톨릭교회는 밤 9시에 주모송을 함께 바치며 평화통일을 위해 마음을 모아 다 함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무언가를 바란다면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이가 무언가를 바랄 때 부모에게 청하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우리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셨고, 당신께 붙어있으면 하지 못할 일이 없다고도 하셨습니다. 그러니 통일을 바라면서 기도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기도한다고 다 될까요?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기도해야 하고 언제까지, 얼마만큼 기도해야 할까요?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낼 때 비가 오지 않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비가 올 때까지 기도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도 이런 정신이 필요합니다. 기도의 힘을 믿는다면 죽기까지 한다고 결심해야 합니다.

 

    기도에는 항상 ‘100°C’가 존재합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기도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건 주님께서 들어주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100°C가 될 때까지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하는 기도가 어디 다른 데로 낭비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계 타듯 탈 날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고 포기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멀리 있는 길을 갈 때는 목적지를 보지 말고 지금 한 발 내딛는 한 발짝 앞만 보며 걸어야 지치지 않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실패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다시 시작했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의 존경을 받는 에이브러햄 링컨은 실패의 연속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의

 

링컨이 9세 되던 해 어머니 낸시 행크스는 “부자나 높은 사람이 되려고 하기보다 성경을 읽는 사람이 돼라.”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20세가 넘도록 제대로 된 직업을 갖지 못했던 링컨은 한때 그가 점원으로 있던 방앗간과 상점을 인수했지만, 곧 1100달러의 빚만 지고 파산했습니다. 이후로도 그의 인생은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24세에 주 의회 낙선, 24에 다시 사업 실패, 26세에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 27세에 신경쇠약 증세, 29세에 의회 의장직 낙선, 31세에 대통령 선거위원 낙선, 34세에 국회의원 낙선, 39세에 46세에 또 국회의원 낙선, 47세에 부통령 낙선, 49세에 상원의원 낙선.”

 

    주위 사람들은 그가 절망의 늪에 빠져 큰일을 저지를 것 같아서 그의 주위에서 칼과 같은 것들을 치웠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그도 “나는 살아있는 사람 중에 가장 비참한 사람이다.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인지도 말할 수 없다. 앞으로 더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는 무서운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의 말대로 하느님의 사람이 되려고 했습니다. 하느님의 사람은 실패까지도 하느님의 계획안에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는 낙선했을 때 이렇게 행동했습니다.
 “난 낙선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음식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배가 부를 정도로 많이 먹었다. 그다음 이발소로 가서 머리를 곱게 다듬고 기름도 듬뿍 발랐다. 이제 아무도 나를 실패한 사람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난 이제 곧바로 또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배가 든든하고 머리가 단정하니 내 걸음걸이가 곧을 것이고 내 목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힘이 찰 것이다. 나 스스로 다짐한다. 다시 힘을 내자. 에이브러햄 링컨!”

 

    그는 일어나 59세에 드디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당신의 놀라운 성공의 비결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하자 링컨은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실패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성경에도 “의인은 일곱 번 쓰러져도 일어나지만, 악인은 불행 속으로 넘어지기 때문이다.”(잠언 24,16)라고 말합니다.

    

[출처: ‘링컨 대통령의 실패’, 다음 블로그, ‘사랑하는 인간’]

    

    믿는 사람에게 실패는 없습니다. 모든 발걸음은 좋은 방향으로 가는 한 걸음이고, 모든 계단은 더 높은 곳으로 향하는 한 계단입니다. 지금은 실패처럼 보이더라도 결국 쌓이는 것입니다. 기도도 버려지는 기도는 절대 없습니다. 도달하지 못했을 뿐이지 결국 쌓이는 것입니다.

 

    100°C는 물에서 수증기로 모양새가 변화되는 온도입니다. 저는 성체조배를 하루 ‘3시간’은 꼭 하려 합니다. 이 ‘3시간’이 어떻게 나왔을까요?

 

    저는 신학생 때는 물론이요, 사제가 되어서도 육체의 욕망과 싸워야만 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가시밭에 맨몸으로 굴렀다고는 하지만 전 그러지는 못하고 운동도 해 보고 찬물로 샤워도 해 보고 그런 생각이 일어나면 바로 잠자리에 드는 등 여러 시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시원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기도를 1시간 할 때와 2시간 할 때가 달랐습니다. 마치 햇빛에 얼음이 녹듯 내 안의 욕망이 내가 성체 앞에 앉아있는 시간에 따라 사뭇 달라진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도시간을 3시간까지 늘렸더니 기적처럼 욕구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아! 나에게 기도의 100°C는 3시간이구나!’

특별히 나 자신을 아주 위험한 상황에 스스로 놓이게 하지 않는 한 3시간의 성체조배는 적어도 대죄는 짓지 않게 만드는 시간이 되어주었습니다. 죄가 곧 고통의 시작이고 하느님과의 단절을 의미한다고 믿으면 죄를 짓지 않기 위해 기도에 의지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둘이나 셋이 모여 함께 기도하면 다 들어주시겠다고 하시고 그다음은 용서해 주라는 말씀이 이어집니다. 이 말은 기도하면 용서할 힘이 생기기 때문에 하루에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미워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그 사람이 용서될 때까지 기도하지 않는다면 용서하기 싫거나 아니면 기도의 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분명 기도로 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반드시 기도가 100°C에 다다라 하늘로 올라갈 온도가 분명 있음을 믿고 포기하지 맙시다.

 

    저도 사실 밤 9시에 기도하는 것을 열심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믿고 꼭 해 보려고 다시 노력할 것입니다. 우리 기도가 쌓이면 언젠가는 남북이 서로 화해하고 용서하고 하나가 되어 그들도 복음을 받아들일 날이 올 것입니다. 이것을 믿으며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내 형제가 낭떠러지로 떨어지려 하는데도 가만히 보고만 있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사랑한다면, 그리고 기도의 힘을 믿는다면 북한에도 복음이 전해지도록 기도를 멈추지 맙시다.

 

    석공이 돌을 깰 때 그 돌이 마지막 망치질에 깨지지만, 그 이유는 그전에 100번의 무의미하게 보이는 망치질로 돌을 약하게 만들어놓았기 때문입니다.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면 헛된 발걸음은 없고 낭비되는 기도도 없습니다.

https://youtu.be/K4d_2qHvQTI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 (마태오 18,19ㄴ-22) -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2021.6.25.)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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