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요한 19,31-37) -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 (사제 성화의 날, 202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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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샘

[묵상]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요한 19,31-37) -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 (사제 성화의 날, 2021.6.11.)

by honephil 2021. 6. 11.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은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공경하며 그 마음을 본받고자 하는 날이다. 이 대축일은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다음 금요일에 지내는데, 예수 성심이 성체성사와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기 때문이다. 예수 성심에 대한 공경은 중세 때부터 시작하여 점차 퍼지면서 보편화되었다. 1856년 비오 9세 교황 때 교회의 전례력에 도입되었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대축일로 지내고 있다.

한국 천주교회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권고에 따라, 1995년부터 해마다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에 ‘사제 성화의 날’을 지내고 있다. 이날은 사제들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복음 선포의 직무를 더욱 훌륭히 수행하는 가운데 완전한 성덕으로 나아가고자 다짐하는 날이다. 또한 교회의 모든 사람이 사제직의 존귀함을 깨닫고 사제들의 성화를 위하여 기도와 희생을 바치는 날이기도 하다.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31-37
31 그날은 준비일이었고 이튿날 안식일은 큰 축일이었으므로,
유다인들은 안식일에 시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지 않게 하려고,
십자가에 못 박힌 이들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시신을 치우게 하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하였다.
32 그리하여 군사들이 가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33 예수님께 가서는 이미 숨지신 것을 보고 다리를 부러뜨리는 대신,
34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35 이는 직접 본 사람이 증언하는 것이므로 그의 증언은 참되다.
그리고 그는 여러분이 믿도록 자기가 진실을 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36 “그의 뼈가 하나도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 하신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37 또 다른 성경 구절은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이를 바라볼 것이다.” 하고 말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구약 성경은 우리에게 무서운 하느님을 소개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백성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며 그들에게 수시로 벌을 내리시고 심판하십니다. 금송아지를 보고 ‘이분이야말로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하느님이시다.’라고 외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분노하시고 그들을 죽음에 이르게도 하십니다(탈출 32,25-29 참조).

 

또한 그분께서는 광야에서 불평을 늘어놓는 백성에게 불 뱀을 보내시어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죽게도 만드십니다(민수 21,4-9 참조). 하느님께서는 거룩하시지만 질투하시는 하느님이기도 하셨습니다(탈출 20,5; 34,14 참조). 그리고 하느님 분노의 절정은 왕국의 멸망으로 구체화됩니다. 우리가 전능하신 분, 천지를 창조하신 분으로 고백하는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인간적인 감정을 표현하시는 분이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처럼 구약의 역사 안에서 자비와 분노의 감정을 모두 표현하셨습니다.

 

그럼 어떤 하느님의 모습이 진짜일까요? 하느님의 진짜 모습은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당신의 사랑하시는 외 아드님을 보내시고, 그분을 죽음에 이르게 하십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연민, 인간에 대한 강력한 구원 의지로 당신의 외 아드님을 인간의 손에 맡기십니다.

 

아울러 예수님 자신도 아버지와 함께 그 사랑을 삶으로 드러내셨습니다. 구약에서 하느님의 분노와 심판이 이스라엘 백성의 멸망에서 절정에 이르렀다면, 신약에서 분노와 심판은 사랑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절정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서 완성됩니다.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 그것은 아버지와 예수님의 사랑 그 자체입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당신을 바치시며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피와 물을 쏟으십니다. 그분의 크신 사랑이, 우리의 언어로 담기에는 너무나도 크신 사랑이, 우리의 몸과 마음에 전해지는 따뜻한 축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박형순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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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마음 : 다 주고도 미안한 마음>

 

    오늘은 ‘예수 성심 대축일’이기도 하고 ‘사제 성화의 날’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은 십자가의 예수님을 창으로 찔렀을 때 ‘피와 물’이 나왔다는 내용입니다. 피와 물은 성사를 상징합니다. 아담의 갈비뼈와도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담의 갈비뼈로 하와를 만드셨듯이,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의 피와 물로 자녀인 교회를 창조하셨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심장에서 나온 피와 물은 온유하고 겸손하신 부모님의 마음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유튜브 동영상 ‘하늘 같은 든든함, 아버지’를 보면 ‘예수님의 마음이 이런 아버지들의 마음과 같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어린 자녀들을 둔 아버지들에게 자녀에 대해 질문하는 설문지를 작성하게 합니다. 자녀의 사진은 얼마나 가지고 있고 자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몇 번이나 하고, 자는 모습을 지켜본 적은 있느냐는 등의 질문입니다.

    

    아버지들은 입에 미소를 머금고 설문지에 답합니다. 그러다 질문이 이젠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얼마나 아느냐는 것으로 바뀝니다. 같은 질문인데 자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으면서도 아버지에 대해서는 너무 무심했다는 미안함에 사로잡힙니다.

    

    이때 미리 녹화해 놓았던 그들 아버지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아버지들은 하나같이 말씀하십니다.
    “항상 미안하죠. 항상 미안해요. 잘해주지 못한 것 때문에. 그게 부모 마음 아닐까요?”

    

    “너에게 해 준 게 얼만데!”라는 마음은 분명 참사랑에서 나온 내어줌이 아닌 이기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행위입니다.
    미안해하는 부모님에게 관심을 두지 못했던 것에 대한 또 미안함을 느끼는 자녀.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과 교회의 마음일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왜 다 주면서도 미안해할까요? 그 이유는 그들도 당신들의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기억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도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먼저 받지 못한다면 내어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도 많이 받은 것에 대해 덜 내어준 것 같아서 미안한 것입니다.

 

    ​따라서 부모님 마음, 예수님 마음은 이미 받은 것에 대한 감사에서 시작됩니다. 나에게 모든 것을 주신 분께 감사할 수 있을 때 예수님 마음을 닮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에게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거저 받은 것입니다. 이것을 알 때 예수님 마음을 닮은 사제, 부모가 될 수 있습니다.

 

    ‘OBS TV’의 ‘멜로다큐 가족’, ‘미안하다, 보고 싶구나’에서 한 아버지가 나옵니다.
딸 둘과 늦둥이 쌍둥이 아들 둘이 있었는데 그만 한 아들이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다 목숨을 잃었습니다.

 

    아버지는 조그마한 카센터를 운영하는데 출근 전 새벽 4시에 일어나 평택에서 매일 새벽 충주에 있는 아들의 산소에 음식을 싸서 옵니다. 음식을 차려놓고 “그때 잘 해 줬어야 했는데 미안하다.”라며 웁니다. 그러며 그는 말합니다.

 

     “아들 묘가 없었다면 못 살았을 겁니다.”
남은 한 명의 아들은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면 숨었다고 합니다. 워낙 무서웠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무서웠던 아버지가 사실은 다 주지 못해 아쉬워하는 그런 사랑 가득한 분이었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왜 그리 아들에게 다 주지 못한 것을 후회할까요? 아마 잘은 모르지만, 본인도 잘 느끼지 못할 수 있지만, 그의 부모로부터 받았던 것에 비해 자신은 덜 주고 있다는 죄송함 때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도 사제로서 예수님 마음을 닮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런 과정에서 부모님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그래도 너희를 굶긴 적은 없었다.”

 

    넉넉한 집안에서 자랐다면 이 말이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저희는 김치도 없이 맨밥을 물 말아 먹은 적도 있고 며칠 동안 계속 라면만 먹어야 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우리 앞에서 하실 수 있는 유일하게 마음이 편한 말씀이신 것이고 평생 이것을 위해 살아오셨음을 느끼게 하는 말씀입니다. 물론 언제나 미안해하시기도 합니다.

    

    만약 제가 매일 강론을 쓰며 신자들에게 양식을 제공하지 않으면 저는 자녀를 잃어 더는 무언가 줄 수 없는 위 아버지처럼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플 것입니다. 어쩌면 저는 그런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이렇게 매일 강론을 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하늘나라에서 적어도 어머니께서 하신 이 말은 하고 싶습니다. 그런 말도 할 수 없다면 매우 후회될 것입니다.

    

    전에 ‘판타스틱 듀오 2’에서 가수 ‘바다’ 씨는 인순이 씨와 함께 아버지에 관한 노래를 부르며 한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모두 가톨릭 신자입니다.

 

    ​특별히 바다 씨는 S.E.S.로 데뷔해서도 1년은 추워도 찬물로만 샤워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자신을 힘들게 키운 부모님께 대한 죄송함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을 가르치기 위해 밤무대를 전전해야 했던 아버지, 학비가 없어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했던 어머니가 아직도 찬물로 샤워하는데 자신만 따듯한 물로 샤워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께 따듯한 물이 나오는 보금자리를 마련해 드리고서야 자신도 따듯한 물로 샤워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받은 것만큼 다 주지 않으면 편안할 수 없는 마음, 사랑을 받은 사람의 마음은 이런 것 같습니다.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았기에 그 사랑만큼 내가 내어주지 못하면 후회막급일 것입니다.

 

    하물며 하느님으로부터 아드님의 생명을 받은 우리들이야 어떻겠습니까?
우리의 생명을 이웃에게 내어주지 않고서는 하늘나라에 가서도 잠이 오지 않을 것입니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 가진 것을 다 내어놓고도 그래도 받은 것에 비해 너무 조금 내어놓은 것에 대한 미안함. 이것이 예수님 마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https://youtu.be/JNGF_s6h64A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요한 19,31-37) -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 (사제 성화의 날, 2021.6.11.)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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