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마태오 5,20ㄴ-26) -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202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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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샘

[묵상]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마태오 5,20ㄴ-26) -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2021.6.10.)

by honephil 2021. 6. 10.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0ㄴ-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1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23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25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26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한번 생각해 봅니다. 우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과 비교된다면 어떨까요? 우리의 의로움이 그들의 의로움을 능가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대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적어도 그들은 율법에 기록된 것들은 형식적이라 하더라도 착실하게 지키면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예수님 말씀에 따르면, 우리의 의로움이 그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못하면 우리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좌절해야 할까요?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의로움은 계명 그 자체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의로움이 커지는 길을 제시해 주십니다. 단순하게 살인하면 안 된다는 계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형제들에게 성을 내지 말아야 합니다. 욕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물 봉헌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물을 봉헌하는 사람의 마음가짐, 이웃들과의 관계가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알려 주신 의로움을 실천하는 구체적 방법입니다. 그럼 우리는 이 말씀을 따라 지키면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이것 또한 쉽지 않습니다. 형제와 이웃들을 향해서 욕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고, 성당에서 예물과 우리의 마음을 봉헌하면서도 원한 품은 사람들과 화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럼 우리는 의로운 사람이 아닐까요? 우리의 의로움은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보다 부족한 것일까요? 그래서 우리에게 하늘 나라는 도달할 수 없는 장소일까요?

 

지금 우리의 의로움은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보다 부족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알려 주신 대로, 우리의 시선을 계명 그 자체가 아닌 우리 주변의 형제들에게 두어야 한다는 사실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박형순 바오로 신부


~~~~~~~~~~~~~~~

 

<나쁜 감정은 숨기고 좋은 감정은 표출하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진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살인’과 같기 때문입니다.

 

    인도에서 2페니(약 20원) 때문에 남편이 아내를 살해한 일도 있었습니다.
남편이 출근해서 바로 차를 한 잔 마시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 값이 2 페니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주머니에 있던 2 페니가 사라진 것입니다.

 

    아내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는데, 아내는 자신을 도둑으로 모느냐며 크게 화를 냈습니다. 이에 남편도 화를 냈고 그것으로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과거의 일들을 끄집어내고 심지어 상대의 집안을 들먹이며 싸움은 더 크게 번졌습니다.
 

    결국,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는 지경까지 온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20원 때문에 살인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댐도 작은 구멍 하나로 무너집니다. 남편이 화를 참았거나 아내가 화를 참았다면 그런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화가 나는데 어떻게 참을 수 있느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 어차피 얼굴에 화가 난 것이 다 드러나는데 뭐하러 참느냐 할 것입니다. 혹은 내가 지금 화를 내지 않으면 상대가 나를 우습게 볼 것이라고도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나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것은 위선이 아니냐고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화를 내야 화가 풀리는 게 아니냐고 합니다. 화를 참고만 있다가는 화병이 걸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성을 내는” 사람이 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밖으로 표출되면 재판을 받는 것입니다.

 

    화를 표출하거나 어디다 분출해버린다면 정말 화가 가라앉을까요? 그렇다고 말한 학자가 프로이트입니다.

 

    프로이트는 화라고 하는 감정을 마치 터지기 직전의 댐으로 보았습니다. 어느 정도씩 자꾸 흘려보내 주어야 댐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프로이트는 분노를 베개를 때리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밟아서 망가뜨리는 방식으로 분출하면 마음을 정화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한편 제임스라고 하는 미국의 심리학자는 프로이트의 접근방식을 매우 위험하게 보았습니다. 화를 내면 더 화가 난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프로이트의 방식은 오히려 더 화를 부추길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누구의 의견이 더 맞는 것 같습니까?

 

    1970년대 초 사회학자 머레이 스트라우스는 관계의 어려움을 겪는 부부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하였습니다.

 

    한 그룹의 부부에게는 자신들의 감정을 솔직히 말하라고 했고 다른 부부들에게는 그런 감정을 삭이라고 했습니다. 부부의 폭력성은 감정을 드러낸 부부들이 더 심했습니다. 말이 점차 격해지며 몸싸움까지 갔던 것입니다.
즉, ‘프로이트 : 제임스 = 0 : 1’이 되었습니다.

 

    에브 에베덴 연구팀은 한 회사가 조만간 대량 해고를 할 것을 알고, 3년 계약을 하고 들어갔는데 1년 만에 해고를 당해야 하는 이들을 면담했습니다.

 

    한 그룹에게는 불만을 마음껏 표출하게 하는 질문을 하였고 다른 그룹에는 그저 회사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정도만 물어보았습니다. 그리고 회사에 대한 적대감을 조사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도 역시 분노를 표출한 집단이 회사에 대한 더 큰 적대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프로이트 : 제임스 = 0 : 2’입니다.

 

    마지막으로 스포츠 분야에서도 이런 실험이 있었습니다.
제프리 골드스타인은 축구와 농구, 풋볼과 같은 경쟁하는 스포츠를 보며 마음껏 소리를 지른 사람들과 체조 경기와 같은 소리 지를 필요가 없는 경기를 본 두 그룹의 공격성을 조사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선수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장면을 본 이들의 공격성이 더 높게 나왔습니다.

 

    저도 로마에 있을 때 축구경기가 끝나고 관객들이 서로 싸워 심지어 사망사고가 잇따르는 것을 본지라 이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분노를 표출해도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증가합니다. 결과는 ‘프로이트 : 제임스 = 0 : 3’입니다.

    

[출처: 『지금 바로 써먹는 심리학』, 리처드 와이즈먼, 웅진 지식하우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사람은 자신이 행동하는 것을 보고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깁니다. 사람은 자기가 어떤 사람이냐는 믿음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내가 아무리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운동을 꾸준히 하면 그 사람은 다시 자존감을 회복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믿는 대로 성공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잘나가더라도 몸이 망가지면 자신이 그런 존재라고 믿어버려 잘 나가던 사업도 실패합니다.

 

    미국의 한 해병대 장군은 그래서 세상을 바꾸려거든 이불부터 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높여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행동은 곧 나의 믿음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화를 내면 나는 화를 잘 내는 폭력적인 사람이 됩니다. 그렇게 믿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어버린 이상 폭력도 쓰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꾹 참더라도 화가 나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씩 자신이 화를 안 내는 사람으로 믿게 됩니다. 그러면 다음번에는 조금 덜 화가 납니다. 

 

    그러니 화는 내는 것보다 삭이는 것이 더 좋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하나이기에 화내는 사람이 아니야!”라는 말을 덧붙이면 더 좋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항상 행복해지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행복을 표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믿어버리게 되고 그러면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화를 내면 찌푸려지게 되어 있는 부부에 보톡스를 했더니 화가 덜 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습니다. 화를 내니까 더 화가 나는 것입니다.

 

    내가 표현하는 것이 곧 내가 됩니다. 그러니 좋은 것은 표현하고 나쁜 것은 감춥시다. 화가 났다고 말하면 되지 화를 낼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좋은 감정은 드러나게 하고 나쁜 감정은 삭입시다. 그리고 그 이유는 내가 그리스도와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믿읍시다. 그러면 화가 나야 할 때도 화가 안 나고 감사의 마음이 솟아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나쁜 감정은 숨기고 좋은 감정은 표출하십시오. 결국, 내가 자주 하는 행동이 나를 만듭니다.

 

https://youtu.be/O2KFwC8dWys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마태오   5,20ㄴ-26) -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2021.6.10.)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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