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21-28
그때에 예수님께서 21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물러가셨다.
22 그런데 그 고장에서 어떤 가나안 부인이 나와,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23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이 다가와 말하였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24 그제야 예수님께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25 그러나 그 여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며,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26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8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오늘 독서와 화답송 그리고 복음은 모두 도움을 청하는 우리의 기도를 하느님께서 들어주신다는 것을 약속합니다.
먼저 예레미야 예언자가 전하는 주님의 신탁은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 가졌던 체험을 다시 하게 되리라 상상하면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떠오르게 합니다. 광야에서 누린 바 있던 하느님의 자애로 둘러싸인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을 확인하면서 제 안식처를 찾아 나섭니다. “나는 너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였다. 그리하여 너에게 한결같이 자애를 베풀었다.”
화답송도 독서에 이어지는 주님의 신탁으로 예레미야는 다음과 같이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포합니다. “목자가 양 떼를 돌보듯 주님은 우리를 지켜 주시리라.” 그런 다음 마태오 복음에서 영원한 사랑으로 우리를 지켜 주시는 착한 목자 예수님의 자애를 확인합니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가나안 여인은 이민족이라는 출신의 약점을 넘어서 진정한 치유자이신 예수님께 간절히 청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예수님의 처사에도 끈질긴 구애는 마귀 들린 그녀의 딸을 주님의 영원한 사랑으로 온전히 회복시킵니다. 하느님의 한결같은 사랑은 출신이나 병듦의 약점이나 약함이 아니라, 굳건한 믿음이라는 장점과 강함에서 드러난 것입니다.
오늘 독서와 화답송 그리고 복음을 묵상하며, 언제나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는 우리의 기도를 바오로 사도의 고백으로 대신하고 싶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2 코린 12,9)
박기석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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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인 사람인데 잘 안 풀리는 이유>
‘긍정의 힘’이라는 식의 책이나 강연을 한 번쯤은 읽어보거나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정말 삶을 긍정하는 사람들은 하늘 일마다 잘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사람은 항상 그 사람이 자신에 대해 예언하는 대로 좋지 못한 삶을 삽니다.
예를 들어 한국전 당시 중공군에게 포로가 된 미국 병사들과 터키 병사들의 차이입니다. 중공군은 포로가 탈출을 감행하는 것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그들의 사기를 꺾는 교육을 했습니다. 탈출은 불가능하니 결국 순응하라는 것입니다. 이 교육에 넘어간 미국 병사들은 대부분 수용소에서 죽고 본국으로 돌아간 사람들도 무기력하게 살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 올 때부터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교육을 받고 중공군의 교육에 저항하여 끊임없이 긍정 마인드를 키운 터키 군사들은 거의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정말 긍정 마인드가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도 긍정적인데 왜 삶은 이 모양이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 잘 될 거야!’를 끊임없이 되뇌지만 잘 안 됩니다. 그 이유는 진짜 긍정적인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긍정에 무언가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제임스 본드 스톡데일’이라는 사람은 미 해군 장교로서 베트남 전쟁 당시 8년간의 포로 생활을 끝내고도 건강하게 돌아와 미국 부통령 후보에까지 오른 인물입니다. 당시 베트남 하노이 수용소는 그야말로 지옥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런 극도의 고통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은 참으로 긍정적인 사람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스톡데일은 그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습니다. 수용소에서 죽어간 이들이 누구였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집으로 갈 수 있을 거야.’라고 믿었던 사람들은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다시 절망에 빠져 희망을 잃어갔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안 되어 결국 다 죽어갔습니다.
도대체 왜 어떤 이들은 긍정 마인드가 좋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것 때문에 죽는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우선 긍정 마인드가 좋다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다 잘 될 것이라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잘 안 될 때를 대비해야 합니다. 그러는 데 필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이방 여인은 심하게 마귀에 든 딸아이를 살려달라고 예수님께 청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들은 체도 안 하십니다. 심지어 자녀에게 줄 빵을 개에게 줄 수 없다고 모질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인은 자녀가 먹고 남은 부스러기라도 달라고 청합니다. 어째서 이 여인은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믿음’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은 하느님의 존재를 믿는 것을 넘어섭니다. 그 존재가 ‘좋으신 분’임을 믿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존재를 알았지만 그분을 좋은 분으로 여기지 못한 천사는 사탄이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도 그분이 자비로운 분임을 믿지 못했기에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좋은 분임을 믿을 때에야 지금의 고난이나 청한 것이 허락되지 않았을 때도 멈추지 않을 수 있습니다.
믿음은 모든 상황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내가 청한 것이 들어지지 않았을 때, 그것도 의미가 있다고 여기게 합니다. 그래서 버텨낼 수 있고 포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모진 분으로 여기면 둬 번 청하다 맙니다.
그러면 어떻게 믿음을 증가시킬 수 있을까요? 가장 좋은 방법이 감사일기를 쓰는 것입니다. 감사일기의 대명사가 오프라 윈프리입니다. 사생아로 태어나 할머니 손에서 자랐고, 삼촌의 성폭행으로 14살의 나이에 미혼모가 되었습니다. 마약과 알코올에 빠져 청소년기를 보내다 감옥생활까지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중 한 명이 되고 엄청난 부와 명예를 얻었습니다. 그렇게 삶이 변한 이유를 오프라 윈프리는 감사일기 덕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감사하면 주님을 좋은 분으로 믿게 됩니다. 이 믿음이 있어야 긍정이 망상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춘수의 ‘꽃’에서 보듯, ‘의미’는 타인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삶에 벌어지는 모든 것들에 의미가 있으려면 그것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분을 만나야 합니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 없이 혼자 힘으로 모든 것을 긍정하려 하면 지쳐 쓰러집니다. 오늘 복음의 여인처럼 주님께 대한 긍정이 먼저 있다면 아무리 힘든 난관도 다 헤쳐나갑니다. 세상에서 긍정 마인드로 성공했다는 사람들은 이미 어느 수준의 믿음에 도달한 사람들입니다. 그 믿음의 대상이 어떤 신이건 간에 그 사람은 그 신을 좋은 분으로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긍정의 힘이 모든 난관과 실패를 극복하게 하여 결국 성공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키웁시다. 그리고 감사의 표현을 합시다. 그리고 모든 것에 긍정합시다. 그러면 나의 긍정이 기필코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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