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2020.7.23.)
본문 바로가기
영성의 샘

[묵상]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2020.7.23.)

by honephil 2020. 7. 23.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0-17
그때에 10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왜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12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13 내가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14 이렇게 하여 이사야의 예언이 저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15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내가 그들을 고쳐 주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16 그러나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갈망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자 갈망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예수님께서는 주로 비유를 통하여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알려 주십니다. 비유는 전혀 모르는 것을, 때로는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것을 설명하기에 좋은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비유는 예수님께서 하늘 나라의 신비와 우리 인간에 대하여 모두 알고 계시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둘을 모두 알지 못하면 비유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 이사야 예언서를 인용하는 예수님의 말씀은 마음의 완고함에 대한 표현입니다(이사 6,9-10 참조). 성경에서 완고한 마음은 하느님과 예수님의 말씀과 업적을 애써 부인하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말씀을 듣지만 새기지 못하고, 하느님의 업적을 보지만 외면합니다.

오늘 복음의 말씀은 그 자체로 하나의 비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육체적인 귀와 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들을 수 있는 귀”와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이들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영적인 눈과 귀에 대한 말씀이고,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며 하느님의 업적을 보고 깨달을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말씀은 그저 ‘소리’에 불과합니다.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업적은 그저 ‘사건’ 일뿐입니다. 완고한 마음에서 돌아서 말씀에 귀 기울이고, 우리 안에 일어나는 일들 속에서 주님을 찾고자 노력하는 것이 하늘 나라의 신비에 다가서는 일입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

<​우리는 행복 지도를 가지고 있나요?>

 

 

      어느 마을에 같은 물건을 파는 두 상인이 있었습니다. 서로 경쟁을 하다 보니 서로를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둘을 화해시키시기 위해 천사를 보냈습니다. 천사가 먼저 한 사람에게 소원을 하나 들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청하는 것의 두 배를 그의 경쟁자에게 해 주겠다고 말하였습니다. 상인은 깊이 생각하다가 그 천사에게 자신의 한쪽 눈을 멀게 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은 양쪽을 다 잃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행복의 길을 알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지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나타나는 현상만 보더라도 특별히 우리나라는 행복의 방법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와 미국이나 유럽의 나이별 행복도는 상반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나이에 따라 반대의 그래프를 그립니다. 즉, 외국은 어렸을 때 행복하고 중장년이 되면 힘들었다가 노년이 되면 다시 행복해지는 ‘∪’자 형태를 그립니다. 나이가 들수록 어린이 때의 행복을 되찾는 경향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와 반대로 ‘∩’자의 형태입니다. 어렸을 때 행복하지 못했다가 중장년 때 행복하고 노년이 될수록 행복하지 못한 것입니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덜 행복해질까요? 그것은 어렸을 때 제대로 행복한 기억이 없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마치 보물 지도를 보고 보물섬을 찾아 나서는 것과 같습니다. 보물섬은 보물 지도 없이 도달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그 보물 지도는 대부분 어렸을 때 주어집니다. ‘어린이 때 어떻게 행복할 수 있었나?’를 생각하며 어렸을 때처럼 순결해지고 겸손해지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게 외국에서는 어린이와 같은 심성을 되찾으며 그때의 행복으로 돌아갑니다. 행복을 체험하지 못했다면 이는 보물 지도를 갖지 못한 채 보물을 찾는 사람과 같습니다. 가져야 더 가질 수 있습니다. 보물 지도가 그런 힘을 가졌듯이, 이미 체험한 행복이 그 행복에 도달하기 위한 고난을 이겨낼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착한 사람이 죽은 후에 하늘나라에 갔더니 천사가 뭔가를 열심히 포장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궁금해서 “천사님!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포장하고 계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행복을 포장하고 있답니다. 사람들에게 전해 줄 행복이요!”라고 대답합니다.

“아니 그런데 포장을 왜 그렇게 단단하고 튼튼하게 하세요?”

천사는 “네, 사람들에게 전해주려면 멀기도 하고 시간이 오래 걸려서 튼튼하게 포장하고 있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그런데 그 포장지는 무엇으로 만들어졌나요?”

“네! 행복을 감싸고 있는 포장지는 고난이랍니다. 이것을 벗기지 않으면 행복이란 선물은 받을 수가 없답니다.”

그리고선 천사는 바쁜 듯이 어디론가 가려 했습니다. 그 사람은 천사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천사님! 그러면 그 고난이라는 단단하고 튼튼한 포장은 열 수가 없나요?”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고난이라는 포장을 열 수 있는 열쇠는 바로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름답게 살아가면 고난이라는 포장을 열고 행복이라는 선물을 받으실 거예요.”

그 말을 남긴 채 천사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어린이들은 무조건 행복해야 합니다. 나중에 그 행복을 지도로 사용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는 무조건 부모와 형제,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행복한 기억을 갖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행복까지 이르기 위한 고난을 참아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렸을 때 그런 기억이 없더라도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늦게나마 행복을 체험했다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하느님을 체험한 그 한 번의 체험이 삶의 지도가 되어줍니다.

 

      딸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아 걱정이 많다던 한 엄마가 딸아이의 일기를 보고 눈물이 나서 아이가 쓴 글을 보내준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글을 보며 아이가 비록 공부는 안 하고 노는 것을 좋아할망정 인생을 행복하게 살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아이는 보물 지도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의 일기는 이렇습니다.

“맑은 하늘 맑은 웃음. 제목: 하느님. 하느님은 우리를 지켜주고 세상을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늘에게. 좋은 공기를 줘서 감사합니다. 바람에게. 바람아 시원하게 해 줘서 고마워. 나무에게. 나무야 그늘이 되어 줘서 고마워. 구름. 하얀 구름 뭉게구름에게. 구름아 비를 내려줘서 고마워.”

 

      글자도 틀리고 어법도 틀리는 것을 조금 바로잡았습니다. 그렇더라도 엄마가 눈물 흘릴 만합니다. 자녀를 잘 교육하지 못한다는 자책감도 있었을 텐데, 자녀가 이런 행복을 느끼고 산다는 것에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참 행복으로 이르는 보물 지도를 가져야 합니다. 이는 행복 체험입니다. 그 행복 체험은 또한 이웃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사랑으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때 느끼는 그 행복의 체험을 가진 사람은 이미 가진 사람이고 앞으로 넉넉하게 더 가지는 일만 남았습니다. 우리가 꼭 가져야 하는 행복 지도는 어린이와 같은 행복 체험입니다.

https://youtu.be/GVuIFC5P2IY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