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 성 야고보 사도 축일 (202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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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샘

[묵상]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 성 야고보 사도 축일 (2020.7.25.)

by honephil 2020. 7. 25.

야고보 사도는 갈릴래아의 벳사이다 출신으로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요한 사도의 형이다. 어부인 야고보는 갈릴래아 호수에서 그물을 손질하다가 동생 요한과 함께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는 베드로 사도, 요한 사도와 더불어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세 제자 가운데 하나이다. 열두 사도에는 야고보가 둘 있는데, 오늘 축일을 지내는 야고보는 알패오의 아들 ‘작은 [소] 야고보’와 구분하여 ‘큰 [대] 야고보’라고도 부른다. 42년 무렵 예루살렘에서 순교하였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20-28
20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2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24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25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7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28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우리는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우리와 하느님의 관계를 알려 주는 적절한 표현입니다. 질그릇은 글자 그대로 화려하지 않고 투박하며 값지지 않은 평범한 그릇입니다. 그리고 질그릇은 쉽게 깨지고 부서질 수 있는 성질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질그릇과 같은 존재입니다. 이 비유는 우리의 현실을, 인간이 지닌 나약함을 잘 보여 줍니다. 이렇게 우리는 인간으로서 나약한 존재이지만 무엇보다 값진 보물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과 그분께서 보여 주신 구원의 업적입니다. 우리 스스로는 힘이 없지만 우리 안에 담긴 보물을 통하여, 하느님의 힘을 통하여 어려움 속에서도 말씀을 선포하고 구원을 향하여 갑니다.

복음은 제자들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의 나약함을, 인간적인 욕심과 생각들을 이겨 내도록 일깨워 줍니다. 세상은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이들을 다스리는 것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와 정반대입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높은 사람은 섬김을 받고 낮은 사람은 섬겨야 한다는 세상의 생각을 뒤집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임금으로 이 세상에 오셨지만, 누군가의 위에 군림하신 것이 아니라 ‘많은 이들’을 위하여 당신의 목숨을 바치신 분이십니다. 제자들과 신앙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세상의 생각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삶을 본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삶의 중심에 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역시 하느님의 힘을 통하여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아갑니다. 세상의 어려움과 우리의 나약하고 부족한 모습 역시 넘어설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는 보물 같은 하느님의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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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만큼 마시기!>

 

     하늘 나라에도 좋은 자리 나쁜 자리가 있을까요? 하늘 나라 자리는 다 좋을 것입니다. 그래도 더 좋은 자리가 있고 덜 좋은 자리는 있습니다.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도 있고 작은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는 주님의 계명을 얼마나 충실히 따랐느냐에 의해 결정됩니다. 아주 작은 계명 하나라도 어기도록 가르친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예수님께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청합니다. 이는 분명 하늘 나라에서 주님과 가까운 자리가 있고 먼 자리가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 비롯된 청입니다. 예수님은 하늘 나라에 들어오면 똑같이 행복할 것이라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분명 차이는 있습니다. 당신의 잔을 얼마나 마시느냐입니다.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당신이 메어주시는 멍에를 얼마나 충실히 메고 순종했느냐에 따라 하느님 나라에서의 위치가 결정됩니다. 만약 다 마시지 못한 잔이 있다면 어쩌면 그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영원히 헤매야 할 수도 있습니다.

 

      영화 ‘디스커버리’(2017)는 사후세계를 다루었습니다. 한 과학자가 사후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해 낸 것입니다. 이 발견(디스커버리)은 전 세계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킵니다. 수백만 명이 자살을 시도한 것입니다.

 

      이런 혼란 속에서도 과학자는 연구를 계속합니다. 사후세계가 있다는 것은 증명해 냈지만, 사후세계가 어떠한 모습인지는 증명해 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영안실에 있는 시체를 훔쳐서 그의 머릿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영상으로 출력하려 하였습니다.

 

      그 시체의 머릿속에서는 차를 달려 어떤 병원에 도착한 자신의 모습이 영상으로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것이 과거의 기억인지 저승 세계에서 체험하는 일인지 확인하기 위해 그 사람의 인적사항을 조사해 그의 어머니를 찾아갔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 시체가 병원에서 보고 있었던 여인이었습니다.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시체의 머릿속에 있는 기억과 정반대의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놈은 어머니가 병들고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도 병원에 찾아오지 않았어요. 부모를 버리고 도망친 놈입니다. 만약 그 애가 병원에 찾아왔었다고 말했다면 그것은 거짓말이에요.”

시체는 사후세계에서 헛된 꿈을 꾸고 있었던 것입니다.

 

      박사가 이것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자신이 죽음 직전까지 가서 자신의 뇌를 영상으로 촬영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역시 아내가 자살하던 날 자상한 남편이 되어 아내와 함께 있어 주는 장면이 찍혔습니다. 사후세계는 결국 이 세상에서 가장 후회스러웠던 일에 갇혀 그것을 되돌려 놓으려는 안타까움만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지옥이란 바로 그 후회스럽고 용서받지 못한 기억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기억을 지워주시기 위해 우리가 내미는 쓰디쓴 잔을 마시셨습니다.

 

      일반 대학교 다닐 때 술을 마시지 않는 자매에게 건배를 권하며 “사랑하는 만큼 마시기!”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는 잘 마시지 못하는 술을 벌컥벌컥 다 마셔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다 마셨다는 뜻으로 자신의 머리 위에 술잔을 뒤집었습니다. 그리고는 놀라서 아직 마시지 못하고 있는 저의 술잔을 응시하였습니다. 저도 기쁜 마음에 술잔을 단숨에 들이켜고 머리에 부었습니다. 사랑이 확인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잔에 조금이라도 술이 남으면 그만큼 관계가 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인간관계가 이것과 같을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상대가 따라준 쓰디쓴 술잔을 쥐고 있습니다. 그 잔은 처음엔 쓰지만, 끝은 달콤합니다. 마시기 싫어도 상대가 주는 잔을 마실 수 있다면 관계가 좋아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드리는 잔을 다 마시셨습니다. 우리를 절대 죄책감의 굴레에 빠져있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우리 각자에게 잔을 내밀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만큼 마시면 됩니다. 마시고 남은 양만큼 하늘나라에서 그분과 멀리 떨어져 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내미는 잔이란 바로 이것입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잔은 평생 그 잔을 마시는 것에만 집중해도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최대한 후회스럽지 않게 죽음을 맞으려면, 하나도 남기지 않을 마음으로 최대한 많이 마시고 그분 앞에서 머리에 술잔을 부어야 할 것입니다. 

https://youtu.be/I5yFcftltB4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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