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씨를 뿌리고 자는 사이에 씨는 자라는데, 그 사람은 모른다. -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202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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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샘

[묵상] 씨를 뿌리고 자는 사이에 씨는 자라는데, 그 사람은 모른다. -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2020.1.31.)

by honephil 2020. 1. 31.

[묵상] 씨를 뿌리고 자는 사이에 씨는 자라는데, 그 사람은 모른다. -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2020.1.31.)

<씨를 뿌리고 자는 사이에 씨는 자라는데, 그 사람은 모른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26-34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26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27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28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줄기가,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29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 수확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30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31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32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33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처럼 많은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
34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또는, 기념일 독서(필리 4,4-9)와 복음(마태 18,1-5)을 봉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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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복음의 하느님 나라는 예수님 그분 자체를 말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참된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라고 마르코 복음은 재촉합니다. 마르코 복음 막바지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고 이방인인 백인대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마르 15,39).메시아는 거룩하고 영광스러우며 또한 멋스러워야 하고 힘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가 당시 유다 사회의 신앙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셨지요.


세상의 논리로 보자면 실패 그 자체인 십자가, 그 십자가를 지신 분을 메시아로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세상의 당위에 대한 저항에서 가능한 일입니다.대개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고 오늘을 애쓰며 살아갑니다. 신앙이 목적을 가지는 순간, 오늘, 지금의 시간에 대하여 결핍 의식을 지닐 때가 가끔 있습니다. ‘아직 멀었어. 좀 더 노력해야 돼.’라고 되뇌이며 내일의 희망찬 하느님 나라를 꿈꿉니다.그러나 바로 이 자리, 이 시간에 예수님께서 오십니다.


또한 하느님 나라는 ‘저절로’ 자라납니다.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하느님 나라의 실재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는 이미 오신 예수님을 통하여 이미 시작되었습니다.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맞갖게 사는 것은 오늘 ‘이렇게 해야 돼!’라는 당위를 다시 한번 되짚어 물어보는 일에서 시작합니다.


오늘의 ‘당위’가 어떤 이를 겁박하고 억압하는 일은 없는지, 오늘 나에게 당연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고통과 짐으로 여겨지는 일은 없는지 물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지금 우리 곁에, 이 자리에서 커져 갑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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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마르 4,26-34)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마르 4, 26-27)

오늘은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입니다.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상적인 만남은 나를 죽이고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상대의 희생을 요구하면 우리는 만남을 통해서 지옥을 체험하지만 나를 죽이고 상대를 살리는 만남은 지상에서 하늘나라를 체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이렇게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게하고 이러한 만남 안에서 접하게 되는 고통과 시련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을 보게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간은  인식하지 못하겠지만 당신께서는. 우리가 가 잠자는 동안에도 우리를 지키고 계시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체험이 저를 하느님 앞에서 나의 업적을 자랑하지 않고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존재로 바뀌게 합니다.  하늘나라는 바로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는 교만이 아닌 겸손을 통해서 드러나는 감사가 지배하는 나라임을 깨닫습니다.

최근 들어서 기억력이 참으로 많이 쇠퇴했구나 하는 것을 깨닫습니다. 세심함이 필요하지만  그러한 면에서 예전보다는 세심함의 부족으로 실수를 합니다. 나이 들어간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여전히 젊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는데 생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나이 들어감을 느끼면서도 실망을 하거나 슬퍼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하느님께 의탁하는 마음은 더욱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어느 순간에 상상하지도 못했던 지금의 나가 되어 있습니다. 어릴 때는 빨리 나이가 들어서 어른이 되었으면 했었는데 이제는 시간이 너무 빨리 감을 탓하는 것입니다. 

지나가는 시간을 잡을 수가 없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바닷 물에 빠지면 그냥 내 자신을 바닷 물에 내 맡겨야지 살려고 발버둥을 치면 오히려 물에 가라 앉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시간은 가고 있는데 이 가는 시간을 잡기 위해서 바둥대는 것은 바다에서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시간의 바다 위에 내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해 본적이 있습니다. 있는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없는 길을 만들어서 갈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즈음 등산을 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빨리 높이 올라가는 등정주의를 택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등로주의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이제는 일렬 종대로 가는 획일적인 삶이 아닌 자신의 길을 창조적으로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는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의 의미는 그냥 저절로 그렇게 된다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나는 심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니 심는 이나 물을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자라게 하시는 하느님만이 중요합니다.”(1코린 3, 6-7) 하는 말씀을 통해서 위의 말씀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눈에는 저절도 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보이지 않는 손길의 작용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보이지 않는 손길이 우리에게 보이게 되는 것은 바로 우리의 믿음과 노력이 합해질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마음을 열고서 바라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손길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면서 우리와 우리 가족들 모두가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이 세상에는 저절로 되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깊이 깨닫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희생과 하느님의 사랑의 손길이 어우르져서 이루어진 것들임을 깨달으며 우리 또한 그러한 사랑을 실천하는 거룩한 하루 지내시도록 기도합니다. 다시 한번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정건석 프란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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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살피지 않는 농부는 없다>
 
복음: 마르코 4,26-34
     
나쁜 짓을 한 아들이 아버지 앞에 불려왔습니다. 아버지는 아이를 데리고 아무 말 없이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조상의 산소 앞에 선 아버지는 자식을 잘못 가르친 것을 조상께 백배사죄하고는 회초리로 자신의 종아리를 사정없이 치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는 눈물을 흘리며 참회했습니다.

 

30년 후 그 아들이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의 아들도 말썽꾸러기였습니다. 밤낮 사고를 저질러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아무리 타일러도 듣지를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아버지는 매섭게 생긴 회초리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불러놓고는 그가 보는 앞에서 자신의 바지를 걷어 올렸습니다. 그러고는 눈물을 흘리며 회초리로 자신의 다리를 사정없이 내려치기 시작했습니다. 갑작스런 광경에 놀란 아들이 마루로 뛰어 나가면서 외쳤습니다.
“엄마! 아빠가 미쳤나봐. 빨리 와 봐.”

같은 씨라도 밭이 다르면 다른 열매를 맺습니다. 밭을 살피지 않는 농부는 없습니다. 좋을 열매를 맺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끔 좋은 열매를 맺다보면 자신의 밭을 방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 독서의 다윗 왕이 그런 사람입니다.

다윗 왕은 밧세바와 부정한 관계를 맺어 밧세바의 남편인 우리야까지 죽입니다. 다윗 왕은 어린 나이에 거인 장수 골리앗까지 믿음으로 이긴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이번 사건 하나로 와르르 무너집니다. 그는 더 이상 왕의 자리에 머물지 못하고 자식에게 쫓겨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됩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그가 열매는 보고 있었지만 땅은 살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 안엔 땅도 있고 열매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처럼 열매 맺는 나무는 많은 이들에게 휴식과 힘을 줍니다. 하늘 나라의 열매가 맺혀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하늘에 오르고는 싶지만 쉴 곳이 없어 힘들어하는 새들에게 안식처가 될 수 있는 복음의 열매를 맺는 사람은 땅에 집중하는 사람입니다. 그 땅이란 예수님께서 계속 설명하듯이, 길과 같아서도 안 되고, 돌밭과 같아서도 안 되며, 가시밭과 같아서도 안 됩니다.

길은 교만을 상징하며 하느님 말씀을 전혀 받아들일 마음이 없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저는 하느님은 믿지만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는 말은 못 믿겠어요.”, 혹은 “예수님이 내 안에 살게 하시기 위해 내가 왜 십자가에 죽어야 해요?”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입니다.

돌밭은 육체의 욕망으로 사는 사람을 상징합니다. 오늘 독서의 다윗과 같은 사람입니다. 다윗은 처음엔 좋은 땅이었으나 자신의 땅을 잘 살피지 않았기에 다시 돌밭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면 이웃에게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하는 사람이 됩니다. 있던 열매도 사라집니다.

가시밭은 재물의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소득의 십분의 일조차도 주님의 몫으로 바치기 싫어하면서도 신앙생활 하면 부자가 될 것처럼 말하기도 합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부자로 살 게 하시기 위해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서 가난해도 아무 걱정 없이 사셨던 그리스도처럼 살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땅에 집중하면 열매는 저절로 맺습니다. 씨는 항상 뿌려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길에도 뿌려지고 돌밭에도 뿌려지고 가시밭에도 뿌려집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나의 땅을 망치는 ‘삼구(마귀-육신-세속)’와 싸우는 일입니다.

그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믿어야합니다. 내 안에 하느님이 계시고 하느님과 하나가 되었음을 믿어야합니다. 예수님은 당신 살과 피를 내어주시며 “내가 네 안에 있잖아!”라고 하십니다.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의 피로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어야 그리스도께서 사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하셨다면 우리도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느님 나라의 열매가 맺힐 때 내가 선포할 기쁜 소식이 생깁니다. 좋은 땅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줄기가,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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