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묵상 ] 그 아기는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2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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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샘

[ 묵상 ] 그 아기는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2020.1.1.)

by honephil 2019. 12. 31.

 

복음 말씀

<목자들은 마리아와 요셉과 아기를 찾아냈다. 여드레 뒤 그 아기는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6-21
그때에 목자들이 베들레헴으로 16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냈다.
17 목자들은 아기를 보고 나서, 그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알려 주었다.
18 그것을 들은 이들은 모두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전한 말에 놀라워하였다.
19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20 목자들은 천사가 자기들에게 말한 대로 듣고 본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돌아갔다.
21 여드레가 차서 아기에게 할례를 베풀게 되자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그것은 아기가 잉태되기 전에 천사가 일러 준 이름이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세계 평화의 날)

“목자들은 아기를 보고 나서, 그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알려 주었다. 그것을 들은 이들은 모두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전한 말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루카 2,17-19)

새해 아침이 밝았습니다.

우리는 새해 아침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서로 주고받습니다.

이렇게 새해 아침에 복을 기원하는 것, 이것은 모든 이의 염원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인은 과연 어떤 삶을 복 받은 삶이라고 할까요?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삶은 진정한 축복이 무엇인지를 잘 전해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그 옛날 자기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거의 죽음과 같은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고향을 떠나려고 길을 나섭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길을 떠난 아브라함이 인생의 여정에서 만난 것은 행운이나 성공과 같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복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시련과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시련과 고통을 겪으면서 그 안에서 하느님을 깊이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은 하느님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존재임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역경과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께서 함께 계신다고 믿는 것, 인간은 하느님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그것이 하느님께서 주시는 축복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믿고 사는 삶, 이것이 신앙인으로서 축복받은 삶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모님의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성모님을 두고 우리는 은총이 가득하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성모님께서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을 많이 받으셨다고 하는 이유는, 성모님께서는 언제나 하느님의 말씀대로 사셨고, 하느님께서 늘 함께 계시는 분이심을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하느님 말씀대로 살아감으로써 하느님의 축복을 많이 받는 한 해가 되기를 빕니다.

전숭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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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미사 강론

2020년 1월 1일 수요일

하느님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에 (루카 2,16-21)

“목자들은 천사가 자기들에게 말한 대로 듣고 본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돌아갔다.”(루카 2, 20)

대망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피정을 도와주셨던 신부님들 가운데 연말까지 함께해 주셨던 신부님도 떠나셨습니다. 연말 피정을 마치며 피정 중에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셨던 큰 사랑과 은총에 대해서 의미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희망이 바로 당신의 은총과 사랑 속에 묻어 있음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새로운 한해를 시작합니다. 새해를 맞으면서 우리 모두에게 금년 한 해 주님의 은총과 사랑이 충만한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동시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갖고 계시는 당신의 희망이 우리의 삶을 통해서 성취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가집니다.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면서 나의 이웃이 나에게 희망하는  그러한  사람이 되어주는 삶을 살아가고자 다짐합니다.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닌 주님께서 필요로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사람이 되기를 다짐합니다. 

새해에는 이러한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새해에는  매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지난 한 해를 되돌아 보면 참으로 감사할 일이 많았습니다. 아쉬움과 미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하지만 이 아쉬움과 미련도 하느님 안에서 감사할 수 있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아쉬움과 미련이 있었기에 이번 한 해를 좀 더 긴장하고 겸손하게 시작할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아기 예수님을 찾아왔던 목자들이 하느닝을 찬양하고 돌아갔던 것처럼 감사하는 마음으로 언제나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새해에는 열린 미래를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어제는 한 해의 마지막 날이었고 오늘은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마지막은 닫힘을 의미하고 시작은 열림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은 우리에게 슬픔과 아쉬움을 주지만 시작은 우리에게 희망과 기쁨을 줍니다. 닫힌미래를 살아가는 사람은 매일매일의 삶을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반면에 열린 미래를 살아가는 사람은 항상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열린미래를 살아가는 사람이고 불평과 불만을 하는 사람은 닫힌 미래를 살아갑니다. 

새해에는 말구유에 계시는 아기 예수님을 묵상하며 살아가겠습니다.

말구유에 누워계시는 아기 예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열린 저 영원의 세계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인간의 모습으로 와 계십니다.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은 확고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체험한 모든 사람들은 열린 미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고 살아갑니다. 

새해에는 성모님의 모습을 닮고 싶습니다.

성모님은 주님의 것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살아가셨습니다. 그분의 고요함 속에서 영원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 영원이 한계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영원으로 이끌어 갔습니다. 자신을 내어 놓음으로써 영원을 우리에게 가져다주셨던 성모님의 고요함을 닮고 싶습니다. 주님의 종임을 고백하며 그분의 말씀대로 사시겠다고 다짐하시는 성모님 모습이 우리의 구체적인 삶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새해에는 스테파노와 바오로를 닮은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스테파노는 죽음의 그 순간에도 하늘을 바라 보았습니다. 세상을 향하지 않고 하늘을 바라보는 삶은 모든 세상적인 고통과 시련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우리에게 심어줍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바오로는  하느님을 체험하면서 자신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합니다. 세상적인 눈으로 보기에는 어리석은 결정이지만 하느님 보시기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결정이었습니다.


세상의 영화는 우리를 닫힌 미래로 인도합니다.  하지만 하느님 안에서의 시련과 고통은 영원을 향한 과정일 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보여주시는 축복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합니다. 금년 한 해는 오늘의 날씨만큼이나 화창하고 모든 이에게 주님의 사랑이 충만한 한 해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집니다. 지난날의 아픔과 고통과 시련은 바로 오늘이 있기 위한 준비이고 내일이 있게 하는 디딤돌이었다는 사실을 있지 맙시다.

긍정은 감사를 감사는 희망을 가져다 줍니다.

하느님의 언어는 생명의 언어이고 감사의 언어이고 희망의 언어입니다. 새로운 한 해는 우리의 언어가  바로 죽음의 언어가 아닌 생명의 언어이고 불평의 언어가 아닌 감사의 언어이고 죽음의 언어가 아닌 희망의 언어일 것이라는 확신을 가집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는 오늘이 영원을 향한 오늘이기를 희망합니다.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오늘이 세상을 바라보던 우리가 이제는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오늘이기를 희망합니다.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오늘이 닫힌 미래를 살아가던 우리가 이제는 열린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는 오늘이기를 희망합니다.

감사와 사랑을 

찬미와 영광을 

주님께 봉헌하면서..

사랑의 언어가, 꿈과 희망이 충만한 긍정의 사고가,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우선하는 따뜻한 마음이 우리를 꽉 채우는 한 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정건석 프란체스코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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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세계 평화의 날) 복음 묵상 
(루카 2,16-21)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찬미 예수님 2020년 경자년(庚子年)의 새해 첫날 우리는 천주의 모친 성모 마리아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경자년(庚子年)은 쥐의 해가 됩니다. 그중에서도 경자는 쥐들 중에서 우두머리인 흰 쥐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쥐는 그 특성이 남달리 지혜롭고 부지런하며 인내성이 강한 동물이기에, 특별히 경자년 올 한 해는 우리가 그러한 쥐의 좋은 점을 닮아 늘 하느님 안에 참된 지혜를 추구하고, 부지런하게 기도하면서, 인내함으로써 참된 결실을 이루어가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 미사 중에 함께 기도했으면 합니다.


오늘 천주의 모친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맞이하여 복음에서는 목자들이 베들레헴으로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내고 경배를 드리는 대목의 말씀이 전해졌습니다. 여기서 목자들은 아기를 보고 나서, 그 아기에 관하여 천사들로부터 들은 말을 알려 주고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고 복음은 전합니다.

성모님께서 아기에 관한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셨다는 사실은 우리 신앙인들 모두에게 참된 신앙의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가르쳐주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곧 신앙은 그렇게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에 대해서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면서 그렇게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참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실 수 있도록 온전히 믿음을 드리는 삶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았을 때 분명히 하느님께서는 늘 우리와 함께하셨고, 정말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하느님의 은총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며 앞으로의 모든 시간도 그렇게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이루어가는 참된 구원의 역사가 될 것입니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이용현 알베르토 신부

 

 

 

||||||||||||||| 나의 단상  |||||||||||||||

 

2020년이 밝아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으로 앞으로 30여분 후면 새해가 됩니다.

 

경자년, 오늘 이용현 알베르토 신부님 묵상 글에 보니 경자년의 쥐는 흰색 쥐로 지혜롭고 부지런한 쥐의 특성에 더해 인내심이 강하다고 합니다. 과연 그런 건지, 올해 태어나는 아이들은 좀 더 커봐야 알 거 같고, 이 경자년에 해당하는 이들은 환갑이 되는 분들인데, 이분들이 한둘도 아니고, 모든 분들이 다 그렇다기보다는,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면 다 그렇게 될 것이라는 덕담 수준의 얘기라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쥐가 모든 띠 중에서 첫 번째가 된 이유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좀 재미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띠는 중국에서 사용하는 것을 우리가 가져와서 같이 사용하는 것이라 합니다. 이 설화에 따르면, 어느 날 옥황상제가 도착하는 순서대로 지위를 주겠노라하고 연회를 소집했는데, 이 소식을 듣고 가장 열심히 체력을 기르고 연습을 많이 한 소가  소집 당일, 제일 먼저 도착했는데, 그 소 등에는 쥐가 타고 있었다가, 마지막 순간에 등에서 뛰어내려 결국 쥐가 제일 먼저 도착하게 되어 가장 높은 지위를 받았다고 합니다.

 

참 쥐란 녀석 참 현명했던 거 같습니다. 달리기로 따지자면 말, 호랑이도 있고, 심지어 하늘을 나는 용도 있었는데, 이들에게 등을 내어 달라고 얘기를 할 수는 없었겠지요, 잘못하다가는 냅다 달리는 말 등에서 굴러 떨어져 말발굽에 밟혀 자칫 목숨을 잃고, 호랑이에게 밉보여 한 끼 간식거리가 될 수도 있고, 용은 너무나 잘나서 작고 힘없어 보이는 쥐에게는 관심조차 안 줬을 듯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다리도 엄청 짧고, 힘도 약한 쥐는 고민 고민 끝에 가장 열심히 훈련하고 마음씨도 좋을 것 같아 자신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소를 선택했고, 마침 소도 영민한 쥐와 함께 길을 가니 싫지 않았던 거 같아 자신의 등을 허락한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둘은 서로 벗 삼아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으며 그 먼길을 함께 할 수 있었겠지요. 그리고 쥐도 한번 소에 대한 믿음을 가진 후에는 결코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아 둘은 그렇게 선두그룹으로 들어올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보면서 저는 성모 마리아의 굳건한 믿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하느님이 가장 좋은 분이라는 것은 너무도 확실히 믿기에 주저함이나 뒤돌아봄 없이 한평생 굳건한 믿음을 지켜오신 성모님. 올 한 해는 일상 중에서 이러한 성모님을 굳건한 믿음을 조금이나마 더 본받을 수 있도록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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