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복을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마르코 10,28-31) - 연중 제8주간 화요일(2023.5.30.)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복을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28-31
28 그때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29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30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31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현세에서 무엇이든 100배로 불리는 법>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과 복음 때문에 집과 부모, 형제와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그 모든 것의 100배를 받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이런 것들의 100배를 누리는 사람이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사람이란 뜻입니다.
저는 분명 돈 걱정도 없고 가족도 수천, 수만 명이 된 것 같고 잘 집도 많아서 이 말씀 대로라면 천국을 약속 받은 사람처럼 기뻐 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두 다 그렇냐는 게 문제입니다. 세상에서 보면 악한 사람들이 더 부유하게 살고 선한 사람들은 더 가난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 대로라면 부자들만 구원 받는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예수님께서는 다른 곳에서 오히려 부자들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주님과 복음을 위해 내어 놓은 만큼 복을 받는다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냥 상징적인 의미일까요? 저는 현세에서도 분명 그 보상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부족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고 아무리 가난해도 부유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위 친구와 가족들이 많아도 외롭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고 혼자 살더라도 진짜 자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이 가족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땅이 아무리 많아도 가시 방석에서 자는 것과 같은 사람이 있고 아무 곳에서도 집처럼 잘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결국 오늘 복음은 본인만이 알 수 있는 구원 받은 표징입니다. 하느님은 분명 약속을 지키십니다. 가난해도 부족함 없이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라면 구원 받은 표징이고 부유하더라도 외롭고 불만족하게 살면 구원 받지 못한 표입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구약 성경의 룻기에서 발견됩니다. 룻은 모압 땅에서 온 타국인 여인이었습니다. 불행하게도 룻의 남편, 처남, 시아버지가 모두 죽고 룻과 동서와 시어머니 나오미도 과부가 되었습니다. 나오미가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기로 했을 때 처음에는 며느리들에게 새 남편을 찾고 안락한 삶을 영위할 가능성이 더 높은 모압에 머물 것을 권했습니다. 그러나 룻은 나오미와 함께 살기 위해 고국에서 재혼할 기회를 포기했습니다.
베들레헴에 도착한 룻은 나오미의 죽은 남편의 부유한 친척인 보아스의 밭에서 보리를 줍기 시작했습니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친족 구속자, 즉 곤경에 처하거나 위험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친척을 대신하여 행동할 특권이나 책임이 있는 친척임을 인식했습니다. 나오미는 룻을 인도하여 보아스에게 접근하여 그녀와 결혼하고 가계를 이어감으로써 이 임무를 수행하도록 요청했습니다. 이것은 위험했습니다. 룻은 그녀의 미래를 보아스의 손에 맡기고 있었고, 그는 그녀를 거절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먼저 거부할 권리가 있는 더 가까운 친척과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당시의 법률 내에서 그렇게 했음을 먼저 확인하면서 영광스럽게 동의했습니다. 보아스는 룻과 결혼하여 오벳이라는 아들을 낳았는데, 오벳은 다윗 왕의 할아버지가 되어 룻을 예수 그리스도의 혈통에 두었습니다(마태복음 1:5).
사랑은 신기하게도 받으면 주어야 한다는 양심을 발동 시킵니다. 나오미는 잠시 자기 가족이 되었던 이방 며느리가 자신에게 그렇게 충실한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사랑은 보답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아들보다 훨씬 부유한 집안에 시집을 보낼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것을 도로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사람은 받은 것은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 양심 안에 넣어진 정의의 저울입니다. 사랑은 이 양심을 작동하는데 하느님은 사랑 자체이십니다. 사랑을 보상 받으려고 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사랑은 반드시 보답 받습니다. 사랑의 본성이 보답하기 때문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미사 묵상글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마르 10,31
Many that are first will be last, and the last will be first. Mk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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