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마르코 12,38-44) -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202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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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샘

[묵상]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마르코 12,38-44) -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2021.6.5.)

by honephil 2021. 6. 5.

보니파시오 성인은 675년 무렵 영국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수도회에 들어가 사제가 된 그는 수도회 학교의 교장을 역임하였다. 성인은 특히 독일에 가서 복음을 전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마인츠의 교구장이 된 보니파시오 주교는 여러 지방에 교회를 세웠다. 성인은 선교 활동에 주력하다가 754년 이교도들에게 살해되었다. 1874년 비오 9세 교황은 보니파시오 주교를 성인의 반열에 올렸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38-44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38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이르셨다.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39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40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
41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넣었다.
42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43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4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가난한 과부가 성전의 헌금함에 봉헌합니다. 렙톤 두 닢입니다. 렙톤은 한 데나리온의 1/144입니다. 한 데나리온은 하루 일당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그러므로 편의상 하루 일당을 오늘날 10만 원으로 생각하면, 렙톤 두 닢은 약 1,388원 정도가 됩니다. 그러므로 과부가 봉헌한 렙톤 두 닢은 천 원이 조금 넘는 금액입니다. 매우 가난한 과부입니다.

 

그녀의 궁핍한 일상이 조금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지요? 과부의 렙톤 두 닢이 내 주머니에 있는 돈의 전부라고 한다면, 그것이 나의 생활비라고 한다면, 그러한 삶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나의 가난을, 나의 어려움을, 나의 불편함을 호소하면서 불평과 투정으로 가득한 모습이 예상됩니다.

 

그러나 과부는 자신의 상황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이 묵묵히, 조심스레 성전으로 다가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봉헌합니다. 과부의 헌금은 우리에게 그녀의 삶의 자리가 지닌 불편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느님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께서는 과부의 헌금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물질적으로는 가난하지만, 하느님을 향한 마음은 부유하고 풍요로운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어떠한 모습의 삶을 살아가더라도, 하느님을 향한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함을 오늘 복음의 이야기는 들려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외적인 모습으로 사람들을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을 바라보십니다. 내 조건과 상황이 본질이 아닙니다. 내가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더라도, 그것이 극심한 가난과 어려움이더라도, 하느님을 향한 부유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면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바라보시고 인정해 주실 것입니다.

 

박형순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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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신앙의 수준은 내가 무언가 잃을 때 드러난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는 부자 율법 학자들을 비판하시며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칭찬해 주십니다.


    가난한 과부는 가진 재산의 전부인 모든 생활비를 봉헌하였지만, 율법 학자들은 겉보기에 액수는 많아도 일부만 봉헌하였기 때문입니다.

 

    봉헌으로 신앙인의 믿음을 측정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요?
오늘 복음의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고 계시니 이것은 반박의 여지가 없습니다. 사랑하면, 믿으면 더 내어놓을 수 있습니다. 신앙은 참된 봉헌으로 측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봉헌은 무엇일까요? 나의 것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율법 학자들은 자신의 것이 사라지는 것이 매우 못마땅합니다. 그래서 과부의 가산을 등쳐 먹기까지 합니다. 다만 봉헌하거나 기도를 하는 것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과부는 생활비 모두를 바칩니다.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나의 모든 것을 바치는데 아깝지 않을까요? 그만큼 신앙이 성숙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이 40년 된 부부의 외아들이 갑자기 사고로 죽자 앞으로 성당에 나오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자기 외아들을 빼앗아가는 그런 하느님은 믿지 않겠다고 한 것입니다. 어쩌면 이분은 40년 동안 신앙을 발전시키지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성장시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내 모든 것의 주인은 하느님이라는 믿음입니다.
 

    또 신앙생활이 1년 된 분이 외아들을 잃은 모습도 보았는데, 그분은 그 고통을 잘 참아내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이미 이분은 신앙생활이 자기의 것이나 자기 자신을 바치는 삶으로 이어져야 함을 잘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발전을 하였느냐, 하지 않았느냐는 내가 어디까지 봉헌할 수 있느냐로 결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신앙을 증가시켜 왔다면 혹은 기도 생활을 했다면, 자녀를 잃어도 그동안 키울 수 있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자전거가 너무 타고 싶은 아이에게 자신의 자전거를 잠깐 빌려줬다가 다시 받으면 아이는 분명 조금이라도 태워준 친구에게 고마워할 것입니다.

 

    우리도 본래 우리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빼앗겨도 항상 감사할 것이 남아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 복음의 과부는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자신을 성장시켜 온 사람의 모델이고 율법 학자들은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믿음이 퇴보한 사람의 모델입니다. 우리는 항상 신앙이 발전하고 있는지 퇴보하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봉헌은 ‘감사’와 직결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율법학자들은 “기도는 길게”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기도에는 과부의 헌금에 들어있는 가장 중요한 봉헌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감사의 마음’입니다. 감사가 자라지 않는 기도는 기도가 아닙니다.
 

    김준호씨는 인하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과에 진학하여 공부하다가 군에 입대했습니다. 군 복무 19개월이 되던 10월 어느 날 부대에서 관물대 위에 올라가 물건을 정리하다가 실수로 땅바닥에 떨어져 크게 다쳤습니다. 척추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경추를 크게 다쳐 전신 마비 환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는 인당이라는 화명으로 붓을 입에 물고 글씨나 그림을 그립니다.

 

    ​그가 감사하는 것을 들어보겠습니다.

 

    첫째는 내가 전신 마비 환자가 되었기 때문에 주님을 영접하고 믿게 된 것이 무엇보다 감사합니다.

 

    둘째는, 군대에서 다쳤기 때문에 치료비를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을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셋째는 원호병원에 입원하는 중에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아내는 그때 병원의 실습생이었습니다.

 

    넷째는 남들이 하지 못하는 구필 화가(입으로 그리는 화가)가 된 것이 감사합니다.

 

    그는 우리나라의 첫 번째 구필 화가로서 이후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1981년도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전시하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었습니다.

 

    그는 항상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내게 베푸신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분이 하는 감사가 ‘과부의 헌금’과 같을 것입니다. 감사할 것이 전혀 없는데도 감사하고 주님께 영광을 드린다면 신앙이 성숙한 것입니다. 반면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불만만 커진다면 이상한 율법주의자가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과부의 헌금이란 ‘모든 상황에서 감사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과부는 생활비 전부를 봉헌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도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율법 학자들처럼 자신들의 재산이라 여기는 것으로 하느님과 거래하지 않습니다. 감사가 증가하지 않으면 신앙은 퇴보하는 것이고 기도도 의미가 없습니다. 기도의 가장 큰 목적이 감사의 마음을 증가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란 말도 있듯, 신앙도 끊임없이 감사를 찾지 않으면 늙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인 것만으로도, 신앙을 가진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작년보다 올해가 항상 더 감사할 줄 알고 행복할 수 있다면 신앙이 익어가는 것입니다.

 https://youtu.be/VBwKxEAbjMg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마르코   12,38-44) -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2021.6.5.)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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