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 15,12-17) - 부활 제5주간 금요일 (20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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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샘

[묵상]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 15,12-17) - 부활 제5주간 금요일 (2021.5.7.)

by honephil 2021. 5. 7.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12-1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13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14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15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16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17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신앙에도 나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10대와 30대, 70대가 이해하는 사랑이 각각 다르듯이, 신앙의 나이 또한 사랑에 대한 이해와 실천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태어나고, 걷고, 자라고, 집을 떠나 독립하고, 우리가 이렇게 하루하루 성장하듯이 우리의 신앙도 사랑을 얻고, 이해하며, 사랑의 기준에 따라 매 순간 ‘예.’ 또는 ‘아니요.’라고 응답하면서 성장해 나갑니다.

 

어떤 때는 예수님의 친구로 살다가, 어떤 때는 예수님의 종으로, 또 어떤 때는 예수님의 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분의 친구로 살지 않아도 그분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친구”라고 불러 주시며, “나는 너를 사랑한다.”라고 하십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루카 10,29-37 참조)에서는 누가 나의 이웃 곧 친구인지 또는 친구가 아닌지를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웃’이라는 개념이 이스라엘 땅에 사는 사람으로 한정되어 이해되던 당대의 한계를 뛰어넘어, 사랑을 알고, 사랑을 느끼며, 사랑을 실천하는 많은 이를 ‘이웃’ 곧 ‘친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은 추상적이거나 일반적이지 않고 구체적입니다. 이 구체성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라는 예수님의 초대에 대한 응답으로 드러날 수 있습니다. 나에게 가장 가까운 이웃과 가장 먼 이웃은 누구입니까?

 

이를 가르는 기준이 필요성이나 다른 현세적 이유는 아닙니까? 우리는 사랑을 통하여 모두 가까운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의심과 망상, 두려움과 원망 속에 있지 말고 진실되게 사랑을 실천하며 자유로운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은 모든 사람이 타고난 사명이며 그리스도인에게는 소명입니다.

신우식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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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회복? 관계는 ‘뜻’에 의해 저절로 맺어진다>

 

    오늘도 역시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 말씀의 연장선상입니다. 우리가 포도나무의 가지처럼 예수님께 붙어있어야 하는 이유는 성령을 수액처럼 받아야 사랑을 실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라고 하셨고, 결국 계명을 따름이 머물 곳을 결정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장소는 그 장소가 요구하는 규칙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품 안, 즉 하느님 나라에 머물려면 그분이 요구하시는 계명, 곧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이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결국 ‘뜻’, ‘계명’은 자신이 머물 곳을 선택하게 되고 그 머무는 곳에서 받는 양식, 즉 특혜를 입을 수 있는 조건이 됩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은 이것에서 더 나아가 ‘친구’가 생기게 만든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친구의 친구는 친구입니다. 저도 신학교에 늦게 들어갔지만, 일찍 들어간 친구 신부가 있었기에 그 동기들이 선배들이면서 또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결국, 친구를 사귀게 만드는 것은 모든 하느님 자녀의 친구인 그리스도와 친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강의 부탁을 받았는데 제목이 ‘관계 회복’과 관련되는 것이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가 불행한 까닭이 나와 관계가 잘 안 되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과 관계가 안 되는 이들, 예를 들면 유다 지도자들이나 가리옷 유다와 같은 이들과 끝까지 관계 회복을 하기 위해 노력하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이 당신이 싫다고 끝까지 고집부린다면 그분은 놓아주십니다.
 

    꼭 나와 관계가 잘 유지되지 않는다고 그 사람과 관계회복을 위해 에너지를 소진할 필요는 없습니다. 관계는 내 의지로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본성으로 맺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모기와 좋은 관계를 맺으려 한다고 좋은 관계가 맺어질까요? 행복을 위해 모기가 사람으로 새로 태어나기 전까지는 잠시 피하는 게 상책입니다.
 

    영화 ‘어벤저스’는 12년간 23편의 작업을 통해 방대한 스케일의 스토리와 세계관을 정립했습니다.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속편이 나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어벤저스의

 

    그러나 아이언맨의 희생으로 타노스가 죽고, 죽었던 모든 생명체가 다시 살아납니다. 이는 마치 그리스도께서 교회라는 당신 팀을 꾸리시고 당신이 사탄의 우두머리를 처치하시기 위해 목숨을 바치신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흥행하는 모든 영화의 기반은 성경입니다. 그리스도의 희생과 그에 따른 결과가 안 들어간 영화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어벤저스 팀의 공공의 적이 없을 때는 어떨까요? 가장 큰 적은 적이 아닌 것처럼 그들에게 다가와 그들을 분열시키는 것입니다.

 

    ‘어벤저스 : 시빌워’는 같은 팀끼리 싸우는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누구와 싸워야 하는지 공공의 적이 명확하지 않을 때 팀원이 친구가 아닌 적으로 바뀌어 같은 팀끼리 싸움과 분열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어디에서는 발생하는 일입니다. 우리를 친구로 만들어주는 것은 친구가 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아닙니다. 공공의 적이고 공공의 목표입니다. 이것이 오직 사랑만이 그리스도의 친구가 될 수 있고 그리스도의 친구들과 친구가 될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영화 ‘오블리비언’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계인에게 복제된 인간임을 모르고 지구인을 공격하고 있었던 주인공 잭 하퍼는 결국 자신이 적을 위해 일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자 적이었던 이들이 친구가 되고 친구였던 이들이 적이 됩니다. 이전 아내가 진짜 아내가 되고 지금의 아내는 이제 자신을 죽이려 합니다. 내가 추구하는 삶의 목적에 따라 친구도 원수가 되고 원수도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굳이 사이가 안 좋아진 사람과 친해지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같은 본성끼리 모이는 것입니다. 모기는 모기끼리, 원숭이는 원숭이끼리, 사람은 사람끼리, 하느님 자녀는 하느님 자녀끼리 모이게 되고 친구가 됩니다.

 

    사람이 모기와 친구가 되려고 하는 것은 집착일 뿐입니다. 어느 날 모기가 사람처럼 된다면 나와 친구가 되어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나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하느님 자녀는 이웃을 사랑합니다.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기만 한다면 어느새 주위에 그리스도의 친구들이 모여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과 함께 세상의 악과 싸워나가면 됩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은 결국 그것을 반대하는 것들과의 싸움입니다. 요한은 말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이고 온 세상은 악마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압니다.”(1요한 5,19)
 

    세상의 악의 세력과 싸워 영혼을 구해내려고 노력하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친구들입니다. 그리스도는 그 우두머리를 제거하기 위해 희생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성령으로 우리 각자에게 당신의 일을 이어가도록 도와주십니다. 이 싸움을 같이하고 있다면 교회는 분열되지 않고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친구가 됩니다.

 https://youtu.be/7zx7RFDM6go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 요한  15,12-17 ) - 부활 제5주간 금요일 (2021.5.7.)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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