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톨로메오 사도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갈릴래아 카나 출신이다. 필립보 사도가 인도하여 예수님의 제자가 된 나타나엘과 동일 인물로 보고 있다(요한 1,45-51 참조). 예수님께서는 그를 참된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칭찬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요한 1,47).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바르톨로메오 사도는 주님께서 승천하신 뒤 인도와 터키로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아르메니아에서 순교하였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5-51
그때에 45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만나 말하였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46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였다.
그러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7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48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49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50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51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오늘은 예수님의 열두 사도 명단에는 있지만(마태 10,3 참조) 이후 복음서에서 별다른 언급이 없어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바르톨로메오 축일입니다. 히브리어로 ‘바르’는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르톨로메오는 ‘톨마이’ 또는 ‘탈마이’의 아들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순교 영웅들의 이야기를 담은 『황금 전설』을 보면 예수님의 첫 기적인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신랑이 바로 바르톨로메오이고, 인도나 아르메니아에 선교하러 갔다가 체포되어 산 채로 살가죽을 벗기는 참혹한 형벌로 순교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학자들은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기적이 일어난 장소인 카나와 관련하여, 카나 사람 나타나엘을 바르톨로메오와 같은 인물로 여깁니다. 여기에는 구체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나타나엘에게 예수님을 소개한 이가 필립보이고, 복음서의 열두 사도 명단에 늘 필립보 다음에 바르톨로메오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필립보는 친구 나타나엘을 찾아가 복음을 전합니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나타나엘은 율법서와 예언서를 열심히 공부하며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고정관념 때문에 필립보가 이야기하는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구약 성경에 나자렛이 언급되지 않았고, 메시아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고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타나엘은 필립보의 초대를 거절하지 않고 따라와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의 이런 태도를 오히려 칭찬하신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라고 선물을 주십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마음의 가죽을 벗겨 진리를 보았기에, 산 채로 살가죽이 벗겨지는 고통 속에서도 믿음을 드러낼 수 있던 바르톨로메오 사도입니다. 오늘 미사의 본기도를 다시 바쳐 봅니다. “주님, 복된 바르톨로메오 사도가 오롯한 믿음으로 성자를 따르게 하셨으니, 저희에게도 굳센 믿음을 주소서.”
박기석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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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거짓말도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오늘은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입니다.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는 나타나엘이라고도 불렸는데, 그는 ‘솔직함’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처럼 예수님께서 그에게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거짓이 없어야만 하느님 나라 백성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요즘 더욱더 거짓말이 활개를 칩니다. 정부에선 ‘가짜뉴스’를 퍼뜨리면 처벌까지 하겠다고 나옵니다. 잘못된 정보로 정부에서 자신들을 표적으로 삼고, 음성인데도 양성이라고 판정을 내린다고 믿는 사랑의 제일교회 신도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불안한 마음에 치료를 받다가 탈출까지 시도해 방역 당국의 애를 먹이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도 전광훈 목사는 정부에서 자신들을 테러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모함하기 위해 바이러스를 교회에 뿌렸다는 것입니다. 엄마부대 주옥순 대표도 마찬가지입니다. 비가 오는 날엔 코로나가 절대 번지지 않는데 왜 코로나와 광화문 집회를 연결하느냐고 병실에서 유튜브로 따집니다. 지금 정권에서 이것으로 독재를 유지하려고 우려먹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거짓말을 많이 하다 보면 자신이 자신의 거짓말을 믿어버리는 수준까지 올라온다고 합니다. 어쩌면 이들이 하는 거짓말을 본인들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죄가 없어질까요? 그들 때문에 온 나라가 겪는 어려움에 대한 책임을 벗어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사회에 피해를 주는 사람들이 더는 생기지 않도록 거짓말에 대한 의식을 새로 해야 합니다.
우리 나라가 거짓말 천국이 되어가는 이유는 ‘착한 거짓말’을 허용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착한 거짓말이나 선의의 거짓말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자신도 거짓말을 하고 자녀들도 내버려 둡니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선의의 거짓말이고, 어디까지가 진짜 거짓말일까요? 바늘도둑이 소도둑 되는 것입니다. 바늘도둑도 도둑인 것처럼, 작은 거짓말도 거짓말입니다. 안 좋은 것이라면 뿌리부터 잘라야 합니다.
제가 음식 대접을 받고 맛이 없을 땐 그저 “먹을 만하네요!”라고 말해줍니다. 먹을 만하니까 먹는 것 아니겠습니까? 맛이 없는데 굳이 맛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분명 상대를 기쁘게 해 주는 말이기는 하나, 그러면서 나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포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중엔 진실을 말해도 믿지 않게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다 거짓말을 합니다. 그런데 거짓말을 한다는 말은 나를 믿지 말아 달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이 경합을 펼칠 때, 대부분 갤럽조사에서는 힐러리 클린턴의 압승으로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었습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할 것이라는 예상을 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빅데이터 통계 전문가들이었습니다. 구글 검색창에 트럼프와 힐러리를 검색한 숫자를 세어보니 힐러리보다 트럼프가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말로는 힐러리를 응원하면서 속으로는 트럼프를 뽑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트럼프를 뽑았다고 하면 정상인 취급을 받지 않을 것 같아서 갤럽 조사에서는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대통령을 마친 사람들이 감옥에 갔을 때 “누가 저 사람 뽑았어?”라고 물어보면 뽑아준 사람은 주위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당선이 되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법칙을 발견합니다. 거짓말은 자기를 선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한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짓말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고 하십니다. 무화과나무는 아담과 하와가 자신들의 몸을 가리기 위해 사용했던 나무입니다. 거짓말의 대명사입니다.
그들은 왜 하느님 앞에서 자신들의 몸을 가리려고 했을까요? 자신들이 죄를 지은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죄책감을 자신들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만이 심판관이십니다. 그런데 자신들이 심판관이 되어 자신들을 심판하고 또 자신들의 힘으로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처럼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만이 심판관이시고 하느님만이 구원자이십니다. 나를 죄인으로 심판하는 분도, 나를 선하게 만드시는 분도 하느님이십니다.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에게 거짓말은 하느님 대신 나 자신이 심판자이고 구원자가 되려고 하느님처럼 높아지려는 방법임을 가르쳐야 합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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