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도 성인은 1090년 프랑스 디종의 근교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그는 시토 수도회에 입회하였고, 뒤에 클레르보 수도원의 아빠스(대수도원장)가 되었다. 베르나르도 아빠스는 몸소 모범을 보이며 수도자들을 덕행의 길로 이끌었다. 또한 그는 교회의 분열을 막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신학과 영성 생활에 관한 저서도 많이 남겼다. 1153년에 선종한 베르나르도 아빠스를 1174년 알렉산데르 3세 교황이 시성하였다. 1830년 비오 8세 교황은 성인을 ‘교회 학자’로 선포하였다.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1-14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비유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1 말씀하셨다.
2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3 그는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4 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일렀다.
‘초대받은 이들에게, ′내가 잔칫상을 이미 차렸소.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어서 혼인 잔치에 오시오.′하고 말하여라.’
5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
6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
7 임금은 진노하였다. 그래서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렸다.
8 그러고 나서 종들에게 말하였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9 그러니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10 그래서 그 종들은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왔다.
잔칫방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11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고,
12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하고 물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13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이자의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14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혼인은 한 사람이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일생 동안의 통과 의례 가운데 한 단계입니다. 예수님의 첫 기적도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였습니다(요한 2,1-12 참조). 예수님께서는 혼인의 중요성도 두 번씩이나 언급하시는데, 아내를 버려서는 안 된다는 확실한 계명(마태 5,31-32 참조)과 함께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태 19,6)라는 선언을 통하여 강조하셨습니다. 하늘 나라에 대한 비유를 드실 때도 혼인은 좋은 예가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인 ‘혼인 잔치의 비유’가 그렇고, ‘열 처녀의 비유’(마태 25,1-13 참조)도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한 어리석은 처녀들에 대하여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인 ‘혼인 잔치의 비유’를 묵상합니다. 임금이 혼인 잔치를 열고 종들을 보내어 초대받은 사람들을 불러오게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참석을 거부하고 심지어 임금의 종들을 때리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분노한 임금은 군대를 보내 복수를 하고, 종들에게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 모두 잔치에 데려오게 합니다. 마침내 혼인 잔치는 손님들로 가득 찹니다. 그런데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보고는 하인들에게 그의 손과 발을 묶어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리게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혼인 잔치는 가장 풍성한 잔치였습니다. 신랑과 신부는 화려하게 치장을 하였고 손님들도 합당한 예복을 갖추어야만 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랑 신부에 대한 모욕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에 나오는, 거리에서 불려 온 사람들은 종들을 무작정 따라나선 것이 아니라, 모든 준비를 마치고 초대받기만을 기다리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늘 나라의 입성을 혼인 잔치의 초대로 비유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늘 준비하고 있어야만 하는 믿음의 자세를 강조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마땅히 갖추어 입고 준비해야 할 우리의 예복을 오늘 독서의 에제키엘 예언자를 통하여 알려 주십니다.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
박기석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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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가려거든 조연상을 노려라!>
오늘 복음 말씀은 ‘혼인 잔치의 비유’입니다. 혼인 잔치는 행복한 하늘 나라 잔치입니다. 어떻게 행복한 나라에서 영원히 머무를 수 있는지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우선은 그 잔치 초대에 응해야 하고, 그다음은 잔치 손님으로 쫓겨나는 일을 피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국민배우를 꼽으라고 하면 많은 분이 ‘안성기’씨를 꼽을 것입니다. 안성기 씨는 영화가 가장 큰 행복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스캔들 없이 꾸준한 연기 생활을 60년 이상 이어왔습니다. 2017년 데뷔 60주년 간담회 때, 배우로서의 꿈에 대한 질문을 받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오래가는 거죠.”
60년을 이어와도 꿈이 ‘오래가는 것’이라는 말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줍니다. 영화가 행복이기에 그 행복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 한국 국민 배우로서의 길을 꾸준히 걸어올 수 있었던 이유를 묻자, 그는 그 이유를 ‘욕심’에서 찾았습니다.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었기 때문에 배우로서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연기 외에 욕심이 없어야 마음 편히 연기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가 ‘동반자이자 큰 행복’인 만큼 그것에만 집중하기 위해 욕심을 버리는 작업을 반복해왔습니다.
“이것 자체가 큰 욕심일지는 모르겠지만 배우는 욕심이 없어야 한다고 봐요. 일 자체에 대한 욕심은 많아야겠지만 일 외적으로 욕심이 많으면 안 되죠. 그럼 내가 편할 수가 없어요. (대인관계, 인기, 명예 등 신경 써야 할 것들의 폭을) 넓혀 놓으면 연기할 때 집중이 안 돼요. 그러니 배우에게 좋은 일이 아니죠.”
[출처: ‘58년 연기 비결? 욕심 없어야 한다’, 김미리 기자, 마이 데일리, 15-03-25]
오늘 복음에 따르면 혼인 잔치에 초대받기 위해 버려야 하는 것은 ‘욕심’ 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욕심이 많은 이들은 혼인 잔치 초대에 응하지 않습니다. 초대에 응답한 이들은 세상 행복에 대한 욕심을 어느 정도는 끊은 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혼인 잔치에 참석했어도 쫓겨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혼인 의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세례를 받았어도 끝까지 가지 못하는 이들을 상징합니다. 그들은 어떠한 욕심을 버리지 못했을까요? 주연에 대한 욕심입니다. 연기자로 따지자면 끝까지 주연만 하려는 사람일 것입니다. 안성기 씨가 오랜 주연을 해오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조연을 했습니다. 자존심이 상할 만도 하지만 그는 ‘아, 이것이 앞으로 내가 가야 할 길이다!’라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유재석씨가 오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주인공이 아니라 항상 어느 자리에서나 조연을 선택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신이 튀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사람들을 튀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튀어나온 못은 망치를 맞게 되어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주인공이 되려는 것도 욕심입니다.
할리우드 연기자들이 가장 피하는 배역은 ‘예수’입니다. 예수 역할을 하면 그 이미지가 너무 강해 더는 다른 역할을 맡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래가려면 영광을 받는 역할을 최대한 피해야 합니다.
요즘 코로나가 다시 극성입니다. 그리고 주범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전광훈 목사’입니다. 그는 2018년 교계 연합기관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에 당선됐습니다. 올해 1월 회장 연임에 성공했으나 직무가 정지된 상태라고 합니다. 누가 봐도 그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주연’이 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가 한 말들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누구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냐. 전광훈 목사 중심으로 돌아가게 돼 있어. 기분 나빠도 할 수 없다.”
“앞으로 점점 더합니다. 앞으로 10년 동안의 대한민국은 전광훈, 대한민국은 전광훈 목사 중심으로 돌아가게 돼 있다니까요.”
작년엔 이런 말도 했다고 합니다.
“나는 하나님 보좌(寶座)를 딱 잡고 살아. 하나님 꼼짝마.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 내가 이렇게 하나님하고 친하단 말이야. 친해.”
혼인 잔치에 참석하려면 세상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세례를 받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과 재물을 봉헌해야 합니다. 이 정도도 희생할 수 없다면 교회에 머물 수 없습니다. 교회에 머무는 것은 마치 혼인 잔치에 머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혼인 잔치 손님이 주인공이 되려고 한다면 어떨까요? 혼인 잔치 손님은 자신을 초대한 이와 신랑 신부가 영광을 받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자신이 마치 주인공인 것처럼 행동하면 그곳에서 쫓겨난 수밖에 없습니다.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을 두려워하십시오. 오직 하느님과 이웃들이 영광을 받을 수 있도록 조연을 맡아야 합니다. 그래야 오래오래 행복하고 싶은 곳에서 원하는 만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주연상이 아닌 항상 조연상을 노리십시오.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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