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수요일’은 사순 시기를 시작하는 날이다. 교회가 이날 참회의 상징으로 재를 축복하여 신자들의 머리에 얹는 예식을 거행하는 데에서 ‘재의 수요일’이라는 명칭이 생겨났다. 이 재의 예식에서는 지난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축복한 나뭇가지를 태워 만든 재를 신자들의 이마나 머리에 얹음으로써, ‘사람은 흙에서 왔고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창세 3,19 참조)는 가르침을 깨닫게 해 준다. 오늘 재의 수요일에는 단식과 금육을 함께 지킨다.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6.16-1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2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3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4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5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6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16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17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18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사순 시기는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이를 위하여 해마다 재의 수요일에 전통적인 신앙 실천 행위인 기도, 자선, 단식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려줍니다. 기도는 나와 하느님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것이며, 자선은 나와 이웃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단식은 나와 나 자신의 관계를 쇄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를 통하여 나와 하느님, 나와 이웃, 나와 나 자신의 관계를 하느님의 뜻에 맞게 재조정하려면 필요한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다른 이에게 드러내려고 기도, 자선, 단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여 이 세 가지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엘 예언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류시화 시인은 자신의 책 『지구별 여행자』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선한 행위를 한 것을 남에게 말하지 말라.
한 번 말할 때마다 그 공덕이 절반씩 줄어들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는 공덕이 전부 사라지고 만다. 그 대신 당신이 나쁘게 행한 것을 사람들에게 말하라. 그것이 진정으로 참회하는 길이다.”외유내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릇 진정한 군자라면 다른 이에게는 관대하고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해야 하는 법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느님과의 관계를 지키기 위하여, 이웃과의 관계를 올바로 정립하기 위하여,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기 위하여 외유내강의 길을 사순 시기 동안 닦읍시다. 다른 이에게 보여 주려고 애쓰는 사순 시기가 아니라, 진정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40일을 보냅시다.
한재호 루카 신부
|||||||||||||||||||||||||||
주신 말씀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마태 6,1-6.16-18)
오늘부터 서울대교구도 당분간 본당에서는 미사와 기타 모임을 금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박해시기에도 전쟁 중에도 없던 일이 벌어지니 참담하기 그지 없습니다. ‘있을 때 잘할 껄’ 그말이 뜬금없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요? 신학교는 어차피 일종의 봉쇄구역이라 이런 사태와 별 상관없이 재의 수요일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다만 오늘이어야 할 개학이 늦어져서 예상치 못한 방학 연장이 있을 뿐입니다. 어수선하게 시작된 사순절이라 마음이 편치않지만 그래도 추스르고 재계의 날을 보내려 합니다.
복음은 산상 설교의 한 대목입니다. 산상 설교에서 삶의 기준으로 제시해주신 말씀이 계속되는데 대충 두 부류의 말씀입니다. 하지 말라는 말씀과 하라는 말씀-금지와 권고의 두가지입니다. 오늘은 보이기 위해 하는 행동을 하지 말고 보이지 않은 일을 보시는 하느님께서 보시도록 주의하라는 말씀이라, 피해야 할 것과 반면 그것을 피해서 하여야 할 것, 그 두 가지가 겹쳐있습니다. 복음서 전체에서 주님이 특별히 싫어하셨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저주까지 하신 것은 겉치레였습니다. 겉치레는 내게 없는데 마치 내게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죠. 주님은 겉치레 하지 말라고 정말 신신당부하십니다.
오늘 세 가지를 예로 드시죠. 자선, 기도, 단식에 관해서입니다. 바리사이들이 자랑으로 일삼는 행위들이고 자신들이 의인이라고 할 수 있는 근거로 삼는 것들이죠. 너희 안에 없는 것인데 있는 것처럼 하는 겉치레의 핵심으로 이 세 가지를 강조하십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근본적으로는 자기를 부인하는 행위들입니다. 자연적으로는 본성, 본능적으로는 자기 것을 나누고 자기 시간을 바치고 자기 양식을 거절하는 것은 일어나지 않죠. 이것은 실상 내 의지가 아니라 초자연적일 때 우리안에 가능한 행위들이라 하느님께서 이끌어주시고 부어주실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주시는 신적 성품이 없는데 내가 그것을 할려고 한다면 그것은 겉치레가 되고 나를 속이고 다른 이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되어 버리고 만다는 것이죠. 일종의 진실의 반역이죠. 내 의지와 내 감정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이끄심이 있어야 온전해지는 거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이기 위한 겉치레 행위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하느님께 대한 빈곤을 낳는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더 무서운 것입니다. 겉치레는 하느님에 대해 가난해지게 만드는데, 그 행위 안에 결국 자기가 가득찬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난한 마음, 가난한 삶을 추구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 가난 그 자체가 좋아서가 아니라 하느님께는 부요해지기 위해서일 따름입니다. 그러니 겉치레로 하는 그 모든 것들은 결국 영적 파산의 지경에 이르게 만듭니다. 자선을 베푸었건만 기도했지만 단식도 감행했는데 남은 것은 영적 파산, 하느님 없는 해위의 귀결은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많이 가져서 위세부리고 많은 힘을 쥐어서 사람들을 부리고 당당해지는 모습을 보여주신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는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섬기신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을 영광스럽게 부요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당당하고 일치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신 것이다. 하여 우리가 하느님 앞에 부요할 때 우리는 염려하지 않는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겉치레의 삶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보여지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그 모든 것을 하는 이들의 특징은 이미 상을 받았다는 것이죠. 사람들로부터 그 노력과 공로를 인정받을 때 이미 다 받았기에 하느님께서 갚아주실 것이 없다는 것, 그래서 예수님은 하느님을 은밀하게 숨어 만나는 이들이야말로 하늘의 보화를 쌓는 사람들이고 하느님 앞에 부요해지는 사람들이며, 깊고 진실한 사랑을 하느님과 맺는 사람들이라 하셨습니다.
누구나 다 알만한 것을 공유하는 사람이 있고 비밀스럽고 은밀한 것을 함께 나누는 사람이 있죠. 더 깊은 관계에 있을 때만 신뢰와 애정이 있을 때만, 비밀을 나눕니다. 하느님과의 본질적인 관계를 우리가 추구할 때 우리는 더 깊어지게 되고 주님과 나만이 아는 영역을 열어가면서도 다른 이들의 시선이나 인정에 그다지 개의치 않게 되고 남들이 몰라준다고 해도 그다지 서운하거나 섭섭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겉치레를 피하고 하느님께 대해서 부요해지기 위해서, 우리 안에 없는 것을 억지로 행하지 말고 진실해지기 위해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추구하는 사순절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 안에 자선을 베풀 때 아깝지 않고 시간을 내어 기도할 때 주님이 들어주신다는 확신으로 가득차며 단식할 때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을 배워가는 속이 여문 시간이 됩니다. 그런 준비로 이 어수선한 사순절을 시작합니다.
남상근 라파엘 신부
'영성의 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묵상] 신랑을 빼앗길 때에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2020.2.28.) (0) | 2020.02.28 |
---|---|
[묵상]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 재의 수요일 다음 목요일 (2020.2.27.) (0) | 2020.02.27 |
[천주교] 서울대교구 내일부터 14일간 (2.26 ~ 3.10) 미사 중단 (2) | 2020.02.25 |
[묵상]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 연중 제7주간 화요일 (2020.2.25.) (0) | 2020.02.25 |
[묵상] 주님,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 연중 제7주간 월요일 (2020.2.24.) (0) | 2020.02.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