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그의 이름은 요한이다. (루카 1,57-66.80) -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2023.6.24.)
세례자 요한은 사제였던 즈카르야와 성모님의 친척인 엘리사벳 사이에서 태어났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마태 11,11). 예수님의 이 말씀처럼 세례자 요한은 주님에 앞서서 그분의 길을 닦은, 구약과 신약을 이어 주는 위대한 예언자다. 그는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라고 고백하는 겸손한 사람이었다. 세례자 요한은 헤로데 임금의 비윤리적 생활을 책망하다가 헤로데 아내의 간계로 순교하였다. 그는 ‘말씀’이신 주님의 길을 준비한 ‘광야의 소리’였다.
오늘은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입니다.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하여 모태에서부터 당신 종으로 빚어 만드신 요한은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라며 뒤에 오실 구원자 예수님을 알립니다. 회개의 세례를 선포한 요한을 기리며 미사에 참여합시다.
<그의 이름은 요한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57-66.80
57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58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59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60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61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62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63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64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65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66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80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이 아이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오늘은 성 요한 세례자 탄생 축일입니다. 성인 중에 어쩌면 유일하게 탄생일을 축일로 지내는 분입니다. 이분의 탄생은 그 자체부터 기적이었습니다. 천사가 일러준 대로 ‘요한’이란 이름을 짓게 하자 묶여있던 즈카르야의 혀가 풀렸기 때문입니다. 이 놀라운 일에 사람들은 모두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라며 신기해하였습니다. 아버지는 분명 주님을 찬미 하며 주님의 길을 닦는 예언자가 될 것임을 노래하였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주님을 드러내게 될 것인지는 신비에 싸여 있었습니다.
우리는 자녀를 키울 때 가끔 부모의 뜻대로 자녀가 따라주지 않는다고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영화 ‘블랙스완’(2010)은 어머니의 기대가 딸의 인생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잘 보여줍니다. 어머니는 발레의 여왕이 될 수 있었음에도 아기를 갖게 되어 꿈을 접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딸을 통해 자신의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니나는 어머니의 인생을 망친 딸로서 죄책감에 시달리며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고의 자리에 오릅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 자신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환상에 시달리며 결국 그 대상을 죽이게 되는데 그것이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엄마의 꿈은 이뤄주었지만, 자신은 자기를 죽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신앙이 없는 사람들 안에서 자주 일어납니다. 자녀를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결국 자녀를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려는 마음 때문에 한 인생이 망가집니다. 인생을 빼앗는 것만큼 큰 도둑질이 있을 수 있을까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오늘 세례자 요한의 탄생은 우리에게 커다란 울림을 줍니다.
세례자 요한이 탄생했을 때 부모는 세례자 요한의 권리를 포기하였습니다. 이것이 이름을 주님 뜻대로 정해주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세례 때 경험합니다. 세례 때 세례명은 사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지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세례 받은 이는 부모의 것이 아닌 하느님의 것입니다. 부모는 그저 “이 아이가 장차 무엇이 될 것인가?”를 지켜보기만 하면 됩니다.
저도 책을 몇 권 써 보았지만, 책을 쓰는 것도 아이를 키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겠습니다. 책은 나의 피를 쏟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그 책을 내가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 책이 자라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것이라 생각하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저는 책 네 권을 교구 출판사에서 출판하였습니다. 사실 제가 쓴 내용을 출판사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여 주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출판한 책들은 또한 내가 마음대로 절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저 자신이 쓴 책을 몇 년 지나서 보고 창피한 것이 너무 많아서 다 절판시켰습니다.
지금도 책을 쓰고 있습니다. 기도에 관한 책인데 벌써 다 써 놓고도 몇 년째 수정만 하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출판사에 투고해보고는 있지만, 출판을 해 주겠다는 곳은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실망하지 않습니다. 저의 것이라는 생각을 어느 정도는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때마다 조금씩 수정할 뿐입니다. 그리고 저 자신에게 묻습니다.
“도대체 어떤 책이 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 것일까?”
분명 지금 쓰는 책이 어느 곳에서 출판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 책은 주님을 알리는데, 이전까지 제가 쓴 책들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미칠 것입니다. 김승호 회장은 어렸을 때 자신이 수천 명 가운데서 마이크를 들고 연설하는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일곱 번의 지독한 실패에도 ‘이번은 아니구나!’라는 마음으로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5천억이 넘는 재산을 가진 부자가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단순히 어렸을 때 그렸던 자기 모습이 실현된 것을 보고는 놀랍니다.
우리 자녀들도 이렇게 대해야 합니다.
“너는 분명히 어떤 식으로든 그리스도를 전하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사람이 될 거야. 어떤 식으로 될지는 나는 모르겠다. 나는 그저 너를 응원하며 지켜볼 거란다.”
오늘 복음에서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라고 나오고 있습니다. 이는 즈카르야나 엘리사벳이 상상하지 못했던 삶입니다. 그저 그들은 하느님께서 자기 아들을 어떻게 이끄시는지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라는 생각은 하느님께 자녀를 봉헌한 부모가 자녀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미사 묵상글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루카 1,66
For surely the hand of the Lord was with him. Lk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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