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노 성인은 354년 북아프리카 누미디아의 타가스테(현재 알제리의 수크아라스)에서 모니카 성녀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젊은 시절 방탕한 생활을 하며 마니교에 깊이 빠져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 모니카 성녀의 끊임없는 기도와 이탈리아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오 주교의 영향으로 회개하고 입교하였다. 391년에 사제가 된 그는 5년 뒤 히포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아우구스티노 주교는 이단을 물리치며 교회를 수호하는 데 일생을 바치며 참회의 자서전 「고백록」 등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 430년에 선종한 그는 중세 초기부터 ‘교회 학자’로 존경받고 있다.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5,14-3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14 “하늘 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
15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렌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탈렌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다.
16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는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다.
17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그렇게 하여 두 탈렌트를 더 벌었다.
18 그러나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물러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그 돈을 숨겼다.
19 오랜 뒤에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20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가 나아가서 다섯 탈렌트를 더 바치며,
‘주인님, 저에게 다섯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1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22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나아가서,
‘주인님, 저에게 두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24 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나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25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
26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27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에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
28 저자에게서 그 한 탈렌트를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29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30 그리고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는 354년 북아프리카의 타가스테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22세에 카르타고에서 수사학 교사가 되었는데, 이때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에서 ‘지혜에 대한 사랑’(philosophia)이라는 말을 발견하고는, 평생 지혜를 찾고자 노력하였습니다. 387년 세례를 받았으나 신앙생활은 갈등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우구스티노에게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성인이 바로 그 유명한 “집어 읽어라.”(Tolle, Lege.)라는 말씀을 듣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성경을 펴서 읽습니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로마 13,13-14).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수도 생활에 전념합니다. 사제품과 주교품을 받은 뒤 히포의 주교로서 공동체를 돌보고, 이단과 싸우며 교회의 일치와 평화를 이루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합니다.
“오, 그토록 오래되었으면서도 그토록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제가 당신을 너무나도 늦게 사랑하였습니다! 당신께서는 제 안에 계셨습니다. 그런데 …… 저는 밖에서 당신을 찾았습니다. …… 저는 당신 안에 있지 않으며 아무것도 아닌 것에 사로잡혀 당신을 멀리하였습니다. 당신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 저는 당신을 맛보았습니다. 이제 저는 당신으로 인하여 허기지고, 갈증이 납니다. 당신은 저를 건드리셨으며, 이제 저는 당신께서 주신 평화를 위하여 맹렬히 불타오릅니다”(『고백록』). “
모든 회개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입니다. 아우구스티노는 회심하기 전까지 밖에서 살았는데, 하느님께서 그를 내면으로 끌어들이셨습니다”(모리스 젱델, 『감탄과 가난』, 28-29면). 나는 오늘 하루 무엇을 찾고 있나요?
서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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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나의 능력이 얼마까지 성장할 수 있다고 믿으실까?>
오늘 복음은 탈렌트의 비유입니다. 마지막 때에 주님께서 주신 탈렌트를 개발하거나 성장시키지 않고 게으르게 살다가 온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내용입니다.
탈렌트는 ‘재능’입니다. 나의 재능은 어느 만큼 성장할 수 있을까요? 나의 재능은 내가 믿는 만큼 성장합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나에게서 솟아나지 않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고 자아가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어떤 능력을 지녔다면 그것은 반드시 누군가가 내가 그렇게 될 수 있음을 먼저 믿어주었고 내가 그 누군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 하나의 예외도 없습니다. 사람은 믿어주는 사람이 없을 때는 생명을 유지할 능력도 잃게 됩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인 이춘재 씨가 잡힐 때까지 20년을 억울하게 옥살이 한 사람이 있습니다. 윤성여 씨입니다.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초등학교 때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그 보상금을 도박으로 다 날렸습니다. 혼자라도 열심히 살아보려 했지만, 어느 날 경찰이 들이닥쳤고 성여 씨는 영문도 모르는 채 경찰서로 끌려갔습니다.
당시 이 사건 때문에 많은 경찰 간부들이 해직을 당하던 터라 경찰들도 물러설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여 씨를 고문하여 자신들이 써 놓은 대로 읽고 자백하라고 강요했습니다. 특히 3일 동안 잠을 재우지 않았을 때는 현실과 꿈이 구분되지 않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자백을 시키고 무기징역을 받게 했습니다.
감옥에 들어가면 그런 죄질로 들어온 사람은 집단 구타와 따돌림을 받는다고 합니다. 아무리 무죄를 주장해도 그를 믿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혼자 세상에 남겨진 그는 살 힘도 잃었습니다.
사는 것도 누군가가 기대해 주어야 생존할 수 있는 존재가 사람인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이때 그를 믿어준 생명의 은인이 나타납니다. 박종덕 교정 공무원이었습니다. 그는 범죄 자체를 전면으로 그것도 일관되게 부정하는 수용자는 처음 보았다고 하며 그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너는 끝까지 살아야 한다. 여기서 살아남는 길은 너의 인내심이다.”
그는 그렇게 감옥에서 20년을 버텼고 32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윤성여 씨는 박종덕 씨를 생명의 은인으로 부르며 감사하다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밖으로 나오니 더 힘들다고 합니다. 친척들도 왜 왔느냐며 그를 문전박대하듯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여 씨 때문에 친척들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젠 박종덕 씨의 믿음과 또 돌아가신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살아가겠다고 결심합니다.
나는 이렇게 내가 믿어주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내가 살기를 기대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생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약한 존재가 인간입니다. 인간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교만은 빨리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박지성 씨도 좌절에 빠져있을 때 큰 선수가 될 것이라는 히딩크의 그 한 마디가 자신을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사람을 만드는 것은 믿음이란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살기 위해서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을 믿으려 합니다. 하지만 잘 믿어야 합니다.
뱀과 같은 이들을 믿었다가는 오히려 삶을 망치고 맙니다. 뱀은 그저 생존하기 위해 뱀과 같이 타인을 먹는 것만 할 수 있다고 믿게 합니다.
마이클 타이슨과 같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좋지 않은 가정환경에서 자라나 감옥에서 살다시피 한 그의 젊은 시절에 그를 알아보고 세계 챔피언으로 키운 코치가 ‘커스 다마토’였습니다. 타이슨은 말합니다.
“커스는 나 자신을 믿게끔 도와주었다. 무엇을 하든 간에 스스로를 믿지 못하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목수건 오타쿠이건 말이다. 나도 이제 나 자신을 믿는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누구도 나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최연소 헤비급 챔피언이 되었지만, 그의 영예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커스 다마토가 죽고 ‘돈 킹’이 그의 후견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돈 킹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돈 킹은 타이슨을 그저 자신의 돈벌이로 여기는 인물이었습니다.
이때부터 타이슨은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다시 범죄로 감옥 생활을 하고 링은 즐기는 곳이 아닌 물어뜯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점점 망하게 되어 많이 번 돈을 다 잃고 파산신청까지 하게 됩니다.
커스 다마토도 자신을 믿게 했고 돈 킹도 자신을 믿게 했습니다. 자신을 믿는 것만으로는 능력을 성장시키는 것이 부족합니다. 자신을 믿게 만든 사람을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믿음을 준 사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살펴야 합니다.
그분이 하느님이시라면 하느님을 기쁘게 하려고 내가 가진 모든 재능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렇게 탈렌트를 가진 자는 그 탈렌트에 다른 탈렌트를 더하게 됩니다. 그러나 돈 킹처럼 나의 능력을 이용하여 자기의 배를 채우는 사람이라면 내가 그 사람을 믿고 일하게 되었을 때 나는 모든 능력을 잃게 됩니다.
능력을 키우기 위해 나는 분명 누군가 한 명은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누군가가 나의 능력을 성장시켜 주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나를 어떻게 단련시키는지 보면 됩니다.
돈 킹은 타이슨은 방탕한 생활로 길들였습니다. 그러나 커스 다마토는 그를 혹독한 훈련으로 길들였습니다. 사람은 방탕해지면 모든 능력을 잃습니다.
오늘 한 탈렌트를 받은 사람이 그런 사람입니다. 이것을 ‘게으름’이라 합니다. 하느님의 믿음을 받아들였다면 게을러질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나의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 혹독하게 훈련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커스 다마토는 말합니다.
“자신에게 이러한 잠재적인 자질과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려줄 때 마음 깊이 스스로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진다. 스스로를 믿을만한 이유를 줘야 한다. 스스로에게 자질과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스스로를 믿은 후의 육체적 훈련은 쉽다.”
하느님께서도 우리에게 당신 아드님을 내어주시며 우리가 당신 아드님처럼 할 수 있다는 것을 믿게 하셨습니다. 그것을 믿는다면 지옥훈련을 거칠 힘이 생깁니다.
십자가를 지게 하지 않는 그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의 믿음을 저버리지 맙시다. 그분은 항상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우리에게 기대하고 계십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조용히 살도록 힘쓰며
자기 일에 전념하고
자기 손으로
제 일을 하십시오.
1테살 4.11
Whe urge you to aspire
to live a tranquil life,
to mind your own affairs,
and to work with
your own hands.
1Thes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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