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루카 4,16-30) - 연중 제22주간 월요일 (202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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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샘

[묵상]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루카 4,16-30) - 연중 제22주간 월요일 (2021.8.30.)

by honephil 2021. 8. 30.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16-30
그때에 16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17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22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23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며,
‘네가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 보아라.’ 할 것이다.”
24 그리고 계속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26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27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3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공생활 이전의 모습을 길게 소개한 뒤에, 세례와 광야에서의 유혹, 그리고 갈릴래아의 전교 이야기로 예수님의 공생활을 소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의 여러 회당에서 전교 활동을 시작하셨는데, 주로 나자렛과 카파르나움을 중심으로 하여 갈릴래아 호수 주변에서 활동하셨습니다.

 

갈릴래아는 이스라엘에서 비옥한 곡창지대이지만, 그곳 사람들은 대부분 소작인이어서 부자와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았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이들을 죄인으로 낙인찍고 상종하려 들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스라엘의 수도가 아닌 이방인의 땅, 아픈 이들의 땅인 갈릴래아로 가시어 복음을 전하십니다.

 

그런데 루카 복음에서 특이한 것은 ‘성령’에 대한 강조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며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셨습니다”(루카 3,21-22). 또한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가득 차 요르단강에서 돌아오시고, 성령에 이끌려 광야에 가시어”(4,1) 유혹을 이기시고, 그 “성령의 힘을 지니고 갈릴래아로 돌아가시어”(4,14)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십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4,18; 참조: 이사 61,1)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처럼 예수님께서는 기름부음받은이, 곧 메시아가 되시어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온 인류에게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가난한 이, 빚 때문에 투옥되거나 잡혀서 유배 당한 이, 육체뿐 아니라 마음까지 어둠 속에 있는 눈먼 이, 사회적으로 짓밟히고 억압받고 소외된 약한 이들, 고통에 울부짖는 이들에게 구원의 손을 내미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이들과 함께 계신다.”라고 말씀하시며,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을 살리십니다. 이제 세례로 성령을 받은 우리도 아파서 울부짖는 이들에게 다가가 그들과 함께하고, 그들을 살리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서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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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히’ 사는 사람은 죽음도 ‘막연해서’ 두렵다>

 

    루카는 성령을 통한 그리스도의 구원 소명을 선포하는 사건이 나자렛에서 일어난 것으로 쓰고 있습니다. 물론 나자렛 사람들은 자신들이 아는 요셉이 메시아가 되었음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선입관에 사로잡힌 교만을 지적하시고 그들은 그런 예수님을 절벽에서 떨어뜨리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 두려움 없이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십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의 소명을 선포하는 것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은 하나의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누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하루하루를 주님 뜻에 따르며 자신을 버린 삶을 사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그냥 조금 더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일까요?

 

    말기 암 환자들을 많이 접한 경험을 책으로 쓴 김범석 의사가『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라는 책에 소개한 죽음을 받아들이는 두 분의 말기 암 환자의 이야기입니다.

 

    70세의 노인 암 환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살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의사로서 볼 때 6개월 이상은 힘들 거 같다는 말을 해 주었습니다. 그 환자는 담대하게 그것을 받아들였고 남은 시간 동안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다 해보고 떠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후로 그는 정말 매주 하나씩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 거창한 일이 아닌 아내와 바닷가로 여행 가서 해산물 요리 먹기, 종일 바다 보기, 좋아하는 노래를 모아 자식들에게 선물하기, 손주들에게 편지 쓰기, 고향 친구들에게 밥 사주기, 예전에 싸웠던 친구에게 연락하기 같은 일상적이면서도 소소한 일들이었습니다.

 

    그는 매주 병원에 올 때마다 지난주에 자신이 했던 일들을 소상히 늘어놓으며 즐거워했습니다. 진작에 그렇게 살았어야 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갑자기 할 일이 많아졌고 사는 게 즐거워졌는데 얼마 남지 않아서 몹시 아쉽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남은 시간을 즐겁게 보내며 떠났습니다.

 

    김범석 선생을 찾아온 다른 노인 환자도 있었습니다. 그는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기대수명을 듣고는 딱 10년만 더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건 지나친 기대였습니다. 평균적으로 그는 당해 추석도 넘기기 힘들다고 판단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꾸만 ‘10년만 더’를 말했습니다. 물론 모른 척하고 하는 데까지 해보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환자가 의식이 없어지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의사로서 환자가 현실을 직시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남은 시간도 인생의 귀중한 일부로 만들고 떠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10년 더 사시면 뭘 하고 싶으세요?”

    “...” 

 

    침묵이 흘렀고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가고 싶다거나, 손주가 학교 들어갈 때 교복 한 벌 해 주고 싶다거나, 아니면 고향에 한 번 다녀와야겠다…. 뭐 그런 거요.”

    “...”

 

    여러 번의 질문에도 그는 끝내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막연히’ 좀 더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만 있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는 자신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런 경우가 특별하지는 않다고 합니다. 오히려 일주일에 하나씩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이례적이라고 합니다. 사실 평범하고 건강한 사람도 자신이 뭘 원하는지, 무엇에 기쁘고 슬픈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모른 채 그저 막연하게 살아갑니다.

 

    그래서 의사로서 앞 환자의 예를 들어 그분을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다음 외래에 올 때 하고 싶은 일 열 가지만 생각해오라고 숙제를 내주었습니다.

 

    하루에 한 번 웃을 일 만들기, 핸드폰 사진 매일 찍기, 일주일에 세 번 산책하기, 자식들에게 하루에 한 통 문자 보내기, 아내에게 매일 고맙다고 말하기 같은 소소한 것이면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숙제가 너무 어려웠는지, 너무 평범해서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인지, 그는 다음 외래에도 빈손으로 왔고 그렇게 주저하다 추석을 넘기지 못한 채 눈을 감았습니다.

 

    이 두 사례 중 죽음을 덜 두려워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첫 번째 사람이 죽음이 두려워 하루하루 충실히 살려고 했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오늘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두려워합니다. 삶이 막연하니 죽음도 너무 막연해서 두려운 것입니다.

 

    반면 삶이 해야 할 일로 채워지면 죽음도 해야 할 일의 일부가 됩니다. 그러니 오늘 해야 할 일 중의 하나가 죽음이 되는 것입니다. 죽음도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삶이 명확할 때 죽음도 명확해집니다.

 

    어느 독특한 월터란 물리학 교수의 동영상이 있습니다. 그는 물리 공식에 광적으로 미쳐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월터 교수는 물리학 수업을 하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은 강의실 안에서 실제로 보여줍니다.

 

    그런데 하루는 월터 교수가 살짝 더 이상했습니다. 15kg 되는 추를 자신의 턱에 갖다 대놓고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믿습니다. 운동에너지 보존법칙을 100% 확신해요. 나 자신은 믿지 못할지라도. 조용히 해 주세요. 장난이 아닙니다. 어제 잠을 거의 못 잤더니 힘드네요. 셋, 둘, 하나.”

 

    추가 다시 돌아올 때 턱이나 목이 부서질 수 있는 상황인데도 학생들 앞에서 자신이 믿는 물리학 법칙이 틀리지 않음을 증명합니다. 에너지 법칙에 따라 추는 자신이 놓은 그 자리 이상 올라올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도, 보는 사람도 짜릿합니다.

 

    성령은 이렇게 우리에게 삶의 법칙을 주십니다. 당신 뜻대로 살면 행복할 것이란 법칙입니다. 그리고 그 법칙대로 살다 보면 하루하루가 정말 빡빡합니다.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 덕분에 행복합니다.

 

    그리고 그 법칙대로 삶의 일부인 죽음도 주님 뜻대로 받아들이면 행복으로 끝날 것을 알게 됩니다.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월터 교수처럼 하루하루가 짜릿하면서도 주님의 말씀에 오류가 없음을 체험하며 기뻐합니다.

 

    ‘오늘은 뭐 하며 살지?’라는 식으로 절대 하루를 막연하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도 성령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분명 주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따라서 전날 잠들기 전에 다음 날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 그래서 꼭 해야 할 일을 두 가지에서 많게는 여섯 가지 정도 정하십시오. 아침에 일어나면 내가 정한 대로 기계처럼 움직이며 먼저 두 가지는 꼭 하십시오.

 

    이렇게 살다 보면 하나의 법칙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은 항상 기쁨으로 끝난다는 것을. 그리고 죽음조차도 하나의 소명임을. 그리고 그 죽음 뒤에 가장 큰 기쁨이 기다리고 있을 것임을.

 

    그렇게 우리는 죽음 앞에서까지 담대할 수 있어서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 뜻에 나를 맡기고 마지막 날이라고 여기며 기쁘게 살아갑시다. 하느님 뜻에 살짝 미치면 죽음까지 포함한 매일의 삶이 즐겁습니다.

 https://youtu.be/B_lMFqdMKSw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루카 4,16-30) - 연중 제22주간 월요일 (2021.8.30.)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루카 4.22

 

All spoke highly of him

and were amazed at the gracious words

that came from his mouth.

Lk 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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