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60ㄴ-69
그때에 60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말하였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6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두고
투덜거리는 것을 속으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62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63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64 그러나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이며
또 당신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이다.
65 이어서 또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
66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67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68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69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투덜거립니다. 여기서 많은 사람은 열두 제자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벳자타 못 가에서 서른여덟 해나 앓던 사람을 치유해 주신 기적을 보고 갈릴래아 호수 건너편까지 그분을 따라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기적을 체험하고 예수님을 임금으로 모시려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당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빵”(요한 6,41)이라고 말씀하실 뿐 아니라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만 살 수 있다.’(요한 6,53 참조)고 하시자 많은 이가 투덜거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살을 먹는다.’고 하실 때 ‘씹어 먹다’라는 동사를 사용하셨기에, 그들은 ‘우리가 식인종인가?’라고 듣기 거북해하며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게 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이 말은 ‘걸려 넘어지다’라는 뜻으로 “내 가르침이 너희를 걸려 넘어지게 하느냐? 이 가르침 때문에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그분처럼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이신 삼위일체 하느님을 보여 주실 뿐 아니라, 사랑은 고통이 함께 따르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시며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길은 사랑의 길이지만, 영광의 길이 아니라 고난의 길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목숨까지 바치신 그 길은 부활하신 뒤에도 끝나지 않고 다시 시작하는 지극한 사랑의 길입니다. 이 십자가를 바탕으로 하는 사랑 앞에서 우리는 묻습니다. “아니 죽기까지 하라고요?”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그래. 나는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사랑했고, 부활한 다음에도 갈릴래아에 가서 다시 시작했단다. 너는 어떻게 할래?”
서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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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를 떠나는 사람들의 공통점: 육에 대한 분노와 적대감 부재>
오늘 복음에서는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체험한 이들이 예수님께서 당신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고 하시자 그 말씀이 너무 어렵다며 결국 예수님을 버리고 떠나갑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영적인 인간이 아니라 육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당신을 떠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성체성사의 본래 의미를 알게 되면 육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살아오던 삶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도 바쳐야 하고 사람도 판단할 수 없으며 육체도 절제하여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성체는 육체를 파괴하려고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기 생명까지 미워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육체를 사랑한다면 성체 앞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이해할 수 없다고 떠나버릴 것입니다. 오늘 유다인들이 보인 반응입니다. 그들은 계속 육체를 배 불리는 빵만 원했던 것입니다.
성체와 육체의 관계를 따지자면 떠오르는 상징이 있습니다. 다니엘서 2장에 나오는 동상입니다.
바빌론 왕 네부카드네자르는 꿈을 꾸고서 마음이 불안하여 잠을 자지 못합니다. 그는 온 세상을 통치하는 왕입니다. 그래서 현자들을 모아 그의 꿈을 맞추고 해석하라고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다 죽이겠다고 말합니다. 이때 바빌론으로 끌려온 다니엘도 있었습니다.
다니엘이 죽기 직전 하느님께서는 환시로 그 꿈을 알려주십니다.
그 꿈은 이렇습니다. 머리는 황금이고 가슴과 팔은 은이며, 배와 허벅지는 구리이고, 종아리는 철, 그리고 발은 철과 흙이 섞인 동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산에서 떨어져 나온 돌이 쇠와 진흙이 섞인 발을 때려서 동상이 무너져 가루가 되는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석합니다. 금으로 된 머리는 바로 지금 세상을 지배하는 네부카드네자르입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올 나라들은 은과 같고 동과 같고 철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들을 지탱하는 발은 철과 흙이 섞여 있어서 매우 약합니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바빌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순으로 그 금속의 상징을 볼 수 있겠습니다.
어쨌든 돌이 무엇인지는 모르는데 그 나라들을 모조리 허물어버립니다. 그리고 그 돌은 산처럼 커집니다. 그 돌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어떠한 나라들을 무너뜨리고 영원히 성장할 ‘하느님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허물어져야 하늘나라가 세워질까요? 육체의 나라입니다. 동상은 육욕이 지배하는 나라임이 틀림없습니다.
그 돌의 역할을 하러 하늘에서 떨어져 나오신 분이 누구이시겠습니까?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발을 당신 피로 씻어주심으로써 우리 육체가 다 허물어지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위에 당신 나라를 세우십니다. 그러나 내가 무너지기를 원치 않는다면 나를 허물러 오시는 그리스도는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럴 때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라고 하게 됩니다.
요한복음은 성체성사의 제정이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것으로 대체한 것입니다. 성체가 그 사람 안에 들어가면 하느님께서 겸손하게 나의 발을 씻어주시는 예식처럼 여겨집니다.
교황님이 오셔서 나의 더러운 발을 씻어주시고 발바닥에 입을 맞추신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제자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배신하고 도망갑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내리시자 이젠 도망치지 않습니다. 이전의 육적인 삶을 완전히 벗고 그리스도만을 위한 삶을 삽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성체라는 돌로 내 육체를 허물려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라면 말씀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핑계로 성체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믿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내 육체의 모든 욕구가 허물어질 것을 직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체를 영하려는 이는 그 성체가 내 안에서 무엇을 허물어뜨리기 위해 날라오는지 알아야 합니다. 나를 영적인 나라로 만들기 위해 육체적인 나라를 허물러 날라오는 돌과 같습니다.
우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헐크’라는 푸른 괴물의 이야기를 TV나 영화로 보아왔습니다. 성격은 괴팍해도 약해빠진 본래의 브루스 배너라는 박사가 죽지 않으면 위기에 처한 친구를 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박사는 자신이 사라지고 헐크가 날뛰는 것을 좀처럼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헐크의 최대 적은 자기 자신인 배너 박사입니다. 헐크가 열이 받을수록 배너 박사는 사라집니다. 그리고 헐크가 나타나 모든 일이 해결됩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나를 죽이고 내 안의 거인을 깨워 이 세상에서 하시려는 일을 방해하는 브루스 배너 박사에게 열이 받아야 합니다. 그럴 줄 알아야 친구들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나를 무너뜨리기 위해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인 발을 때리는 돌이 성체입니다. 성체가 나를 무너뜨리지 못하면 그 어떤 것도 나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내 안의 우상인 나 자신을 허물어 당신 나라를 만들기 위해 오시는 성체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 모십시다.
내가 죽어야 나도 살고 이웃도 살 수 있음을 모른다면 성체는 영원히 생명의 양식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떠나는 사람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육에 대한 적대감도 없고 분노도 없다는 사실 하나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그분만이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여호 24.18
He is
our God.
Jos 2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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