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 하느님을 믿어라. (마르코 11,11-25) - 연중 제8주간 금요일 (202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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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샘

[묵상]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 하느님을 믿어라. (마르코 11,11-25) - 연중 제8주간 금요일 (2021.5.28)

by honephil 2021. 5. 28.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 하느님을 믿어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1-25
예수님께서 군중의 환호를 받으시면서
11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그곳의 모든 것을 둘러보신 다음,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열두 제자와 함께 베타니아로 나가셨다.
12 이튿날 그들이 베타니아에서 나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시장하셨다.
13 마침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멀리서 보시고,
혹시 그 나무에 무엇이 달렸을까 하여 가까이 가 보셨지만,
잎사귀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무화과 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4 예수님께서는 그 나무를 향하여 이르셨다.
“이제부터 영원히 어느 누구도 너에게서 열매를 따 먹는 일이 없을 것이다.”
제자들도 이 말씀을 들었다.
15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갔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시어,
그곳에서 사고팔고 하는 자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셨다.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도 둘러엎으셨다.
16 또한 아무도 성전을 가로질러 물건을 나르지 못하게 하셨다.
17 그리고 그들을 가르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18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그분을 없앨 방법을 찾았다.
군중이 모두 그분의 가르침에 감탄하는 것을 보고
그분을 두려워하였던 것이다.
19 날이 저물자 예수님과 제자들은 성 밖으로 나갔다.
20 이른 아침에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 있는 것을 보았다.
21 베드로가 문득 생각이 나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보십시오.
스승님께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렸습니다.”
22 그러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느님을 믿어라.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 하면서,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않고 자기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믿으면,
그대로 될 것이다.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25 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누군가에게 반감을 품고 있거든 용서하여라.
그래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마르코 복음사가는 무화과나무와 성전을 ‘무화과나무의 말라 버림’과 ‘성전의 정화’라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이야기로 연관시킵니다. 곧 무화과나무의 운명이 성전의 운명을 예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성전은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하느님의 집’(탈출 25,8 참조)이며, 하느님을 찬미하고 번제물과 희생 제물을 드리는 “기도하는 집”(이사 56,7)으로 참으로 거룩한 장소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성전”(1코린 3,16)으로 하느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먼저 신앙을 통하여 자신이 변화하고, 이 변화는 가족과 이웃들에게 더 많은 사랑이라는 열매를 내어 줍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주는 신앙을 가졌지만 어떤 변화도, 어떤 사랑도 실천하지 못한다면, 우리 또한 열매 맺지 못하고 말라 버린 무화과나무와 다를 것이 없으며 정화가 필요한 성전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에 앞서 먼저 “하느님을 믿어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믿는다’는 말은 ‘행한다’는 의미를 포함하는 능동적인 말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과 그분의 사랑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하고 있지 못하다면 성전을 정화하신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방법에 주목해야 합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용서해 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먼저 미워하는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하느님께 나아가는 참된 길이며 많은 열매를 맺는 무화과나무로 주님을 우리 안에 모시는 방법입니다.

신우식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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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열매가 맺힐 때까지 기도를 멈춰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성전에서 사고팔고 하는 자들을 쫓아내십니다.
그 이유는 성전이 “기도하는 집”이 아니라 “강도들의 소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집과 강도들의 소굴의 차이점은 ‘믿음의 열매가 맺히느냐, 맺히지 않느냐’로 분별이 됩니다.

 

    강도들의 소굴은 오늘 복음에서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에 비유됩니다. 그런 전례나 성전은 파괴됩니다. 예수님은 그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며 우리는 믿음을 맺는 기도를 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이란 ‘내가 청하면 하느님은 들어주실 수밖에 없다.’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어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 하면서,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않고 자기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믿으면, 그대로 될 것이다.”
 

    어떻게 산보고 명령하는데 그것이 바다에 빠질 수 있다고 믿을 수 있을까요? 자신이 하느님이라도 됐다고 믿어야 할까요? 맞습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청하면 부모가 무엇이든 들어줄 것을 믿습니다.

 

    기도하고 나면 이런 자존감의 회복이 일어나야 합니다. 만약 기도하고 났는데도, “난 안 돼. 난 못해.” 등의 생각이 남는다면 아직 기도가 덜된 것입니다.

 

    기도의 열매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믿음입니다.
 

    기도하고 나서 나에게 이런 자신감과 믿음이 생겼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미사를 하고 기도를 하는 것만으로 부족합니다. 기도한 대로 이미 이뤄졌다는 기쁨과 평화의 열매가 맺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미 이뤄진 줄 믿으면 마음이 평화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의 열매는 그래서 ‘믿음에서 오는 평화’입니다. 이 열매가 맺힐 때까지 기도를 멈춰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처럼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부족할수록 마음의 평화가 깨집니다. 이 평화를 얻기 위해 불안해하는 자기를 기도 안에서 봉헌해야 합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아깝게 은메달에 그쳤던 유도선수 김재범은 그다음 올림픽인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땁니다. 은메달에서 금메달로 가는 그 과정이 얼마나 혹독 했겠습니까? 그리고 결국엔 모든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죽기 살기’가 아닌, 그냥 ‘죽기’로 연습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이와 같습니다.
 

    그는 배고팠던 어린 시절을 살았습니다. 빵과 우유를 준다는 말에 유도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승부 근성이 있어서 죽기 살기로 했습니다.

 

    한 번은 아버지와 새벽 운동을 나갔는데 아버지는 뒤에서 차로 빛을 비춰주며 따라오고 김 선수는 뛰다가 넘어졌습니다. 뒤에서 빵빵 소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차가 자신을 갈릴 것처럼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이러다 죽겠구나 싶어서 벌떡 일어나 “저게 뭐 아빠야!”하고 다시 뛰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김재범이 있게 한 분이 아버지였다고 이제는 말합니다. 그때부터 ‘죽기 살기의 정신’으로 운동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남들과 똑같이 운동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 이건 미친 짓입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올레 비쇼프 선수에게 져서 은메달에 그칩니다. 하지만 아쉬움이 없었습니다. 죽기 살기로 했기때문입니다.

 

    올림픽을 마치고 새로운 감독님이 김재범 선수를 보자마자 한 한 마디는 “또 질래?”였다고 합니다. 자신은 잘했다고 믿었는데 감독님은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며 런던 올림픽은 ‘죽기 살기’가 아닌 ‘죽기’의 정신으로 해야겠다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그는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인데, 11시 11분이면 꼭 기도했다고 합니다. 1등 아니면 안 된다는 의지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던 중 어깨 부상으로 런던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수술을 하지 않고 죽기로 훈련합니다. 시간을 바꿔 10시 04분에 기도를 했는데(1004: 천사) 감독님은 하루 100개도 하기 힘든 튜브 당기기를 1004번을 하자고 합니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결과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런던 올림픽에 나갔고 결승까지 갑니다.

 

    그는 다시 기도합니다. 전에 자신이 졌던 올레 비쇼프 선수가 결승에 올라오기를. 그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이전의 자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를 이기고 금메달을 따고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랜드슬램을 도전하게 된 것입니다.
 

[출처: 강연쇼 60분의 기적, 김재범: ‘죽기 살기’가 아닌 ‘죽기’의 정신으로]
 

    기도는 쉬운 일일까요? 김재범 선수가 한 것처럼 자신을 죽이는 시간입니다.
기도는 마치 밀떡과 포도주처럼 자기를 봉헌하여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되는 과정입니다.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써 그리스도가 되기 위해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 기도를 마치면 이제 내가 죽고 새로운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게 됩니다. 그러면 불가능이 없어집니다. 그때가 되면 마음에 평화가 오고 이전에 졌던 선수를 자신 있게 부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승리합니다. 이때까지 해야 합니다.
 

    영화 ‘트루먼 쇼’(1998)는 전 세계 사람이 트루먼이란 한 사람을 속여먹는 내용입니다.
    트루먼은 자신만 모르는 커다란 TV 세트장에서 모두가 배우인 사람들 속에서 살아갑니다. 누구도 트루먼을 진정으로 사랑해주지 않았지만, 실비아만이 트루먼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직장을 잃어가면서까지 트루먼에게 진실을 이야기해 줍니다.

 

이때 바닷가에서 둘이 ‘키스’를 하는데, 그 키스는 트루먼에게 세상 모든 사람과 싸워 이길 힘과 두려움의 바다를 건널 용기를 줍니다.

 

    트루먼은 처음엔 그 말을 잘 믿으려 하지 않았지만, 그 키스의 달콤함이 생각날 때마다 실비아의 말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조금씩 실비아의 말을 믿게 되고 모든 의심스러운 것들과 싸움을 시작합니다. 키스는 한 번이었지만 그 한 번의 진실한 키스와 눈빛은 트루먼의 삶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습니다. 그 한 번의 진정한 키스가 세상과 싸움을 일으켰기 때문에 참 효과를 발휘하게 된 것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싸우게 하지 않는 기도는 구원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기도하고 나면 주님께서는 당신의 키스로 우리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용기와 믿음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믿기만 하면 결국엔 해내고 맙니다.

 

    기도하면 이 마음까지 도달해야 합니다. 배를 타고 두려움의 바다를 건널 자신감, 물 위를 걸을 자신감을 가질 때까지 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죄의 유혹 두려움을 이기고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겨 하느님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기에 평화로운 마음이 생길 때까지 해야 합니다.

 

    이길 자신이 있으면 싸움을 앞두고도 평화롭습니다. 그러기 위해 불안한 나 자신을 바치고 내가 그분이 되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이것이 기도입니다.

https://youtu.be/qzg9DdbG2hM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 하느님을 믿어라. (마르코 11,11-25) - 연중 제8주간 금요일 (2021.5.28)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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