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은 2018년에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월요일을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로 제정하였다. ‘교회의 어머니’라는 호칭은 교부 시대부터 쓰였는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헌장」에서 마리아에게 ‘교회의 어머니’라는 호칭을 부여하였다. 마리아는 성령 강림 이후 어머니로서 교회를 돌보았고, 여기서 마리아의 영적 모성이 드러난다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강조하였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2006년 춘계 정기 총회에서 해마다 ‘청소년 주일’(5월 마지막 주일)을 포함하여 그 전 주간을 ‘교육 주간’으로 정하였다. 가톨릭 교육에 대한 의식을 높이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마련하는 기회로 삼고자 한 것이다. 교회의 사명을 수행하는 데 무엇보다도 교육이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교회는 이 주간에 가톨릭 정신에 따른 다양한 교육과 행사로 많은 그리스도인이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도록 돕는다.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25-34
그때에 25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26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27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28 그 뒤에 이미 모든 일이 다 이루어졌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시려고 “목마르다.” 하고 말씀하셨다.
29 거기에는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듬뿍 적신 해면을 우슬초 가지에 꽂아
예수님의 입에 갖다 대었다.
30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
31 그날은 준비일이었고 이튿날 안식일은 큰 축일이었으므로,
유다인들은 안식일에 시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지 않게 하려고,
십자가에 못 박힌 이들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시신을 치우게 하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하였다.
32 그리하여 군사들이 가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33 예수님께 가서는 이미 숨지신 것을 보고
다리를 부러뜨리는 대신,
34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날인 오늘을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로 제정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십자가에 매달리신 인류의 구세주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에게 당신 어머니를 내어 주시어 사도들의 어머니가 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성모님께서는 우리의 어머니시자 교회의 어머니가 되십니다.
우리의 어머니 성모님께서는 언제나 성령으로 충만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성령의 뜻 안에서 모든 것을 마음속 깊이 새겨 오래 간직하시고(루카 2,19 참조), 주님의 마지막 십자가 길까지 함께 걸으셨으며, 위층 방에서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셨습니다(사도 1,14 참조). 그렇게 성모님께서는 “이 지상의 삶에서 그리스도 제자의 완전한 모습을 보여 주시고 모든 덕행의 거울이 되셨습니다”(『성무일도』 독서 기도, 성 바오로 6세의 훈화).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고 계시며, 서로 갈라져 있는 사람들을 화해와 용서로, 증오와 분열을 넘어 사랑과 일치로 초대하십니다.
아이는 어머니와 같은 울타리가 필요합니다. 아이와 같은 우리도 신앙을 지키려면 우리를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온전히 맡기고 그분께 전구를 청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는 튼튼한 보루가 있는 성안에 있는 것과 같이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과 신앙에 필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늘 주님께 이끄시는 교회의 어머니의 기도와 전구입니다. 얼마 남지 않은 아름다운 오월 성모 성월에 성모님께 드리는 묵주 기도는 자녀들이 바치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신우식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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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아버지만으로 안 되는가?>
오늘은 ‘교회의 어머니’(Mater Ecclesiae)라 불리는 성모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개신교에서는 성모님을 공경하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경계를 합니다. 하지만 오늘 독서에서 하와는 아담을 통해 창조하게 될 ‘모든 살아 있는 것’(교회)의 어머니가 될 것을 예언하고, 복음에서 예수님은 성모님을 요한(교회의 모델)의 어머니라 하시며 그의 집에 머물게 하셨습니다.
성모님께서 교회의 어머니가 되심을 믿으려 하기 이전에 먼저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아버지가 되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실 때 가끔은 ‘아이들’이라고 하셨습니다. 특별히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고(요한 13,33 참조), 그리고 부활하셔서 고기 잡는 제자들을 보시고(요한 21,5) 아버지가 자녀를 부르는 방식으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분명 교회는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나온 피와 물로 탄생한 그리스도의 자녀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탄생시키실 때 탄생한 교회(요한)에 성모 마리아를 어머니로 주셨기 때문에 당신은 아버지가 되십니다. 아버지이기에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를 ‘여인이시여!’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이제는 왜 교회가 자녀로서 아버지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어머니가 필요한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각각 어떤 역할을 할까요? 아버지는 더 넓은 세상에서 살 수 있다는 자존감을 불어넣는 대상입니다.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면 자녀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보지 못하고 자라면 사회생활이 어렵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에서 사시며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고 계심을 믿지 못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서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지니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이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살게 될 저세상에서 우리에게 은총을 보내주고 계신 것입니다.
어머니는 다른 세상에서 오는 아버지의 사랑을 자녀들에게 번역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만약 어머니가 없다면 자녀에게 아버지는 너무 먼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만을 사랑하는 아버지로 여기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주시려는 온전한 자존감을 획득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내가 하느님 나라에 살 충분한 자격이 있음을 믿어야 하늘 나라에서 살게 됩니다. 그 자존감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완전히 사랑하신다는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그런데 성모 마리아가 아니면 그 사랑을 우리에게 온전히 번역해 줄 어머니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A.I’(2001)란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 내용은 피노키오를 모티브로 만들어졌습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영화 속 ‘데이빗’은 사람이 아닌 로봇입니다. ‘하비’ 박사는 죽은 자기 아들의 모습을 닮은 감정을 지닌 인공지능 로봇, 데이빗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감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려고 아픈 아이를 냉동상태로 보관하고 있는 한 가정에 입양시킵니다. ‘모니카’는 데이빗에게 피노키오 동화를 읽어줍니다. 데이빗은 그 동화를 듣고는 자신도 ‘푸른 요정’을 만나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병원에서 냉동상태로 있던 모니카의 아들 ‘마틴’이 치료되어 돌아옵니다. 그러자 모니카는 데이빗이 마틴처럼 자신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는 것을 눈치채고 데이빗을 산에 버립니다. 회사로 돌려주었다가는 데이빗이 분해되기 때문입니다. 데이빗은 왜 엄마가 자신을 버리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엄마에게 푸른 요정을 만나 꼭 인간이 되어 돌아오겠다고 말합니다. 모니카는 인공지능 로봇이 자기 아들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안타깝지만 진짜 아들인 마틴을 위해 데이빗을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데이빗은 인간 사회를 방황하지만, 그곳에서 적응하지 못합니다. 로봇은 로봇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인공지능 로봇을 파괴하는 것을 즐기며 살아갑니다. 간신히 ‘조’라는 다른 인공지능 로봇의 도움으로 자신을 만든 아버지 하비 박사를 만나게 됩니다. 하비 박사는 데이빗을 친절히 맞아주지만, 그는 자신과 똑같은 로봇이 이미 수십 개, 수백 개 만들어지고 있고 여자아이도 만들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아버지 하비 박사를 통해서는 자신이 특별한 존재임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탈출하여 물속으로 들어갑니다. 거기에서 푸른 요정을 만납니다. 비록 동상이기는 했지만, 그 요정에게 자신을 인간으로 만들어달라고 청합니다. 그렇게 2천 년이 지납니다. 지구는 멸망하여 더는 인간이 살지 않습니다. 외계인들은 데이빗의 기억을 통해 그가 인간이 되고 싶었던 로봇이었음을 알게 되고 그의 기억 속에 모니카의 자녀가 되어 행복한 하루를 즐기는 기억을 심어줍니다. 데이빗은 그 기억 속에서 영원히 잠이 듭니다.
왜 아버지만으로 안 될까요? 아버지는 다른 엄마를 통해 얼마든지 자녀를 낳을 수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에게 특별해질 수 있는 것은 아버지가 혼인한 어머니를 통해서입니다. 아버지에게 가야 아버지가 사는 세상에서 살 수 있는 것은 맞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나에게 그런 존재임을 증명해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의 그런 특별한 존재임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은 나를 낳아준 어머니인 것입니다.
따라서 어머니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버지에게 갈 수 없고 아버지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버지가 사는 세상으로 갈 수 없습니다. 데이빗이 아버지 하비 박사를 만났지만, 여전히 자신의 특별함을 느끼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데이빗은 아버지에게 자신이 특별하기는 하지만 온전히 인간이 되었다고 느끼지 못했습니다. 온전히 인간이 되었다고 느끼지 못하면 데이빗은 인간 세상 안에서는 살 자격을 갖추지 못하게 됩니다.
어떤 남자가 이혼하면서 두 자녀를 자신이 키우겠다고 했습니다. 법정 공방을 하면서 결국 그 두 자녀를 키우게 되었고 이혼한 아내는 재혼하였습니다. 그러나 혼자 두 아이를 키우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법정 공방을 하면서까지 아이를 키우겠다고 했지만 결국 아이를 보육원과 비슷한 시설에 맡기고 가끔만 찾아볼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어머니는 다시 아이를 키우겠다고 했고 결국은 남편도 아이들을 위해 새로운 가정을 꾸린 어머니에게 보내야 했습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는 어머니 없는 자녀를 상상할 수 없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 사랑을 번역해주는 통역자입니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해독할 능력이 없습니다. 따라서 교회를 낳아주신 아버지이신 그리스도께서 성모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로 주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게 되어 우리가 참으로 그분의 특별한 존재임을 자각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성모 어머니를 버린다면 교회라 할 수 없습니다. 성모 마리아를 버린다면 그리스도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자녀로서의 정체성이 흐려지게 됩니다. 아버지에게서 오는 양식과 용서까지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개신교는 성모 마리아를 어머니로 인정하지 않음과 동시에 성체성사나 고해성사와 같은 것까지도 인정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받을 자격이 있는 특별한 존재임을 어머니를 인정하지 않으며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어떠한 자녀도 어머니 없이는 아버지 사랑을 받아들여 아버지의 특별한 자녀임을 온전히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하느님께서 당신 모든 것을 내어 맡기시어 주님의 어머니가 되신 성모 마리아는 우리 교회 안에 계시며 우리는 그분을 통해 무엇이든 받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성모님 덕분으로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칠성사를 하나도 잃지 않고 교회에서 베풀어지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모님을 어머니로 모시지 않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특별한 자녀임을 믿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세상에 살기 위한 자격을 갖추기가 극도로 어렵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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