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202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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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샘

[묵상]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2020.9.10.)

by honephil 2020. 9. 10.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27-3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7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29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 두어라.
30 달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이에게서 되찾으려고 하지 마라.
31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32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한다.
33 너희가 자기에게 잘해 주는 이들에게만 잘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그것은 한다.
34 너희가 도로 받을 가망이 있는 이들에게만 꾸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요량으로 서로 꾸어 준다.
35 그러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에게 잘해 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이다.
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37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38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어렵다고, 그래서 예수님 말씀을 실천하려면 상당한 노력과 깊은 신앙심이 있어야 한다고들 말하겠지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원수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우리는 복음 말씀의 실천이 어렵다고 합니다.

성급히 단정 지어 말하자면, 원수는 바로 우리 자신이 아닐까 합니다. 다른 이가 내뱉는 몇 마디로 원수라 규정하고, 이웃의 불편한 행동 몇 가지로 ‘웬수’를 만들어 버리는 우리의 옹졸함이 상상의 원수를 매일같이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의 막바지에서 원수를 사랑하는 이유를 이렇게 정리하십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원수를 사랑하겠다는 결기는, 우리가 때로는 타인을 너무나 차갑게 심판한다는 것을 전제하는데, 이를 기억해야 합니다. 서로 뜻이 다른 것을 두고 ‘틀렸다’ 말하고, 비판이라는 미명 아래 비난을 일삼고서, 그럼에도 나는 용서하고 사랑한다고 낯 뜨거운 언행을 밥 먹듯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우리가 원수마저 사랑하는 것은, 우리 존재의 목적과 이유를 위한 것이지 타인의 잘잘못을 심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 아버지처럼 자비롭게 되는 것, 나의 용서로 나의 삶이 사랑으로 풍요로워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사랑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에게 애당초 원수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겠지요. 원수는 내 마음이 만든 우상입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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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원수를 만드는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는 모순이 있습니다. 이미 원수가 되었다면 미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이미 사랑한다면 원수가 아니란 소립니다. 다시 말해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원수가 생기지 않게 하라는 명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혹은 누군가와 원수가 되었다면 용서하고 사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원수가 된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기란 무척 힘이 듭니다. 원수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어떻게 하면 원수가 생기지 않게 할 수 있을까요? 나와 원수가 되는 사람들은 90% 이상 나와 알았던 지인들입니다.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고 성당 교우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 나에게 원수가 될까요? 내가 믿어주었기 때문입니다. 믿었기 때문에 배신당한 것입니다. 믿어서 돈도 꾸어주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애썼지만, 상대는 나를 이용한 것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나에게 잘못을 한다면 대부분 큰 것이 못 됩니다. 애당초 믿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믿으면 원수가 생겨납니다. 사람을 믿는 것은 잘하는 일이 아닙니다. 나도 어디로 튈 줄 모르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사람을 왜 믿을까요? 나를 믿기 때문입니다. 나를 믿으니 다른 사람도 믿을 수 있겠다 싶은 것입니다. 그러면 왜 나를 믿게 되었을까요? 나의 욕심 때문입니다. 내가 욕심이 많아지면 그 욕심을 채우려 나를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욕심이 나게 하는 것이 나이기에 그 욕심을 선택했다면 나를 믿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미국으로 건너가 바닥부터 시작하여 수천억 대의 자산가가 된 김승호 회장도 처음엔 사기를 많이 당했습니다. 그는 부모를 모시고 아이들도 키워가며 하루 열여섯 시간씩 일하며 아메리칸드림을 이루려고 했습니다. 3달러짜리 청바지에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트럭으로 아침마다 마켓에서 팔 과일을 사러 다녔습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넥타이를 맬 날이 올 줄 알았습니다. 그것을 희망했습니다.

 

      그러던 중 당시 삼보컴퓨터의 최대주주였던 e머신즈는 저가 PC 판매로 미국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킨 회사로 한국 기업 사상 두 번째로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돼 관심을 모았습니다. e머신즈 대표는 김승호 씨에게 만 달러어치 주식을 살 수 있는 특권을 주었습니다. 별다른 인연이 없는 자신에게 그런 특권을 주는 사람을 의심할 눈이 그때는 없었습니다. 당시 그에게 큰돈이었음에도 그는 주식을 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장은 폐지되고 주식은 휴짓조각이 되었습니다.      거기서 끝내야 했지만, 욕심과 무지가 그를 또 눈이 멀게 했습니다. e머신즈 대표는 이번에 실시간 주식차트 거래가 미국에서 막 인기를 얻고 있으니 이런 거래회사를 만들어 수수료를 벌자고 제안했습니다. 솔깃한 아이디어에 휴지가 된 주식을 소개한 죄도 묻지 못하고, 채소 도매상이 아닌 사무실로 출근한다는 생각에 또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증명된 이익이 아무것도 없는데 증권거래 사무실을 열어버린 것입니다. 한 달 만에 모든 손님이 떠나버렸습니다.

 

      이렇게 사무실에 홀로 남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은 ‘이왕 이렇게 된 거 한 방에 크게 벌자’며 주식 옵션거래를 제안했습니다. 옵션거래의 완벽한 이해가 없던 그는 또 자신 있어 하는 그 사람의 말을 따랐고 결국 모든 자산을 날렸습니다.

좌절과 실망에 주저앉은 그에게 ‘외환 거래는 불과 몇백 달러로도 투자할 수 있다’며 재기를 부추겼습니다. 이미 바닥까지 가버린 그로서는 저항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이민 생활 10년의 노력이 한순간에 다 날아가고 빚까지 얻고 끝을 맺었습니다. 한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속아 다 털리고 만 것입니다. 처음엔 e머신즈 대표도 이 일로 딱히 이익을 보지 못했기에 그가 선한 의도로 그랬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를 어설프게 믿어서 가족까지 다 길거리로 내몰리게 했음을 인정하기 싫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몇 년 동안의 공부 끝에 e머신즈 대표가 자신을 이용해 경험을 쌓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속은 것입니다. 속았던 이유는 믿었기 때문이고, 믿은 이유는 자신의 무지함과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믿기까지 해 버리니 사기를 당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을 믿는다는 말은 좋은 말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도 믿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무지와 욕심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고 다른 사람도 그렇게 무지하고 욕심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하지만 그 욕심에 눈이 먼 사람이라면 자신도 믿고 이웃도 믿어서 사기당하기에 십상입니다.

 

      욕심을 버리고 자신도 믿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자비’를 연습하는 것입니다. 원수는 나의 욕심 때문에 만들어지니, 그 욕심을 버리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 두어라. 달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이에게서 되찾으려고 하지 마라”라고 하시는 것은 속으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욕심을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또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라고 하시는 말도 속으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나의 부족함을 알면 다른 사람들도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자비로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비’는 바로 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자신을 믿는 사람들은 남을 용서하지 못합니다. 인간의 나약함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반면 욕심은 자신을 믿게 하고 이웃을 믿게 만듭니다. 다시 돌려받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엄청난 투자를 하고 손실을 봅니다. 그렇게 원수가 생깁니다. 오히려 자비로운 사람들은 나의 부족함을 알기에 이웃도 부족할 것을 압니다. 그래서 돈을 꾸어줄 때 되받을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꼭 갚겠다고 해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되받지 않아도 될 양만큼만 꾸어주게 되어 큰 손해를 보지 않게 됩니다.

 

      내가 부족함을 알아야 다른 사람들도 부족할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자비는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면 원수가 생기지 않습니다. 자비로운 사람은 원수를 만들지 않습니다. 그러니 원수가 생기기 전부터 자비를 실천하는 사람은 이미 원수까지 사랑하는 사람이 됩니다.

https://youtu.be/suoBMmQ-LPc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2020.9.10.)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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