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6.16-1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2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3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4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5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6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16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17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18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이러한 일이 가능할까요? 어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를 수가 있을까요? 도벽이 있는 사람은 물건을 훔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자기도 모르는 새에’ 다른 사람의 것을 가져가 버리기 마련입니다. 어떤 행동이 반복되다 보면, 그것이 습관으로 이어져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도 그 행동을 하게 되니,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는 좋은 행동을 하는 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날마다 미사에 참례하러 성당 가는 길에 묵주 기도를 바치는 사람은 집 대문을 나서면서 자연스럽게 묵주를 꺼내 듭니다. 주변을 깨끗이 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은 설거지할 그릇이 눈에 보이면 고무장갑에 손이 갑니다. 이외에도 어려운 이를 보면 도와주는 일, 슬픔에 잠겨 있는 이에게 위로를 건네는 일, 외로운 이들에게 찾아가는 일 등 오랫동안 몸에 배어서 왼손도 모르게 하는 오른손의 일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런데 왼손도 모르게 오른손이 베푸는 자선이 존재한다면, 그러한 자선을 베푸는 이들을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실제 우리 사회에는 남모르게 자선을 베푸는 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코로나19 사태에 대구 어느 시장의 청년 상인들은 의료진에게 200인분의 도시락과 커피를 전달했다고 합니다. 어느 도시에서는 소외 계층이 따뜻하게 겨울을 날 수 있도록 9년째 선행을 이어 오는 익명의 기부 천사가 있다고 합니다. 산골짜기 은둔 장소에서 세상에서 가장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위하여 날마다 기도하는 봉쇄 수도자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예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처럼, 누군가를 위하여 사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살려고 다짐하고 몸에 배도록 노력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할 수 있습니다.
한재호 루카 신부
~~~~~~~~~~~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부산에서 서울로 상경한 소설 작가 지망생이자 사회 초년생 주인공이 월세가 싼 어느 허름한 고시원에 들어오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그 고시원에서는 계속 살인사건이 벌어졌고 직장에서도 아무도 자신에게 신경을 써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애인에게 이런 사실을 말했지만, 너무 예민하다며 그의 말을 믿어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 이상한 일을 고시원의 한 친구에게 털어놓습니다. 그 친구만이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믿어주고 공감해줍니다. 그런데 사실 그 친구가 이 모든 살인사건의 주범이었습니다. 모든 이들이 타인처럼 느껴지는 이 공간에서 그도 어쩔 수 없이 그런 삶에 익숙해져 갑니다. 그래야 혼자만 타인으로 머물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도 살인을 저지르는 데 쾌감을 느끼는 괴물이 됨으로써 비로소 그 사회에 속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부부는 정말 일심동체인가요, 아니면 가끔 타인처럼 느껴질 때가 있나요? 제가 아는 어떤 분은 몇 년 전부터 우울증 약을 먹고 상담을 받습니다. 저녁에 피곤해서 들어오면 그냥 의미 없이 TV를 돌려보다가 창문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합니다. 약을 먹어도 크게 호전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아내와의 관계 때문입니다. 집에 둘이 있어도 자신을 투명인간 취급을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과 있을 땐 아이들에게 신경을 쓰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둘이 있어도 자신에게 짜증만 낼뿐 다정한 미소를 짓는 적은 없다고 말합니다. 정말 타인과 함께 지내는 것은 지옥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내를 타인처럼 대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타인이 지옥이라면, 친구와 머물 땐 천국이 됩니다. 누가 타인이고 누가 친구일까요? 타인은 나와 함께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신경을 쓰는 사람입니다. 친구는 나와 함께 있을 때는 나에게만 신경 써 주는 사람입니다.
유럽에서는 남녀가 길거리에서 애정 행위를 거리낌 없이 합니다. 마치 세상에 둘만 존재하는 것 같게 행동합니다. 이런 상태라면 둘은 천국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를 아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둘의 그런 모습에서 소외를 느끼고 그러면 지옥을 체험하게 됩니다. 사람은 자신의 제한된 에너지를 몇몇 사람에 쏟아버릴 때 주위의 다른 사람들을 소외시켜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관계에서 우리는 천국도 느끼고 지옥도 느낍니다. 타인을 좋아하여 지옥을 체험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타인으로 만들어 남도 지옥에 살게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고 타인으로 만들지 않는 방법이 있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 관계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서는 안 됩니다. 우선 세상 모든 사람으로부터 소외되고 세상 모든 사람이 타인이 된다고 해도 상관없는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관계를 맺어줄 능력이 있으신 분은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밖에 없습니다. 먼저 하느님과 좋은 관계가 유지되는 가운데 세상으로 관계를 넓혀가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신경 쓰다가 하느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그 사람은 자신의 모든 행복을 사람들에게 걸어야 해서 자신을 타인 취급하는 이웃들에게서 큰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 이와 관련된 아주 좋은 예화가 나옵니다. 행복은, 마치 숟가락에 기름 한 방울을 떨어뜨려 그것이 흘리지 않고 들고 다니며 미술관에서 작품들을 감상하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숟가락 위의 기름은 하느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에 집중하며 에너지가 남는 만큼 이웃과의 관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먼저 이웃과의 관계에 집중하면 숟가락 위의 기름이 쏟아지고 그러면 내가 하느님을 소외시키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행복을 잃었기에 결국 자신을 타인 취급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애정을 구걸하러 다녀야 합니다. 그러나 그도 그 외로움 때문에 모든 사람을 소외시키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세상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선행도 이웃이 아닌 하느님께 잘 보이기 위해서 하고,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식할 때도 세상 사람들이 모르게 하라고 하십니다.
이웃에게 먼저 신경 쓰면 숟가락의 기름이 흐르는 것도 모릅니다. 숟가락에 기름이 흐르게 한다는 것은 내가 하느님을 타인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누구도 자신을 친구로 여겨주지 않는 세상에서 영원한 타인으로 지옥의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라디오를 들을 때 두 주파수를 동시에 들을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을 타인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우선은 세상을 타인으로 만드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이 먼저 친구가 되면 그 기쁨과 계명으로 어떤 누구도 타인으로 만들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우선은 주님과의 관계를 위해 세상 사람들을 향한 신경을 끊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림을 보는 것보다 숟가락 위의 기름이 더 중요합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영성의 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묵상]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 (사제 성화의 날) / (2020.6.19.) (0) | 2020.06.19 |
---|---|
[묵상]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2020.6.18.) (0) | 2020.06.18 |
[묵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2020.6.16.) (0) | 2020.06.16 |
[묵상]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2020.6.15.) (0) | 2020.06.15 |
[묵상]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2020.6.14.) (0) | 2020.06.1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