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나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마태 10,34─11,1) - 연중 제15주간 월요일 (2026.7.13.)
<나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34─11,1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34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35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36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38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39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40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41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4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11,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다 지시하시고 나서,
유다인들의 여러 고을에서 가르치시고 복음을 선포하시려고
그곳에서 떠나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오늘은 마태오 복음서 10장의 이른바 '제자 훈련'이 마무리되는 대목입니다. 앞선 내용이 파견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오늘 복음은 그보다 본질적인 스승과 이루는 '관계성'을 다룹니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꽤나 충격적인 말씀을 건네십니다.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마태 10,35)
이는 집안 식구들과 정말로 갈라서게 하겠다는 뜨시 아닙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구속하며 상대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는 '어긋난 애착'의 오류를 범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참된 사랑은 상대를 내 곁에 묶어 두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향한 하느님의 계획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왜곡된 사랑의 중심에는 언제나 '내'가 있습니다. 상대를 위하는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내가 상처받지 않으려고 또는 나의 안전과 생존을 위하여 이기적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첫자리에 둘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그 왜곡된 사랑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당신의 십자가 죽음으로 보여 주신 무조건적 사랑(아가페)입니다. 자기를 비우고 제 목숨까지 기꺼이 내놓는 그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바라보고 그분의 사랑을 직접 체험하지 않고서는 결코 가닿을 수 없는 경지입니다.
따라서 복음을 선포하는 제자들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는 일입니다. 그 사랑 안에 머무르지 않는다면 우리의 용기는 무모한 객기가 될 것이고, 우리의 열정은 잠깐 타오르다 이내 꺼져 버리는 불꽃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복음 선포가 쉼 없이 울림을 주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사랑의 첫자리에 두어야 합니다.
매일미사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마태 10,39
Whoever loses his life for my sake will find it. Mt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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