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 (요한) - 주님 수난 성금요일 (2026.4.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
○ 해설자 + 예수님 ● 다른 한 사람 ▣ 다른 몇몇 사람 ◎ 군중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키드론 골짜기 건너편으로 가셨다.
거기에 정원이 하나 있었는데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들어가셨다.
2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여러 번 거기에 모이셨기 때문에,
그분을 팔아넘길 유다도 그곳을 알고 있었다.
3 그래서 유다는 군대와 함께,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보낸
성전 경비병들을 데리고 그리로 갔다.
그들은 등불과 횃불과 무기를 들고 있었다.
4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닥쳐오는 모든 일을 아시고
앞으로 나서시며 그들에게 물으셨다.
+ “누구를 찾느냐?”
5 ○ 그들이 대답하였다.
▣ “나자렛 사람 예수요.”
○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 “나다.”
○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서 있었다.
6 예수님께서 “나다.” 하실 때, 그들은 뒷걸음치다가 땅에 넘어졌다.
7 예수님께서 다시 물으셨다.
+ “누구를 찾느냐?”
○ 그들이 대답하였다.
▣ “나자렛 사람 예수요.”
8 ○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 “‘나다.’ 하지 않았느냐?
너희가 나를 찾는다면 이 사람들은 가게 내버려두어라.”
9 ○ 이는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사람들 가운데 하나도 잃지 않았습니다.” 하고
당신께서 전에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이었다.
10 그때에 시몬 베드로가 가지고 있던 칼을 뽑아,
대사제의 종을 내리쳐 오른쪽 귀를 잘라 버렸다. 그 종의 이름은 말코스였다.
11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르셨다.
+ “그 칼을 칼집에 꽂아라.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이 잔을 내가 마셔야 하지 않겠느냐?”
12 ○ 군대와 그 대장과 유다인들의 성전 경비병들은 예수님을 붙잡아 결박하고,
13 먼저 한나스에게 데려갔다. 한나스는 그해의 대사제 카야파의 장인이었다.
14 카야파는 백성을 위하여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낫다고 유다인들에게 충고한 자다.
15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하나가 예수님을 따라갔다.
그 제자는 대사제와 아는 사이여서,
예수님과 함께 대사제의 저택 안뜰에 들어갔다.
16 베드로는 대문 밖에 서 있었는데,
대사제와 아는 사이인 그 다른 제자가 나와서 문지기 하녀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갔다. 17 그때에 그 문지기 하녀가 물었다.
● “당신도 저 사람의 제자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요?”
○ 그러자 베드로가 말하였다.
● “나는 아니오.”
18 ○ 날이 추워 종들과 성전 경비병들이 숯불을 피워 놓고 서서 불을 쬐고 있었는데,
베드로도 그들과 함께 서서 불을 쬐었다.
19 대사제는 예수님께 그분의 제자들과 가르침에 관하여 물었다.
20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 “나는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였다.
나는 언제나 모든 유다인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가르쳤다.
은밀히 이야기한 것은 하나도 없다.
21 그런데 왜 나에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이들에게 물어보아라. 내가 말한 것을 그들이 알고 있다.”
22 ○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곁에 서 있던 성전 경비병 하나가 예수님의 뺨을 치며 말하였다.
● “대사제께 그따위로 대답하느냐?”
23 ○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 “내가 잘못 이야기하였다면 그 잘못의 증거를 대 보아라.
그러나 내가 옳게 이야기하였다면 왜 나를 치느냐?”
24 ○ 한나스는 예수님을 결박한 채로 카야파 대사제에게 보냈다.
25 시몬 베드로는 서서 불을 쬐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다.
▣ “당신도 저 사람의 제자 가운데 하나가 아니오?”
○ 베드로는 부인하였다.
● “나는 아니오.”
26 ○ 대사제의 종 가운데 하나로서, 베드로가 귀를 잘라 버린 자의 친척이 말하였다.
● “당신이 정원에서 저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않았소?”
27 ○ 베드로가 다시 아니라고 부인하자 곧 닭이 울었다.
28 사람들이 예수님을 카야파의 저택에서 총독 관저로 끌고 갔다.
때는 이른 아침이었다.
그들은 몸이 더러워져서 파스카 음식을 먹지 못할까 두려워,
총독 관저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29 그래서 빌라도가 그들이 있는 곳으로 나와 물었다.
● “무슨 일로 저 사람을 고소하는 것이오?”
30 ○ 그들이 빌라도에게 대답하였다.
▣ “저자가 범죄자가 아니라면 우리가 총독께 넘기지 않았을 것이오.”
31 ○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 “여러분이 데리고 가서 여러분의 법대로 재판하시오.”
○ 그러자 유다인들이 말하였다.
▣ “우리는 누구를 죽일 권한이 없소.”
32 ○ 이는 예수님께서 당신이 어떻게 죽임을 당할 것인지 가리키며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33 그리하여 빌라도가 다시 총독 관저 안으로 들어가 예수님을 불러 물었다.
●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34 ○ 예수님께서 되물으셨다.
+ “그것은 네 생각으로 하는 말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관하여 너에게 말해 준 것이냐?”
○ 빌라도가 다시 물었다.
35 ● “나야 유다인이 아니잖소? 당신의 동족과 수석 사제들이
당신을 나에게 넘긴 것이오. 당신은 무슨 일을 저질렀소?”
36 ○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다면,
내 신하들이 싸워 내가 유다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37 ○ 빌라도가 물었다.
● “아무튼 당신이 임금이라는 말 아니오?”
○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
38 ○ 빌라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 “진리가 무엇이오?”
○ 빌라도는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다인들이 있는 곳으로 나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 “나는 저 사람에게서 아무런 죄목도 찾지 못하겠소.
39 그런데 여러분에게는 내가 파스카 축제 때에
죄수 하나를 풀어 주는 관습이 있소.
내가 유다인들의 임금을 풀어 주기를 원하오?”
40 ○ 그러자 유다인들이 다시 외쳤다.
◎ “그 사람이 아니라 바라빠를 풀어 주시오.”
○ 바라빠는 강도였다.
19,1 그리하여 빌라도는 예수님을 데려다가 군사들에게 채찍질을 하게 하였다.
2 군사들은 또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예수님 머리에 씌우고
자주색 옷을 입히고 나서, 3 그분께 다가가 이렇게 말하며 그분의 뺨을 쳐 댔다.
▣ “유다인들의 임금님, 만세!”
4 ○ 빌라도가 다시 나와 말하였다.
● “보시오, 내가 저 사람을 여러분 앞으로 데리고 나오겠소.
내가 저 사람에게서 아무런 죄목도 찾지 못하였다는 것을
여러분도 알라는 것이오.”
5 ○ 이윽고 예수님께서 가시나무 관을 쓰시고 자주색 옷을 입으신 채
밖으로 나오셨다. 그러자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 “자, 이 사람이오.”
6 ○ 그때에 수석 사제들과 성전 경비병들은 예수님을 보고 외쳤다.
▣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 빌라도가 말하였다.
● “여러분이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나는 이 사람에게서 죄목을 찾지 못하겠소.”
7 ○ 그러자 유다인들이 빌라도에게 대답하였다.
◎ “우리에게는 율법이 있소. 이 율법에 따르면 그자는 죽어 마땅하오.
자기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자처하였기 때문이오.”
8 ○ 빌라도는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9 그리하여 다시 총독 관저로 들어가 예수님께 물었다.
● “당신은 어디서 왔소?”
○ 예수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10 그러자 빌라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 “나에게 말을 하지 않을 작정이오? 나는 당신을 풀어 줄 권한도 있고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다는 것을 모르시오?”
11 ○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 “네가 위로부터 받지 않았으면 나에 대해 아무런 권한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를 너에게 넘긴 자의 죄가 더 크다.”
12 ○ 그때부터 빌라도는 예수님을 풀어 줄 방도를 찾았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외쳤다.
◎ “그 사람을 풀어 주면 총독께서는 황제의 친구가 아니오.
누구든지 자기가 임금이라고 자처하는 자는 황제에게 대항하는 것이오.”
13 ○ 빌라도는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리토스트로토스라고 하는 곳에 있는 재판석에 앉았다.
리토스트로토스는 히브리 말로 가빠타라고 한다.
14 그날은 파스카 축제 준비일이었고 때는 낮 열두 시쯤이었다.
빌라도가 유다인들에게 말하였다.
● “보시오, 여러분의 임금이오.”
15 ○ 그러자 유다인들이 외쳤다.
◎ “없애 버리시오. 없애 버리시오.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 빌라도가 그들에게 물었다.
● “여러분의 임금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말이오?”
○ 수석 사제들이 대답하였다.
▣ “우리 임금은 황제뿐이오.”
16 ○ 그리하여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그들에게 넘겨주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넘겨받았다.
17 예수님께서는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 터’라는 곳으로 나가셨다.
그곳은 히브리 말로 골고타라고 한다.
18 거기에서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리고 다른 두 사람도 예수님을 가운데로 하여 이쪽저쪽에 하나씩 못 박았다.
19 빌라도는 명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달게 하였는데,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라고 쓰여 있었다.
20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 도성에서 가까웠기 때문에,
많은 유다인이 그 명패를 읽게 되었다.
그것은 히브리 말, 라틴 말, 그리스 말로 쓰여 있었다.
21 그래서 유다인들의 수석 사제들이 빌라도에게 말하였다.
▣ “‘유다인들의 임금’이라고 쓸 것이 아니라,
‘나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 하고 저자가 말하였다고 쓰시오.”
22 ○ 빌라도가 대답하였다.
● “내가 한번 썼으면 그만이오.”
23 ○ 군사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나서,
그분의 옷을 가져다가 네 몫으로 나누어 저마다 한몫씩 차지하였다.
속옷도 가져갔는데 그것은 솔기가 없이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었다.
24 그래서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 “이것은 찢지 말고 누구 차지가 될지 제비를 뽑자.”
○ “그들이 제 옷을 저희끼리 나누어 가지고 제 속옷을 놓고서는
제비를 뽑았습니다.” 하신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그래서 군사들이 그렇게 하였다.
25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26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27 ○ 이어서 그 제자에게 말씀하셨다.
+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28 그 뒤에 이미 모든 일이 다 이루어졌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시려고 말씀하셨다.
+ “목마르다.”
29 ○ 거기에는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듬뿍 적신 해면을 우슬초 가지에 꽂아
예수님의 입에 갖다 대었다.
30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 “다 이루어졌다.”
○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
<무릎을 꿇고 잠깐 묵상한다.>
31 ○ 그날은 준비일이었고 이튿날 안식일은 큰 축일이었으므로,
유다인들은 안식일에 시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지 않게 하려고,
십자가에 못 박힌 이들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시신을 치우게 하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하였다.
32 그리하여 군사들이 가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33 예수님께 가서는 이미 숨지신 것을 보고 다리를 부러뜨리는 대신,
34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35 이는 직접 본 사람이 증언하는 것이므로 그의 증언은 참되다.
그리고 그는 여러분이 믿도록 자기가 진실을 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36 “그의 뼈가 하나도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 하신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37 또 다른 성경 구절은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이를 바라볼 것이다.” 하고 말한다.
38 그 뒤에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거두게 해 달라고
빌라도에게 청하였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유다인들이 두려워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빌라도가 허락하자 그가 가서 그분의 시신을 거두었다.
39 언젠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코데모도
몰약과 침향을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왔다.
40 그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모셔다가 유다인들의 장례 관습에 따라,
향료와 함께 아마포로 감쌌다.
41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정원이 있었는데,
그 정원에는 아직 아무도 묻힌 적이 없는 새 무덤이 있었다.
42 그날은 유다인들의 준비일이었고 또 무덤이 가까이 있었으므로,
그들은 예수님을 그곳에 모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 십자가는 또 다른 세족례 >
오늘 우리는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어졌다." (요한 19,30)라고 말씀하시며 숨을 거두신 그 현장에 서 있습니다. 성금요일의 십자가는 단순히 한 의로운 인간의 비극적인 처형장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아들만이 하실 수 있는 거대한 '낳음'의 현장이자, 인류의 찌든 자아를 씻어내는 '두 번째 세족례'의 현장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유다인들도 자신들이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하느님의 아들과 예수님이 보여주신 하느님의 아들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진정한 하느님의 아들은 '죄를 없애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죄란 무엇일까요?
창세기에서 뱀은 배로 땅을 기어 다니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이는 인간이 오직 자기 자신, 즉 '자아'만을 위하며 땅의 것(욕망과 두려움)에만 집착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느님께는 그런 마음이 없으십니다. 하느님은 오직 사랑만을 위해 존재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성 목요일에 베드로의 발을 씻어주신 것과 오늘 십자가 위에서 옆구리를 열어 피와 물을 쏟으신 것은 본질적으로 같은 행위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피와 물로, 땅에 붙어 자아라는 감옥에 갇힌 우리의 '발'을 씻겨 하늘로 들어 올리시는 '피의 세족례'를 거행하신 것입니다.
1942년 8월 5일,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에서 일어난 야누슈 코르차크(Janusz Korczak) 박사와 192명 아이들의 마지막 행진은 이 피의 권능을 명백히 증명합니다. 나치가 고아원 아이들을 트레블린카 가스실로 끌고 가려할 때, 아이들은 처음엔 극심한 공포라는 '죄'에 짓눌려 있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아이들은 구석에 몰려 바들바들 떨며 비명을 질렀고, 박사의 옷자락을 붙들고 "살려주세요, 무서워요!"라며 울부짖었습니다. 오직 자기 생명을 지키려는 본능(뱀의 발)에 묶여 아수라장이 된 상태였지요.
그때 코르차크 박사는 도망칠 수 있는 사면권을 찢어버리고 아이들 한가운데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아이들의 공포를 씻어주기 위해 기적 같은 명령을 내립니다. "얘들아, 이제 가장 좋은 옷을 입고 배낭을 메거라. 우리는 지금 소풍을 가는 거란다." 박사는 겁에 질린 아이들의 눈을 하나하나 맞추며 속삭였습니다. "선생님이 너희 곁에 끝까지 함께 있을게. 하느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 아름다운 나라로 가는 거니 무서워할 것 하나도 없다."
이 '피 끓는 사랑의 선언'이 떨어지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조금 전까지 땅바닥을 기며 살려달라고 울던 아이들이, 마치 새로 태어난 이들처럼 당당하게 일어섰습니다. 목격자 예호슈아 페를레(Joshua Perle)는 그 장면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것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고아들의 행렬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박사님이 만들어준 초록색 '국왕 매트 1세'의 깃발을 앞세우고, 깨끗한 옷을 입은 채 노래를 부르며 행진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공포 대신 말할 수 없는 평화와 존엄함이 감돌았다."
아이들은 박사가 자신들을 위해 목숨을 바쳐 동행한다는 것을 믿었을 때, 비로소 자기 생명에 집착하던 '뱀의 발'을 떼고 하느님 자녀로서의 ‘날개’를 회복하여 그 위엄을 회복했습니다. 이 희생적인 죽음만이 타인을 두려움이라는 죄의 무덤에서 해방할 수 있습니다. (출처: 베티 진 리프턴, 『아이가 있는 곳이 천국이다: 야누슈 코르차크의 생애』)
자아는 죽음의 두려움으로 세상 것에 집착하도록 만듭니다. 그러니 죽어도 된다는 믿음, 그리고 누군가가 그것을 보여준다면 자아는 힘을 잃고 죽습니다. 이것이 발씻김입니다. 우리 나라 영화에 이런 예도 있습니다.
1597년 명량해전을 앞두고 이순신 장군이 보여준 모습이 바로 그것입니다. 12척의 배로 133척의 왜군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 부하들은 '두려움'이라는 죄에 압도되어 죽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배를 뒤로 물리고 머뭇거렸습니다. 살려고 하면 죽는다는 역설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때 이순신 장군은 장수들을 불러 모아 엄명합니다. "병법에 이르기를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必死則生 必生則死)고 하였다.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 장군은 비겁하게 뒤에서 명령하지 않았습니다. 대장선 한 척을 몰고 적진의 한가운데로 홀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저들을 깨우려면, 내가 죽어야겠지!"
부하들은 멀리서 지켜보았습니다. 장군이 홀로 적들을 무너뜨리며 피 흘리는 그 '죽음의 헌신'을 목격하자, 그들의 가슴 속에서 '두려움'이라는 낡은 자아가 죽고 '용기'라는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저분처럼 할 수 있는 존재다.”
이 믿음이 두려움의 죄에서 벗어나게 하였습니다. 장군의 죽음을 각오한 선구자적 행동은 부하들의 발을 땅(두려움)에서 떼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배를 몰아 적진으로 돌진했고, 결국 불가능해 보이던 승리를 일구어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쏟은 땀과 피가 부하들의 비겁한 발을 씻어준 세족례가 되었고, 그들을 진정한 전사로 다시 낳은 것입니다. (출처: 이순신, 『난중일기』 1597년 9월 15일 자)
결국 하느님 자녀로서 죽음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새로운 하느님 자녀를 탄생시킬 수 없습니다. 피 없이 탄생하는 생명은 없습니다. 오늘 십자가 아래에서 우리는 이 신비를 완성하신 예수님을 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셨지만, 돌아가셨습니다. 이것이 하느님 자녀의 존엄함입니다. 이것을 믿게 하시기 위해 직접 십자가의 모범을 보이신 것입니다.
현대의 성녀 에디트 슈타인(St. Edith Stein), 즉 십자가의 데레사 베네딕타 성녀의 사례를 보십시오. 그녀는 1939년 6월 9일 자신의 영적 유서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위해 마련하신 죽음을 저는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주님, 저의 삶과 죽음을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특별히 유다 민족의 구원을 위하여 속죄의 제물로 받아 주소서."
그녀가 아우슈비츠로 향하는 수송 열차에 실려 웨스테르보르크(Westerbork) 임시 수용소에 머물 때였습니다. 수용소는 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죽음의 공포가 수천 명의 유다인을 짓눌렀고, 특히 어린아이를 둔 어머니들은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졌습니다. 어머니들은 며칠 동안 넋이 나간 채 아이들을 돌보지 않았고, 아이들은 굶주림과 오물 속에서 울부짖었습니다. 공포라는 '뱀의 저주'가 어머니들의 모성마저 마비시켜 버린 것입니다.
이때 에디트 슈타인이 나섰습니다. 그녀는 마치 성목요일의 예수님처럼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녀는 공포에 질린 어머니들을 대신해 아이들을 씻기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의 머리를 빗겨주고, 옷에 묻은 오물을 닦아주며, 어머니들의 손을 잡고 기도했습니다. 그녀의 얼굴에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천상의 평화가 감돌았습니다.
성녀의 이 '피 끓는 세족례'를 목격한 어머니들은 전율했습니다. 성녀가 죽음의 길에서 보여준 의연한 희생은 마비되었던 어머니들을 깨웠습니다. 어머니들은 다시 일어나 아이들을 안아주었고, 하느님 자녀의 존엄함을 회복한 채 가스실로 향했습니다. 성녀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 공포의 노예였던 이들을 당당한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낳은 것입니다. (출처: 성녀 십자가의 테레사 베네딕타의 『영적 유서』, 1939; 월터 허브너, 『에디트 슈타인의 생애와 순교』)
예수님은 우리에게 멋진 교훈을 주러 오신 분이 아닙니다. 당신의 옆구리를 열어 우리를 낳아주러 오신 참된 어머니이십니다. 자녀를 낳는 어머니의 피 흘림이 있어야 새 생명이 태어나듯, 예수님의 피 흘림이 있었기에 우리는 비로소 '자기를 위하는 마음'이라는 죄의 태반을 끊고 아직 묶여 있는 이웃을 바라볼 수 있고 하늘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시편 강해』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라는 침상 위에서 교회를 당신의 신부로 낳으셨다. 그분의 피는 우리를 씻기는 물이 되었고, 그분의 죽음은 우리의 생명이 되었다." (출처: St. Augustine, Enarrationes in Psalmos, 127).
이번 성금요일, 주님의 수난을 슬퍼만 하지 마십시오. 그분이 흘리신 피의 무게만큼 우리도 누군가를 위해 죽어줄 용기를 가집시다. 죽어야 삽니다. 살려고 하면 죽습니다. 낳아서 자녀를 주님께 봉헌해야 그분 앞에 갈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비참한 패배의 장소가 아니라, 사랑이 증오를 이기고 생명이 죽음을 삼켜버린 가장 찬란한 승리의 보좌이자, 영원한 생명이 태어나는 거룩한 자궁입니다."
https://youtu.be/Qy5X9AOZxeY?si=M6MUu7dfmV0JsgI4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미사 묵상글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셨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목마르다." 요한 19,28
Aware that everything was now finished, Jesus said, "I thirst." Jn 19:2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