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마르코 6,14-29) -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2026.2.6.)
바오로 미키 성인은 1564년 무렵 일본 오사카 근처에서 무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예수회 소속의 대학을 졸업한 뒤 수사가 된 그는 열정적으로 복음을 선포하여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바오로 미키 수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박해 때 25명의 동료들과 함께 붙잡혀 모진 고문을 받고 나가사키로 압송되어, 1597년 2월 5일에 십자가 위에서 순교하였다. 1862년 그를 비롯한 동료 순교자들이 시성되었다.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14-29
그때에 14 예수님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마침내 헤로데 임금도 소문을 듣게 되었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 하고 말하였다.
15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는 엘리야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들과 같은 예언자다.” 하였다.
16 헤로데는 이러한 소문을 듣고,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하고 말하였다.
17 이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붙잡아 감옥에 묶어 둔 일이 있었다.
그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 때문이었는데,
헤로데가 이 여자와 혼인하였던 것이다.
18 그래서 요한은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다.
19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20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기 때문이다.
21 그런데 좋은 기회가 왔다.
헤로데가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22 그 자리에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가 춤을 추어,
헤로데와 그의 손님들을 즐겁게 하였다.
그래서 임금은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나에게 청하여라. 너에게 주겠다.”
하고 말할 뿐만 아니라,
23 “네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 하고 굳게 맹세까지 하였다.
24 소녀가 나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무엇을 청할까요?” 하자,
그 여자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라.” 하고 일렀다.
25 소녀는 곧 서둘러 임금에게 가서,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청하였다.
26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27 그래서 임금은 곧 경비병을 보내며,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경비병이 물러가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28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29 그 뒤에 요한의 제자들이 소문을 듣고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무덤에 모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 교회가 관료주의에 빠지지 않는 유일한 길 >
찬미 예수님.
우리는 흔히 악마라고 하면 뿔이 달리고 무시무시한 얼굴로 으르렁거리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가 만나는 가장 무서운 악은 의외로 아주 친절하고, 예의 바르며, 심지어 성실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관료주의라는 이름의 악마입니다.
주민센터나 관공서에 갔을 때 가장 벽처럼 느껴지는 말이 무엇입니까? 담당 공무원이 세상에서 제일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하며 모니터만 쳐다볼 때입니다.
“선생님 사정은 너무나 잘 알겠고 마음이 아프지만, 전산상 입력이 안 돼서 규정상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 말은 번역하면 이런 뜻입니다. “당신이 죽든 말든 내 알 바 아니고, 나는 내 책상과 월급, 이 시스템을 지켜야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이 전형적인 관료주의적 악인의 모습을 봅니다. 바로 헤로데 왕입니다.
헤로데는 세례자 요한이 의롭고 거룩한 사람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요한을 죽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생일잔치에서 술김에 맹세한 체면이 문제였습니다. 딸 살로메가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자, 그는 몹시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손님들의 시선’과 ‘왕으로서의 위신’이라는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죄 없는 예언자의 생명이라는 ‘잃어버린 양’을 포기했습니다. 그는 악한 살인광이라기보다는, 생명보다 자기 체면과 ‘가오’가 구겨지는 것을 더 두려워했던, 덩치만 큰 겁쟁이 관리자였습니다.
아서 밀러의 희곡 『크루서블』에 나오는 댄포스 판사도 똑같습니다. 마녀사냥의 광풍 속에서 그는 소녀들의 증언이 거짓임을 감지합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습니다. 그가 내뱉은 말은 충격적입니다.
“이미 12명을 같은 죄목으로 교수형에 처했는데, 지금 와서 이들을 사면하면 법정의 권위가 떨어진다.”
그는 자신의 판결이 틀렸음을 인정하여 법정의 권위를 구기느니, 차라리 무고한 존 프록터의 목을 매는 쪽을 택했습니다. 99마리의 양(권위)을 지키기 위해 억울한 한 마리 양을 절벽으로 미는 것, 그것이 관료주의의 끔찍한 민낯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는 어떨까요? 교회는 하느님의 집이니 다를까요?
“교회법상 안 됩니다”, “전례 규정상 곤란합니다”라는 말이 사람의 생명보다 앞설 때, 교회는 구원의 방주가 아니라 종교 서비스를 제공하는 차가운 동사무소가 됩니다.
교회가 관료주의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의 마음, ‘착한 목자’의 심장을 갖는 것입니다.
착한 목자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들판에 두고서라도,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섭니다. 관료주의자는 계산기를 두드리며 “1%의 손실은 감수하자”라고 말하지만, 목자는 “저 아이 없이는 나도 집에 가지 않겠다”라고 말합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을 보십시오.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치려 하실 때, 바리사이들(종교 관료)은 눈에 불을 켜고 감시했습니다. “규정을 어기나 안 어기나 보자.”
하지만 예수님은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으셨습니다. 시스템(안식일)이 무너지는 것보다, 눈앞에 있는 한 생명이 고통받는 것이 더 아프셨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예수님은 규정을 지키느라 사람을 죽이는 비겁함을 찢어버리시고, 욕을 먹더라도 사람을 살리는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아무리 윗자리에 있어도 양 한 마리 지키기 위한 용기 있는 행위를 할 수 있을 때 관료주의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이끄시면서도 개인적으로도 한 영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발로 직접 뛰신 이유입니다.
1576년 밀라노에 흑사병이 돌았을 때의 일입니다. 귀족들과 행정 관리들은 모두 도시를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당시 밀라노의 대주교였던 성 가롤로 보로메오 추기경에게도 측근들이 피신을 권했습니다. “각하, 여기 계시면 전염됩니다. 교회의 시스템이 마비되면 안 되니 안전한 곳에서 지시를 내리십시오.” 이것이 관료주의의 상식입니다.
하지만 그는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그는 주교관의 화려한 가구와 집기를 모두 팔아치워 환자들을 위한 약과 식량을 샀습니다. 그리고 주교의 붉은 의복 대신 수단을 걷어붙이고 페스트균이 득실거리는 거리로 나갔습니다.
그는 맨발로 십자가를 들고 다니며, 길바닥에서 썩어가는 환자들에게 성체를 영해주고 임종을 지켰습니다. 그는 ‘고위 성직자’라는 높은 자리(시스템)에 안주하지 않고, 죽어가는 양 한 마리가 있는 그 비참한 현장으로 내려왔습니다. 조직을 지키려 했다면 도망쳤겠지만, 생명을 지키려 했기에 죽음의 땅에 남았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그리고 형제 사제 여러분.
우리는 종종 99마리의 양이 있는 안전한 우리, 즉 ‘안정된 시스템’ 안에 안주하려 합니다. 그곳은 따뜻하고 규정이 우리를 보호해 줍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시스템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는 시스템 밖, 벼랑 끝에 있기 때문입니다.
시스템을 관리하는 관리자가 되지 말고, 울타리를 넘어 광야로 나가는 목자가 됩시다. 이것에 제가 사제 생활 20년 만에 처음으로 냉담자 방문을 하며 처음으로 느낀 것입니다. ‘어쩌면 그 이전까지 제 사제의 삶이 헤로데와 비슷하지 않았나?’ 한 영혼을 살리기 위해 나의 안위와 시스템을 버리고 떠날 줄 아는 용기 있는 신앙인이 됩시다.
아멘.
https://youtu.be/CKe9Pu7aTwk?si=-CdfpkQvdsBUhQN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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