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드로 사도를 선택하시어 당신의 지상 대리자로 삼으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본디 고대 로마에서 2월 22일은 가족 가운데 죽은 이를 기억하는 날이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죽은 이를 기억하는 관습에 따라 4세기 무렵부터는 이날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의 무덤을 참배하였다. 이것이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의 기원이다. 그러나 6월 29일이 베드로와 바오로 두 사도를 함께 기념하는 새로운 축일로 정해지면서, 2월 22일은 베드로 사도를 교회의 최고 목자로 공경하는 축일로 남게 되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3-19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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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수의 사람들과 미사를 드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많지 않아 강론 대신에 각자 나눔을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날 복음 말씀은 ‘밭 속에 묻힌 보물’의 비유(마태 13,33 참조)였습니다. 저는 이 복음 말씀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여러분에게 보물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은 아내라고 하였고, 어떤 사람은 가족이라고 하였고, 또 어떤 사람은 음악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나의 보물이 ‘예수님’이라고 말한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그날 미사에 초대받은 개신교 신자였습니다. 신학생 때 선배 신부들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예전에 비하여 본당 주일 학교가 활성화되지 않아,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끌어모을 수 있을지 젊은 신부들이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고민 끝에 아이들의 문화를 성당에 도입하였습니다. 노래방 기계도 가져다 놓고, 댄스 교실도 운영하고, 운동도 마음껏 할 수 있게 하면 아이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처음 1년, 2년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추풍낙엽처럼 아이들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러한 경험을 한 선배 신부들이 제게 들려준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주일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전해 주어야 하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신앙이다. 그것이 기초가 되지 않는 한, 그 어떤 화려하고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도입하여도 잠깐은 반짝할 수는 있지만 머지않아 한계에 봉착한다.”바오로 사도는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입니다.”(필리 1,21)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우리는 신앙 공동체 안에서 무엇을 모퉁잇돌로 삼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삶의 기초로 삼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도 같습니다.
한재호 루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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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를 누구라고 보느냐?”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너도 할 수 있느냐?”와 같다>
복음: 마태오 16,13-19
1968년 10월, 유명한 재클린 케네디와 그리스의 억만장자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가 ‘혼전계약’을 하였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부부의 침실은 각자 독립적이고, 한쪽의 허가 없이는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다. 1년에 3개월은 동거 생활을 하되, 9개월은 제각기 따로 생활할 수 있다.”
이혼에 관한 내용도 있습니다. “남편이 이혼을 요구할 경우 1년에 10만 달러로 쳐서 결혼기간에 상당한 위자료를 지불하고 만 5년 이상일 경우 종신 연금 1백만 달러를 준다. 아내가 이혼을 요구했을 경우에도 일시불로 2천만 달러와 그 이후 10년간 18만 달러의 연금을 받을 수 있다.” 이 외에도 이 혼인계약서에는 의상비, 미용비, 용돈 등에 관한 상세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 부부 각자가 “당신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세요?”라고 하면, “당신은 돈입니다.”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혼인은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인데 그것보다는 모든 것을 돈으로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예수님을 바라보는 시각도 시시각각이었습니다. 가장 나쁘게 본 이들은 예수님을 마귀 우두머리라고 보기도 했고, 어떤 이들은 의인으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시몬 베드로는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베드로의 이 대답이 왜 중요할까요? 결국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룰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체성혈로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룹니다. 마치 혼인하는 것처럼 그분이 나의 머리가 되고 나는 그분의 몸이 됩니다. 그러니 그분을 볼 수 있는 눈이 내가 누구와 하나가 되었는지를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예언자셨다고 믿는다면 그 성체를 영한 사람은 예언자처럼 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오늘 베드로 사도처럼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한다면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처럼 살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자녀라 믿으면 예수님께서 하신 것은 자신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녀라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 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는데,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시니 자신도 예수님처럼 물 위를 걸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 모습이 교회의 모습이 되어야 함을 아시는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시고 그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맡기셨습니다.
전 세계에서 이혼률이 가장 낮은 나라는 브라질이라고 합니다. 브라질에는 ‘결혼 자격시험’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결혼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정부기구의 전문교육기관에서 하루 6~7시간씩 10일 동안 합숙하며 결혼생활과 부부관계, 일반 위생과 자녀교육을 등등을 배우고 마지막 날에 시험을 봐서 통과하면 ‘결혼 자격증명서’를 준다고 합니다.
우리는 베드로 사도처럼 하늘 나라의 열쇠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철저히 점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결국 우리도 그리스도와 혼인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정적인 순간이 성체를 영할 때입니다. 성체 자격시험을 한 번 쳐보시겠습니까? 먼저 “성체는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성체는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물으신 대로 “그러면 그리스도는 누구이십니까?”라고 물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요, 하느님이십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것이 더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러면 성체를 영한 당신은 누구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이때 “저는 그리스도와 한 몸입니다.”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을 당신도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어야합니다. 만약 “예!”하면 성체를 영할 자격이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고백은 했지만 자신은 물 위를 걸을 수 없다고 말했다면 그 믿음에 일관성이 있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을 하느님이라 믿으면 나도 하느님이 하는 모든 일은 다 할 수 있다고 믿어야합니다. 이 믿음의 문을 여는 열쇠가 오늘 베드로 사도가 받은 하늘나라의 열쇠입니다. 이 열쇠로 우리도 그리스도께서 하신 모든 일은 우리도 다 할 수 있다고 믿는 마음의 문이 열립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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