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마르코 6,14-29) - 연중 제4주간 금요일 (20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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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샘

[묵상]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마르코 6,14-29) - 연중 제4주간 금요일 (2025.2.7.)

by honephil 2025. 2. 7.

[묵상]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마르코 6,14-29) - 연중 제4주간 금요일 (2025.2.7.)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14-29
그때에 14 예수님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마침내 헤로데 임금도 소문을 듣게 되었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 하고 말하였다.
15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는 엘리야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들과 같은 예언자다.” 하였다.
16 헤로데는 이러한 소문을 듣고,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하고 말하였다.
17 이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붙잡아 감옥에 묶어 둔 일이 있었다.
그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 때문이었는데,
헤로데가 이 여자와 혼인하였던 것이다.
18 그래서 요한은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다.
19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20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기 때문이다.
21 그런데 좋은 기회가 왔다.
헤로데가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22 그 자리에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가 춤을 추어,
헤로데와 그의 손님들을 즐겁게 하였다.
그래서 임금은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나에게 청하여라. 너에게 주겠다.”
하고 말할 뿐만 아니라,
23 “네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 하고 굳게 맹세까지 하였다.
24 소녀가 나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무엇을 청할까요?” 하자,
그 여자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라.” 하고 일렀다.
25 소녀는 곧 서둘러 임금에게 가서,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청하였다.
26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27 그래서 임금은 곧 경비병을 보내며,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경비병이 물러가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28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29 그 뒤에 요한의 제자들이 소문을 듣고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무덤에 모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몰랐다.”는 핑계는 나를 계속 무식하게 만든다>

1962년 2월 10일, 여수 남초등학교 졸업식에서 일어날 일이라고 합니다. 졸업식장에서 회색 스웨터에 까만 낡은 바지를 입은 중년부인이 노력상을 받았습니다. 그 부인이 단상에 올라가 상장을 받자 장내는 박수소리로 떠나갈 듯했고 졸업하는 그 부인의 딸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노력상을 받은 어머니와 딸은 세 채밖에 집이 없는 외딴섬에 살았습니다. 주민이라고는 겨우 20명뿐인 이 섬에서는 제일 가까운 여수에 볼 일이 있어도 섬사람들이 직접 만든 배를 타고 갈 수밖에 없는 곳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딸이 여덟 살이 되자 남편에게 딸을 육지에서 공부시키자는 말을 어렵게 꺼냈습니다. 그러나 그의 남편은 20리나 되는 뱃길을 어떻게 다닐 수가 있겠느냐며 반대했습니다. 당시 그 섬에는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그 섬이 무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믿음을 굽히지 않고 딸을 남편 몰래 육지의 초등학교에 입학시켰습니다. 그로부터 6년, 어머니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꼭두새벽에 일어나 20리나 되는 험한 물결을 가로지르며 손수 노를 저어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었습니다. 그리고 섬으로 돌아와 밭일을 하다가 저녁이면 다시 배를 타고 딸을 데려와야 했습니다.

 

처음 얼마 동안은 딸도 울고 그 어머니도 울었습니다. 딸은 어머니가 자신을 육지에 홀로 남겨두고 떠나는 것이 두려워 울었고 어머니는 딸을 데리러 가는 길이 늦어 딸이 애처로워 죽는 힘을 다해 노를 저으며 울었습니다.

 

시계도 없는 섬에서 매일 시간을 맞춰 딸을 학교에 보내고 데려오는 일에 한 번도 어긋남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6년을 하루같이 오간 뱃길이 무려 3만 3천리나 되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졸업생과 부모, 그리고 선생님들의 감격스러운 울음으로 졸업식장은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어떤 잘못을 했을 때 “몰랐어요!”란 핑계를 많이 댑니다. 그러나 모르는 것이 꼭 핑계가 될 수없는 이유는 알려고만 하면 다 알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알면 지켜야 하니까 그게 싫어서 일부러 알려고 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모든 것에 “몰랐어요!”의 핑계가 더 적용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몰랐다는 핑계는 이렇게 계속 자신의 무지를 정당화하며 참 지식으로 나아가는 길을 막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복음을 전하고 피곤한 상태로 예수님께 돌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도 나오는데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제자들은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끝까지 쫓아왔습니다. 예수님은 귀찮아하시지 않고 진리를 갈구하는 그들을 가엾은 마음으로 바라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제자들은 피곤하니 당신께서 직접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어제 서울 모 성당에서 저의 책을 일 년 동안 전 신자들이 영적독서를 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해서 책의 내용을 설명하는 특강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제 갑자기 날씨도 추워졌고 더구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신자들이 적게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녁 8시가 되자 강의를 듣기 위해 거의 교중미사 수준으로 신자들이 성당을 채웠습니다. 저도 그분들을 보며 짠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배우고 싶어 하는 열정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한 인간인 저도 그럴진대 하느님께서야 당신 진리를 알려고 노력하는 이가 얼마나 짠해 보이겠습니까? 그러니 모든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실 것입니다. 따라서 진리를 깨닫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진리를 알고 싶은 우리의 열망입니다. 그 열망만 있다면 사람이 가르쳐주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분명 알 수 있었던 것들이기에 몰랐다고만 핑계를 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미사 묵상글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십니다. 히브 13,8

Jesus Christ is the same yesterday, today, and forever. Heb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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