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고생하는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마태오 11,28-30 -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2023.12.13.)
루치아 성녀는 로마 박해 시대에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섬에서 태어났다. 그의 생애는 잘 알려져 있지 않는데, 5세기의 기록에서 부분적으로 순교 사실이 전해지고 있다. 신심 깊은 부모의 영향으로 일찍 세례를 받은 성녀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딸의 신변을 염려한 어머니의 주선으로 귀족 청년과 약혼하였다. 그러나 성녀는 동정을 결심하고 있었기에 한사코 혼인하기를 거절하였다. 이에 격분한 약혼자의 고발로 갇히게 되고 결국 300년 무렵에 순교하였다. 루치아(Lucia)라는 이름은 ‘빛’ 또는 ‘광명’을 뜻하는 라틴 말에서 유래되었다.
<고생하는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28-3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 마음의 평화를 얻는 법: 나를 무겁게 하는 짐의 정체를 먼저 알아야! >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안식’을 약속하십니다. 이를 위해 안식이 없는 사람들을 초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성당에 다니기 위해 오는 사람 대부분은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당에 다니면서도 마음의 평화인 안식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쩌면 내가 내려놓아야 하는 ‘무거운 짐’의 정체를 잘 모르는 게 아닐까요?
영화 ‘디스 파이널 아워스’(2013)의 줄거리입니다. 이야기는 호주 퍼스를 배경으로 하며, 지구를 멸망시킬 재앙적인 사건이 일어나기 전 마지막 12시간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영화는 생명을 잃은 운석이 북대서양을 강타하여 지구 전체를 천천히 휩쓸고 있는 세계적인 불 폭풍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전 세계가 아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주인공은 제임스입니다. 제임스는 임신한 애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죽는 것도, 자신의 애인이 죽는 것도, 그 태중의 아기가 죽는 것도 보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저 술을 마시며 광란의 파티를 하다 죽고 싶어 그녀를 떠납니다.
종말의 혼란 속에서 제임스는 아버지와 헤어진 채 어른들에게 끌려가는 어린 로즈를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녀를 도와줍니다. 그녀는 아버지 옆에서 종말을 맞고 싶다고 제임스에게 아버지를 찾아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제임스는 생의 마지막을 아이를 도와주다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데리고 광란의 파티에 갑니다. 거기에는 참다운 우정도 없고 거기에서도 어른들이 로즈를 마지막 노리갯감으로 쓰려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제임스는 로즈를 데려 나와 아버지를 찾아주기로 합니다. 로즈가 말한 아버지 집으로 갔더니 온 가족이 두려움에 자살한 상태였습니다. 제임스가 로즈와 함께 떠나려 하자 로즈는 그것을 거부하고 아빠 곁에 머물겠다고 말합니다. 제임스는 아이를 보며 마지막 시간에 나를 사랑하는 누군가와 머문다는 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를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은 누구와 함께 죽음을 맞고 싶은가 생각하다 자신의 짐처럼 여겨 떠났던 임신한 애인을 찾아 나섭니다. 도중에 차도 고장이 나지만 뛰어서 그녀가 있는 해변으로 갑니다. 거기에서 용서를 빌고 그녀와 꼭 껴안은 채 바다에서 밀려오는 불 폭풍을 맞습니다. 이때 여자가 말합니다.
“아름다워!”
사랑하는 사람과 맞는 죽음은 더는 공포가 아니고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주시려는 안식입니다.
제임스는 자신의 무거운 짐이 임신한 애인, 자기가 책임져야만 하는 가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짐을 벗어던지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안식은 없었습니다. 자기가 짐이라고 여겼던 것은 사실 짐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무거운 짐은 무엇일까요? 제임스에게 가장 무거운 짐은 자신에게 맡겨진 사랑의 의무를 다할 필요가 없이 즐기다 죽어도 된다고 말하는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이었습니다.
우리의 가장 큰 짐은 외적인 책임이 아닙니다. 바로 원죄에 물들어 책임을 회피하려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이 아니라 외적인 무언가를 내려놓으려 하기에 영원히 안식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새 마음을 약속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예수님은 새로운 마음을 넣어주러 오셨습니다. 그것도 짐입니다. 그러나 이전의 마음보다는 가볍습니다. 이전의 마음은 온유하지 않고 겸손하지 않습니다. 죽어야 할 운명에 대해 화가 나 있고 나에게 주어진 책임에 대해 분노로 차 있습니다. 겸손하지 못해 감사하지 못하고 하느님과 나에게 짐처럼 보이는 이들에게 불만을 품고 원망합니다. 제임스는 로즈라는 아이를 통해 이 새로운 마음을 얻었습니다. 그랬더니 이전에 짐처럼 보였던 가족이 이젠 죽음 앞에서도 평화로울 수 있는 안식으로 보이게 되었습니다.
가끔 자신 안에 마귀가 산다고 말하는 이들이 찾아옵니다. 안수로 그것들을 내쫓아 달라고 말합니다. 누구도 자신 안의 마귀를 쫓아내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것 때문에 몸도 아프고 삶도 피폐해졌다고 합니다.
이들은 그 마귀들이 무거운 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짜 짐은 ‘외로움’입니다. 하느님도 없고 부모도 없고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습니다. 믿는 척은 하지만, 실제로 자기를 믿습니다. 자신이 그렇게 된 게 마귀 탓이라고 하며 진짜 무거운 짐을 부인입니다. 그 무거운 짐이란 자신을 외롭게 만든 하느님과 가족에게 화가 나 있는 마음입니다. 그것부터 내려놓아야 예수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이 장착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그러나 이것을 믿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습니다. 원한다면 사제가 시키는 것을 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성당에 매일 나와서 ‘하.사.시.’ 를 30분 읽고 성체조배 하며 그 내용을 묵상하라고 합니다. 일주일이면 충분한 효과가 나타납니다. 그렇게 마귀가 나가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여럿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자기 마음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 마귀와 자기를 그렇게 만든 환경이 문제라고 여기기 때문에 그것만 없애달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안식을 위해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주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니 불만스럽고 화가 나 있는 마음을 먼저 내려놓읍시다.
https://youtu.be/8ChVLlPLfCQ?si=4mrJhyef2UBKK39h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미사 묵상글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마태 11,30
My yoke is easy, and my burden light. Mt 11,3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