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마르코 1,1-8) - 대림 제2주일(인권 주일, 사회 교리 주간 2023.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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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샘

[묵상]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마르코 1,1-8) - 대림 제2주일(인권 주일, 사회 교리 주간 2023.12.10.)

by honephil 2023. 12. 10.

[묵상]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마르코 1,1-8) - 대림 제2주일(인권 주일, 사회 교리 주간 2023.12.10.)

 

인간 존중과 인권 신장은 복음의 요구다. 그럼에도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고 짓밟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에 따라 한국 주교회의는 1982년부터 해마다 대림 제2주일을 ‘인권 주일’로 지내기로 하였다. 교회는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존엄한 인간이 그에 맞갖게 살아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보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권 주일로 시작하는 대림 제2주간을 2011년부터 ‘사회 교리 주간’으로 지내고 있다. 오늘날 여러 가지 도전에 대응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복음을 전하여야 할 교회의 ‘새 복음화’ 노력이 바로 사회 교리의 실천이라는 사실을 신자들에게 일깨우려는 것이다.

오늘은 대림 제2주일로 한국 교회가 정한 인권 주일이자 사회 교리 주간의 시작입니다. 모든 위로의 샘이신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나그넷길을 걷는 우리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을 약속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마음을 밝히시어, 순수한 믿음과 거룩한 삶으로 주님의 영광스러운 이름이 완전하게 드러나는 그날을 향하여 걸어가게 하여 주시기를 청합시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의 시작입니다.1,1-8
1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2 이사야 예언자의 글에
“보라, 내가 네 앞에 내 사자를 보내니 그가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3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기록된 대로,
4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5 그리하여 온 유다 지방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모두 그에게 나아가,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6 요한은 낙타 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둘렀으며,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살았다.
7 그리고 이렇게 선포하였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주면 안 되는 사람 >



오늘 복음에서 나병 환자는 자신을 치유하게 해 주시라고 하는 대신, 예수님께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라고 하십니다. 왜 그 이전에는 우리 병을 고쳐주시지 않고 우리 고통을 덜어주시지 않으실까요? 그분은 원하면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믿음으로 청하기 전까지는 원하지 않으실까요? 왜냐하면 도와줌은 그렇지 못한 상태의 탓을 자신에게 하는 이들에게만 이익이 됩니다. 도와줌은 자기가 옳지 않았음을 인정하는 이들에게만 도움이 된다는 뜻입니다. 내가 옳았다면 왜 도움을 받으려고 할까요? 이용하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을 부정하지 않는 이에게는 도움이 오히려 해가 됩니다. 

‘솔로이스트’(2009)는 실화 기반의 영화입니다. LA타임스 기자 스티브 로페즈는 노숙자 나타니엘 에이어스를 마주칩니다. 스티브에겐 신문 칼럼 소재가 필요했었는데, 나타니엘이 길거리에서 2현 바이올린을 켜는 것을 보고는 그의 이야기를 신문에 내고 싶어 집니다. 사실 나타니엘은 뉴욕 줄리어드 음대의 전도유망한 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환청을 듣게 되고 환청은 두려움을 만들었으며 두려움은 그를 도망쳐 노숙자가 되게 한 것입니다. 

 

스티브는 나타니엘을 돕기로 결심하고 주택, 재활 및 적절한 환경에서 음악을 연주할 기회를 확보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나타니엘에게 첼로를 제공해주고 독주회까지 열어줍니다. 하지만 여전히 목소리에 휘둘린 그는 어렸을 때처럼 도망을 쳐버립니다. 스티브는 정신 치료를 먼저 받지 않으면 그를 돕는 것이 헛되다는 것을 깨닫고는 치료를 제안합니다. 그러자 나타니엘은 자기를 미친 사람 취급하는 스티브를 공격합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는 말씀이 생각이 나는 장면입니다. 그들이 도움을 짓밟고 주는 사람을 물어뜯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그들이 개요, 돼지였음을 인정하지 않으면 도움은 아무 쓸모가 없어집니다. 오히려 해가 되는 것입니다. 도움은 그 사람을 더 나은 존재로 올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이전의 자기 상태를 부정해야 하는 전제가 요구됩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는 프랑스 혁명을 가장 잘 이용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프랑스혁명은 가톨릭교회와 결탁한 군주제에 지친 시민들이 ‘자유, 평등, 박애’라는 기치를 들고 새로운 제도를 위한 시도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보잘것없는 배경을 가진 나폴레옹은 자신의 재능과 업적을 바탕으로 계층을 상승시킬 수 있었습니다. 1795년 혁명 당시 왕당파 반란을 진압한 나폴레옹은 시민들의 영웅이 되었고 정치적 권력을 장악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결국 1799년에 그는 프랑스 정부에 대항하여 쿠데타를 일으켜 자신을 프랑스의 최고 지도자로 만들었습니다. 이는 민주주의와 국민 주권이라는 혁명적 이상을 스스로 훼손한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1804년 나폴레옹은 스스로를 프랑스의 황제라고 선언하여 평등과 군주제 폐지라는 혁명적 원칙에 직접적으로 반대했습니다. 스스로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자신이 권력을 잡게 된 계기가 된 프랑스혁명 이전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여기에서 지금까지 자신과 함께했고 도움을 주었던 많은 이들을 배신해야만 했습니다. 이를 위해 다시 가톨릭교회와의 협력의 필요성을 느꼈고 1801년 나폴레옹은 교황과 협약에 서명하여 비록 국가의 통제하에 있지만 가톨릭교회를 프랑스의 종교로 재확립했습니다. 그와 뜻을 같이했던 많은 사람은 혁명의 세속적 원칙에 대한 배반으로 간주했습니다. 지금까지 그를 도왔던 모든 이들은 결국 그의 야망에 이용당하고 버려지게 되었고, 나폴레옹은 자유, 평등, 박애와는 거리가 먼 유럽 전역에 걸친 영토 확장을 위해 수많은 프랑스 국민의 피를 흘리게 했습니다. 

 

한 사람의 야욕 앞에서 모든 도움은 이용당하고 버려집니다. 하느님께서 그 귀한 은총을 자기 야욕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에게 주실 수 없습니다. 자신이 죽지 않은 사람에게 은총이 가지 않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자기 영광이 아닌 하느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이에게 주님은 은총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소화 데레사는 이런 꿈을 꾸었습니다. 각자가 영광을 향해 계단을 열심히 오르고 있었습니다. 데레사는 어린애였기 때문에 높은 계단을 오를 수 없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애처로운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늘에서는 주님께서 데레사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당신만을 바라보는 그녀를 손으로 들어 가장 높은 위치에 올려주셨습니다. 

 

이것이 은총을 받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나의 힘을 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주님께서 해주신 일이고 그 영광은 완전히 주님께 돌아가게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원해도 도와줄 수 없는 사람이 되지 맙시다. 내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주님의 말씀을 믿읍시다. 모든 것이 주님 힘으로 이루어져 주님께 영광이 가기만을 바랍시다. 주님은 원하시면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https://youtu.be/eW5r4eyuCWY?si=7u-647Fh1vJr9Tzg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미사 묵상글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마르 1,3

Prepare the way of the Lord. Mk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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