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5월의 첫 주일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죽음의 문화’의 위험성을 깨우치고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참된 가치를 되새기는 ‘생명 주일’이다. 한국 교회는 1995년부터 5월 마지막 주일을 ‘생명의 날’로 지내 오다가, 주교회의 2011년 춘계 정기 총회에서 이를 ‘생명 주일’로 바꾸며 5월의 첫 주일로 옮겼다. 교회가 이 땅에 더욱 적극적으로 ‘생명의 문화’를 이루어 나가자는 데 생명 주일을 지내는 뜻이 있다.
오늘은 부활 제5주일이며 생명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당신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올바른 길을 보여 주시고 무엇이 참된 삶인지를 깨닫게 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길을 성실히 걸어갈 때 우리는 진리를 깨닫고 생명과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1-1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2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3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4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5 그러자 토마스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7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8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존 존스(Jon Jones)는 목사의 아들로 어렸을 때는 TV나 인터넷도 하지 않고 자라서 천부적인 재능으로 스물 세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누구도 꺾을 수 없는 종합 격투기 챔피언이 됩니다. 그런데 챔피언이 되고서부터 천천히 자신 안에서 악마가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경기 하기 일주일 전에 필름이 끊어질 정도로 술을 마시고 마약을 하고 퇴폐 생활을 합니다. 그래야 만약 경기에 졌을 때도 자기 실력이 부족한 탓이 아니라는 핑계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한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임신부의 팔을 부러뜨리고 도주한다던가, 아니면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등의 사고와 범죄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자리에서 떨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스스로 자기를 망가뜨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일찍 성공한 이들이 이 같은 경우가 많습니다. 권투선수 타이슨도 그랬고, 영화배우 샤이아 라보프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트랜스포머의 주인공 샤이아 라보프는 조금 달랐습니다. 처음엔 부모의 이혼으로 부모를 믿지 못하게 되고 결국 자신만을 믿게 되었고 일찍 영화배우로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폭행과 시비로 경찰서를 들락거렸고 결국엔 삶의 의미를 잃었습니다. 그는 항상 자신이 옳다고 여겼습니다.
이것을 바꿔준 계기가 있는데 알코올 중독 치료사로부터 받은 테이프였습니다. 거기에는 우리가 잘 아는 ‘새옹지마’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새옹지마는 지금의 고통도 지나가면 행복이 될 수 있고 지금의 행복도 지나면 고통이 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이는 지금의 시간을 버틸 필요가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때 자신의 폭력으로 여자가 짐을 싸고 있을 때 이전과는 다르게 친절하게 보내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신앙을 받아들여 가톨릭 신자가 되고 비오 성인의 영화 주인공도 맡게 됩니다.
우울증을 소재로 한 단편영화 ‘커브’(Curve)는 위로 올라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밑으로 떨어질 수도 없는 절벽과 같은 상태에 놓인 한 사람이 자신의 자리에서 버텨보려 안간힘을 쓰는 상황을 묘사했습니다. 사람은 나아질 때, 목표가 있을 때 삶의 희망이 생기고 지금의 고통을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버틴다’라는 말은 그야말로 절망이요, 지옥입니다. 삶의 의미가 버티는 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버틸 수 없습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서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이겨낼 수 있다”라는 니체의 말을 자주 인용합니다. 수용소에서 버티려는 사람은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의미를 찾는 사람은 살았습니다. 그 의미란 수용소 밖에서의 삶을 준비하는 일이었습니다.
넬슨 만델라가 27년간의 수감 생활을 하고 나올 때가 72세였습니다.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젊은 사람 못지않은 건강함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거의 팔순이 다 되어 남아공의 첫 유색 인종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의 저자 토니 로빈스가 넬슨 만델라에게 “어떻게 감옥에서 그 긴 세월을 견딜 수 있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만델라는 “난 견뎌냈던 적이 없다오. 준비하고 있었던 거지”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는 언젠가는 출소하여 더 큰 일을 하리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산란할 틈이 없었던 것입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우승을 이끈 메시는 우승 직전 “할머니, 오늘이 될 수도 있어요”라고 중얼거렸습니다. 메시는 할머니 덕분으로 축구를 시작하게 되었고 몇 번의 은퇴를 결심했었지만, 결국 하늘에 계신 할머니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으로 남기 위해 정진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 마음이 산란하지 않도록 당신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당신이 아버지께 가서 우리 자리를 마련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당신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6)이시기에 당신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를 만나러 가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리스도께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이 세상을 견디며 힘차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구약의 야곱은 20년간 장인 라반 밑에서 노예처럼 일하다 도망하기까지 버텨낼 수 있었던 이유는 에사우를 만나기 위한 준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에사우의 축복을 대신 가로채고 그에 합당하게 살지 못한다면 나중에 에사우를 볼 면목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20년 간 살며 노력해서 얻은 모든 것을 에사우에게 바치고 자신도 바칩니다. 그리고 에사우에게 인정받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가 당신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며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요한 4,1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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