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빵을 떼실 때에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루카 24,13-35) - 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장애인의 날, 2022.4.20.)
by honephil2022. 4. 20.
해마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지위를 향상하고 사기를 진작하려고 우리나라가 기념일로 정한 ‘장애인의 날’이다. 한국 천주교회도 2000년부터 해마다 이날을 장애인의 날로 지내며, 장애인들의 복지와 인권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기로 하였다.
<빵을 떼실 때에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4,13-35 주간 첫날 바로 그날 예수님의 13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14 그들은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하였다. 15 그렇게 이야기하고 토론하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16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서로 주고받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한 채 멈추어 섰다. 18 그들 가운데 한 사람, 클레오파스라는 이가 예수님께, “예루살렘에 머물렀으면서 이 며칠 동안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혼자만 모른다는 말입니까?” 하고 말하였다. 19 예수님께서 “무슨 일이냐?” 하시자 그들이 그분께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에 관한 일입니다. 그분은 하느님과 온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셨습니다. 20 그런데 우리의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이 그분을 넘겨, 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하였습니다. 21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지도 벌써 사흘째가 됩니다. 22 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자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새벽에 무덤으로 갔다가, 23 그분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의 발현까지 보았는데 그분께서 살아 계시다고 천사들이 일러 주더랍니다. 24 그래서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가서 보니 그 여자들이 말한 그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26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27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28 그들이 찾아가던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는 더 멀리 가려고 하시는 듯하였다. 29 그러자 그들은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하며 그분을 붙들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그 집에 들어가셨다. 30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31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32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33 그들이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와 동료들이 모여, 34 “정녕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고 말하고 있었다. 35 그들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은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예수님을 만나 다시 교회로 돌아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의 상태가 문제입니다. 이들은 이미 여인들이 빈 무덤에서 천사를 만나 그분은 죽은 이들 가운데가 아니라 산 이들 가운데 계신다는 복음 선포를 들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교회를 떠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심한 그들의 문제를 캐내시기 위해 그들과 동행하십니다. 그리고 그들 입에서 왜 하느님을 믿지 못하고 알지 못하게 되었는지 그 말이 나오게 하십니다.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루카 24,21)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무엇을 원하는지는 전혀 물어보지 않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옆에 계신 분이 예수님임을 알아볼 눈이 없는 것입니다. 눈을 가리는 것은 나의 욕구입니다. 누구나 자신이 바라는 것만 보입니다.
저도 어머니를 알아보지 못한 적이 있습니다. 대학생 때였습니다. 집에 어디서 많이 본 아주머니가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머니 친구인 줄 알고 어머니께서 아직 안 들어오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아무 말 없이 안방으로 쓱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가발을 벗고 나오셨습니다. 어머니는 머리숱이 많이 없으십니다. 그날이 어머니가 처음으로 가발을 쓰신 날이었습니다.
사람이 왜 사람을 못 알아볼까요? 내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 주시는 분으로 여겼지, 숱이 적은 머리를 가발로 가리고 싶어 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분이 원하는 것을 행하셨을 때 알아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비록 예수님의 제자들이기는 했지만 그들의 머리는 자신들이 원하는 모습만 생각했습니다. 다윗 왕처럼 자신들을 로마로부터 독립시켜 부강하게 해 줄 메시아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그분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고 그분이 원하시는 것이 실현되었을 때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볼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대화할 때 자신이 원하는 것만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는 상대를 알아볼 수 없습니다.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만 주장하면 안 됩니다. 그분을 알아볼 수 없게 됩니다. 그분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찾으려 해야 합니다. 내가 청하려는 것은 이미 그분이 다 알고 계십니다. 그분은 당신이 원하는 것에 우리가 귀를 기울여주기를 원하십니다.
2020년 세계 부부의 날 ‘올해의 부부상 대상’을 수상한 부부가 있습니다. 노태권, 최원숙 부부입니다. 노태권 씨는 난독증으로 중학교밖에 다니지 못했고 막노동으로 가족을 부양해야 했습니다. 두 아들은 게임중독으로 모두 학교에서 자퇴하였습니다. 노태권 씨 아내는 거의 속아서 결혼했지만, 남편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합니다. 그래서 노태권 씨가 43세 때부터 글자 공부를 시킵니다. 공사장에서 일하는 시간이 14시간이었고, 공부 시간은 하루에 2~3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시작한 이후 3년 만에 수능 모의고사를 7년 연속 만점을 맞습니다. 글씨를 읽을 줄도 모르던 바보온달이 평강공주의 노력으로 엄청난 공부의 신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자녀들이 문제였습니다. 전국을 떠돌며 일해야 했기에 자녀들은 아버지를 낯설어했습니다. 아이가 어버이날 이렇게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어버이날, 우리 아빠는 무식하고 별 볼 일 없는 막노동꾼이다.”(2006, 5, 8)
아버지는 아이들을 홈스쿨링으로 교육하기로 합니다. 그러자 아이들이 거부하며 가출하였습니다. 아버지는 가출하려는 아이들의 가방에 사흘 동안 막도동 해서 일한 돈을 나누어 넣어줍니다. 아이들이 나갔다가 후회하고 돌아옵니다. 은총을 줄 줄 안 것입니다. 놓아줄 줄 안 것입니다. 그 이후로는 가출을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그다음엔 진리가 필요합니다. 아버지는 게임은 며칠 밤새면서 하던 아이들에게 직접 공부를 가르쳐야 했습니다. 아이들은 처음엔 단 5분도 앉아있지 못하였지만, 이런 식으로 가르쳤습니다. 5분 공부하고 5분 쉬고를 네 세트 반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하는 것입니다. 약속은 꼭 지켜주고 그 시간을 늘려갔습니다. 그랬더니 6개월 뒤에는 한 번 앉으면 100분은 집중할 수 있는 아이들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가르침으로 두 명 다 서울대 4년 장학생으로 입학합니다. 아버지는 TV에도 다수 출연하고 강연과 책도 내며 유명 인사가 되었습니다. 확실히 올해의 부부상을 받을만합니다.
그런데 2020년 아내 최원숙 님이 채널A, 아이콘택트에 나와 갑자기 ‘이혼 선언’을 합니다. 노태권 씨는 충격에 휩싸입니다. 그동안 잘해 왔는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친 것입니다. 아내는 그동안 너무 힘들었는데, 남편은 당신도 좋지 않았냐고 말합니다. 물론 남편도 TV에 출연하면서 이 모든 성과는 아내 덕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여전히 남편의 비서로 살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좀 쉬고 싶다고 합니다. 안식년 1년만 달라고 합니다. 남편은 80이 되기 전까지는 안 된다고 합니다. 아직도 난독증이 있는 남편은 아내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내의 마음이 그렇게 힘들었고, 자신은 자신의 꿈만 좇으며 아내의 꿈은 전혀 생각해 주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내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당연히 원해줄 것이라 여겼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내는 아내만의 휴식이 필요했습니다.
이렇게 가장 완전해 보이는 부부도 서로의 마음을 모르고 삽니다. 나의 꿈, 나의 욕망에 너무 집중하면 상대의 마음이 이것에 어긋나는 것이 두려워 아예 물어볼 생각도 하지 못합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이 그러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눈을 감아 보지 않으려는 사람이 내 아내가 될 수 있고, 내 자녀가 될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가 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아내라고 하더라도 노태권 씨는 아내에게도 가방에 돈을 넣어줘야 합니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자유를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상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욕망이 우리 시력을 잃게 합니다.
예수님은 성경을 자신들의 욕망에 갖다 맞추지 말라고 하십니다. 구약의 모든 내용이 당신에 관한 내용이라고 하십니다. 당신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써놓은 것이지 그 안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 성경이 아닙니다. 성경을 읽으면서도 “여기에서 당신이 저에게 원하시는 게 뭐예요?”라고 물어야 합니다. 성령을 통해 나의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알아볼 수 없게 됩니다.
나에게 원하시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그랬다면 구세주께서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 해방해 주는 분이 아니라 피를 흘려 죄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분임을 알아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모세가 그리스도이시고 파라오라는 자아로부터 우리를 탈출시켜 하느님의 성막이 되게 하려고 한 번은 깨져야 하는 십계명 판이 그리스도임을 알아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성경은 세속-육신-마귀를 죽이려는 목적으로 읽어야지, 그것을 채우려는 마음으로 읽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볼 수 있는 시력이 점점 사라집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