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보 네리 성인은 1515년 이탈리아의 중부 도시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그는 한때 사업가의 꿈도 가졌으나 수도 생활을 바라며 로마에서 살았다. 그곳에서 젊은이들을 위한 활동을 많이 펼친 필립보 네리는 특히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형제회를 조직하기도 하였다. 그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36세에 사제가 되어 영성 지도와 고해 신부로 활동하면서 많은 이에게 존경을 받았다. 동료 사제들과 함께 오라토리오 수도회를 설립한 그는 1595년 선종하였고, 1622년 시성 되었다.
<아버지,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1-11ㄴ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1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말씀하셨다.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도록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
2 아버지께서는 아들이 아버지께서 주신 모든 이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도록
아들에게 모든 사람에 대한 권한을 주셨습니다.
3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4 아버지께서 저에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완수하여,
저는 땅에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였습니다.
5 아버지, 세상이 생기기 전에 제가 아버지 앞에서 누리던 그 영광으로,
이제 다시 아버지 앞에서 저를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
6 아버지께서 세상에서 뽑으시어 저에게 주신 이 사람들에게
저는 아버지의 이름을 드러냈습니다.
이들은 아버지의 사람들이었는데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7 이제 이들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모든 것이
아버지에게서 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8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말씀을 제가 이들에게 주고,
이들은 또 그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제가 아버지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참으로 알고,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9 저는 이들을 위하여 빕니다.
세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들을 위하여 빕니다.
이들은 아버지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10 저의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고
아버지의 것은 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을 통하여 제가 영광스럽게 되었습니다.
11 저는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지만 이들은 세상에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갑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으로 아버지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히브리 말로 ‘영광’은 ‘더욱 가치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가치 있는 것들을 추구하다 보면 기쁘고 흥겨울 때도 있지만 힘겹고 고통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좋아서 하는 일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을 테지만 힘겹고 고통스러운 일은 대부분 마다하고 회피하지요.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그 힘든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셨습니다. 힘겹지만 인간을 사랑하시는 그 가치 있는 일에 당신의 삶을 온전히 내어놓으신 것이지요.
예수님께 ‘더욱 가치 있는 것’은 바로 우리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은 이미 태초부터 아버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작품이었고, 그 작품은 세상 끝 날까지 고귀하고 소중한 존재로 대접받아야 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인간 존엄성의 원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지켜야 할 삶의 규칙이자 진리입니다.
예수님께서 때가 되어 당신의 십자가를 기꺼이 지시는 것은 세상을 향한 아버지의 끝없는 사랑을 드러내신 행위입니다. 사랑은 아프고 힘들더라도 더욱 가치 있는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데 지치지 말아야겠습니다. 사랑은 아버지의 일을 하는 것이며 세상 어떤 일보다 가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영광이고 생명입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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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2020년 5월 26일 화요일
성 필립보 네리 사제 기념일(요한 17, 1-11)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말씀하셨다.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도록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요한 17, 1)
오늘은 필립보 네리 사제 기념일입니다.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우리는 보통 성숙한 신앙인은 자신보다는 이웃을 위해서 기도한다고 생각하는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아버지께로 가시기 전에 유언과 같이 기도하는 모습에서 놀라운 것을 발견합니다. 먼저 자신을 위해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흔히 다른 사람을 위해 먼저 기도하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일 텐데 예수님께서 자신을 위해 우선으로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위해서 먼저 기도하시지만 그 내용은 우리가 생각하는 내용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우리도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모범에 따라 우리도 자신을 위해서 이러한 내용을 담고서 기도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께 자신을 영광스럽게 해달라고 기도하십니다. 그 이유는 아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서 자신이 영광스럽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금은 이해하기가 힘들지만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이해가 쉽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남을 도와주고 싶어도 우리가 가진 것이 있어야 도와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또 우리가 건강해야 남을 도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느님의 은총의 삶을 살아야 아브라함과 같이 남에서 복의 통로가 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면에서 남을 도울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계신 분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신 것에는 세 가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개인적인 안락과 이익,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서 구한 기도였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세상에 오신 목적을 잘 깨닫고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흔들리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 내용입니다.
셋째는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적절한 때와 시기를 아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여 때가 왔습니다.”하고 기도를 시작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때라고 하는 것은 십자가를 지시는 시각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달라’고 청하시는 것은 십자가를 지게 해달라는 것이 됩니다. ‘힘들고 고달프더라도 가던 길을 포기하지 않게 해 주시며, 상처 받고 모함을 당해도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이 길을 어떤 유혹이 와도 물리치고 어떤 시험이 닥쳐도 이기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아버지, 세상이 생기기 전에 제가 아버지 앞에서 누리던 그 영광으로, 이제 다시 아버지 앞에서 저를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십니다.
이 기도는 예수님의 사명을 확인하시는 기도입니다. 세상이 생기기 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그 영광을 잊지 않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깨우쳐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생기기 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광이란 곧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도록 모든 사람에 대한 권한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 권한을 다시 갖게 해 달라는 뜻입니다. 이에 관한 내용이 2절 말씀에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이 아버지께서 주신 모든 이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도록 아들에게 모든 사람에 대한 권한을 주셨습니다.”(요한 17, 2)
세상이 생기기 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광의 핵심은 ‘모든 사람에 대한 권한’입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에 대한 권한을 예수님께 주신 목적은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바로 ‘구원’과 ‘권한’입니다. 하느님께서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모든 사람에 대한 권한을 예수님께 주셨는데, 그 권한으로 죽어가는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는 일입니다. 사람을 구원한다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일입니다. 3절 말씀에서 영원한 생명에 대해 잘 정의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거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게 아니라, 유일하신 참 하느님과 그분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보내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원한 생명이지, 오래 사는 것이 영원한 생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면서 우리와 우리 가족들 모두가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 6, 33)는 말씀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다시 한번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축하를 드립니다.
정건석 프란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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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고등학교 필립스 아카데미와 필립스 엑서터는 동문 35명 중 1명꼴로 미국 명사 인명사전에 올라 있고 백만장자 비율도 가장 높다고 합니다. 설립 이래 200년 이상 이 전통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이 학교의 건학 이념은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입니다.
설립자인 새뮤얼 필립스와 존 필립스가 성경에서 영감을 받아 이 건학 이념을 정했습니다. 코린토 전서 10장 31절 “그러므로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와 루카 복음 6장 38절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에서 영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은 끊임없이 ‘왜 어떤 이들은 표징을 보고 믿는데, 어떤 이들은 믿지 못할까?’를 고민합니다. 그리고 믿지 못하는 이들은 ‘자기의 영광’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립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이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삶입니다. 성경을 공부하면서도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기들끼리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은 추구하지 않으니, 너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요한 5,44)
물론 그들도 하느님의 영광을 찾는다고 말은 합니다. 그들은 태생 소경이 눈을 뜨자 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시오. 우리는 그자가 죄인임을 알고 있소.”(요한 9,24)
저도 주님께 영광을 드린다고 열심히 강의를 다닌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 마음의 공허함만 남았습니다.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이들은 마음이 공허하지 않습니다. 그 영광을 다시 받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영광은 성령을 의미하는데 성령으로 이룬 열매를 그 성령을 주시는 분의 공로로 돌리면 그분은 다시 성령을 주십니다. 성령의 열매가 또한 기쁨과 평화이기 때문에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이는 마음이 공허할 틈이 없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추구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면 메마르게 됩니다. 주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것도 도둑질입니다. 도둑질하고 마음이 평화로울 수는 없는 일입니다.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의 장엄한 마지막 기도가 나옵니다. 오늘 복음은 그 시작입니다. 오늘 복음은 삼위일체 신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영광을 달라고 하십니다. 그 영광이란 당연히 성령이십니다. 성령으로만 영광스럽게 됩니다. 예수님은 마치 아내가 신랑의 사랑으로 자녀를 출산하는 것처럼 교회를 낳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당신의 것이라 하지 않고 아버지의 것이라고 여기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시고 그러면 아드님은 다시 아버지께 영광을 받으십니다.
교회를 당신의 것이라 여겼다면 예수님은 더는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마치 가지가 열매가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면 자신이 붙어있는 나무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과 같습니다. 그러한 가지는 더는 나무가 수액을 흘려보내 주지 않습니다. 자녀를 자신의 것이라 여기는 아내를 남편이 사랑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입니다. 우리 열매로 나무이신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합시다. 이것이 성령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마음이 평화롭지 못하고 기쁘지 못하면 내가 ‘나 자신을 위해서’ 사는지, 아니면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마음으로 사는지 살펴야 합니다. 분명 나 자신을 위해 살고 있을 것입니다. 가지 영광을 추구하는 성향에 빠지지 않으려면 하루 시작부터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합니다.
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세계인의 이목을 끈 여자 육상선수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여자’라고 불리는 그리피스 조이너입니다. 그녀가 금메달을 따내자 많은 기자가 몰려 취재 경쟁을 벌였습니다. 그 가운데 미 NBC 방송의 한 기자가 “달리면서 어떤 생각을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하느님께 영광 돌릴 것을 생각하며 달립니다. 나 자신과 싸움에서 이긴 후 하느님께 영광 돌릴 때만큼 인생의 보람을 느껴본 적은 없었습니다.”
달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순간에 주님께 영광을 드릴 생각을 해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들 때 주님께 영광을 돌릴 결심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으로부터 영광을 받는 하루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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